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도 엄마도 주부도 아닌 나
7월 1일 자 부면장으로 발령이 났다. 회의에서 사회를 보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 새벽 출근으로 인한 남편에 대한 미안함, 각종 민원의 최종상담자라는 부담감, 면 청사의 사소한 고장이나 지저분한 청결 상태 처리 담당 등 온갖 일들이 나의 일로 느껴졌다. 일을 지시하는 것도 능력이라는 데 나는 능력이 한참이나 부족하였다.
남편과 아이들은 내가 부면장으로 적응하기를 바라며 조용히 나를 응원해 주었다. 남편은 새벽 출근으로 아이들을 챙기지 못하는 날 대신해서 2년간 꾸준히 했던 아침 운동을 마다하고 아이들을 챙겼고, 회의 전날에는 혼자 방문을 닫고 연습하는 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아이들과 밖으로 나가거나 내빈 역할을 자처하며 나를 도와주었다. 나를 이렇게 도와준 것은 사실 내가 극도의 스트레스로 20여 년의 공직생활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처음으로 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나를 보면 별다른 불만 없이 일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내가 받은 스트레스는 깔때기처럼 남편에게만 흘러들어갔다. 그러니 지켜보던 남편도 힘들었을 것이다. 나의 스트레스가 쌓이는 만큼 남편도 옆에서 힘들어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진지하게 공무원을 그만두라고 했다. 나의 입이 아닌 남편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그만두고 싶은 의지가 꺽였다.
결국 나는 인사상담을 다시 받았다. 6개월 전 승진을 안 하겠다고 인사상담을 했다는 것을 포함하여 결원을 대행하는 것과 사람들 앞에서 사회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등 그간의 고충을 이야기했다. 인사팀은 무보직 6급이 파견 갈 수 있는 자리와 지금 있는 곳의 다른 팀장 자리를 제안하였다. 난 두 곳 다 괜찮다고 했고, 6개월 만에 같은 장소의 다른 팀장이 되었다.
주민들 중 일부는 나쁜 자리로 좌천 갔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 그간의 나의 힘듦을 보신 분들은 잘 됐다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신 분들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6개월간의 짧지만 길게 느껴진 부면장을 내려놓고 옆 팀의 팀장으로 갔다.
그렇게 나는 지난 6개월간의 일들을 마음 속 깊은 곳에 넣어두고 조금씩 꺼내서 추억하고 싶었다. 힘든 일이 많았지만 다 지난 일이고 나중에는 술 안주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