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1월 1일 자 인사발령문이 공지사항에 게시되고 주말 저녁이었다. 나는 부면장이 더이상 아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있었다.
나의 핸드폰이 울린다. 평소 안면만 있는 직원이면서, 우리 면으로 새롭게 발령받은 부면장의 부인이다. 갑자기 나를 만나자고 한다. 느낌이 안 좋다. 그렇다고 피할 이유는 없으니 만나러 나간다.
어두운 얼굴의 그녀는 나에게 본론을 이야기한다. 남편이 부면장으로 발령받은 후부터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 그리고 면에서 제일 중요한 큰 행사인 주민과의 회의가 1월 중순 이후 있는데 벌써부터 사회 보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걱정하는 정도가 심해서 병원에 갔는데 공황장애 같다는 소견을 들었다는 것이다. 다른 회의의 진행은 주민들 대상으로 하니 어떻게든 하겠는데, 시장님 오는 행사는 절대 못한다며 나에게 부탁을 하러 나온 거였다.
나는 눈물이 났다. 회의 진행을 위해 스피치 학원을 다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타인에게 이야기했다. 그녀가 놀란 눈치다. 그녀도 눈물을 보인다. 나는 그 자리에서 확답을 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고, 남편은 너도 못하는데 누구를 대신하냐며 화를 냈다.
그렇게 1월이 시작되고, 새로운 부면장은 인사팀에 휴직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아빠의 불안한 모습을 본 아이도 비슷한 증세를 보인다는 것이 이유였다. 만약 부면장이 휴직을 하면 나는 나의 새 업무 적응도 해야 하고 부면장 대행도 해야 한다. 인사팀에서는 당장 자리를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내가 옆에서 도와줄 테니 휴직하지 말고 다니라고 설득한다. 1월 중순의 중요한 행사 사회는 일단 변동 없이 부면장이 보기로 한다. 나는 혹시 모르니, 몰래 집에서 연습한다. 행사일이 다가오고, 결국 부면장은 면장님께 말해서 사회는 내가 보기로 한다.
못하는 것을 못한다고 말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나보다 더 말을 못 하는 부면장 대신 사회를 보았다. 이번에도 많은 연습과 청심환의 힘을 빌렸다. 그 이후로도 나는 부면장 대신 여러번 사회를 보았고, 그때마다 여전히 긴장하고 떤다.
그렇게 나는 부면장 자리에 한 다리 걸치고 여전히 출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