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 반]프로젝트4
By 한작
상철은 초조하게 재판 결과를 기다렸다. 범죄 이력도 없고 나이도 어리니까 여간하면 봐준다는 소리를 구치소 사람들에게 들었지만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합의를 못한 게 내심 불안했다. 피해자는 합의금으로 2천만 원을 요구했지만 상철 생각에는 너무 과한 금액이었다. 일단 먹고 죽을라고 해도 그만한 돈은 없었고, 손에 화상을 조금 입은 정도로 그런 큰 돈을 요구하자, 상대도 치사한 새끼란 생각이 들어 합의를 포기해버렸다.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술이 문제라고 상철은 생각했다. 사실 상철은 그 날 일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목격자의 진술에 따르면 만취한 상철이 옆 테이블 남자의 머리를 느닷없이 소주병으로 내려친 뒤, 남자의 손을 불판에 올려 구워버렸다는 것이었다.
상철 입장에서 술에 취해 골아떨어졌다 일어났더니 경찰서였고, 자신이 사람을 때렸다며 잡혀온 상황이었다. 처음엔 경찰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천지 사방에 깔린 CCTV엔 상철의 행동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집행유예를 기대했지만 상철에게 떨어진 형벌은 손목 교체형이었다. 신체 교체형은 최근에 생긴 형벌이었다. 범죄에 사용된 신체를 기계로 바꿔 폭력 상황에서 동작이 정지하는 기능이 붙어 있었다. 비인도적이라는 비난이 조금 있었지만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된 법이었다.
수술대에서 내려온 상철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아직 연결부위에 마취감이 남아있었지만 손가락을 하나하나 움직여 보니 이질감이 거의 없었다. '이 정도면 싸게 먹혔다' 인권 타령 하는 사람들은 세상 망할 것처럼 말했지만 상철 개인적으론 이 정도면 감옥에서 몇년씩 썩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 안일한 생각 탓이었을까? 상철의 두 번째 사고 역시 술이 문제였다. 무슨 이유로 자율 주행을 껐는지는 술에 취해 알 수 없지만, 따지고 보면 이번에도 몽땅 자신의 잘못이라고 하기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밤에 검은 색 옷을 입고 무단횡단을 한 사람도 조금은 잘못이 있다고 상철은 생각했다. 사고로 척추가 으스러졌다는 피해자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억울한 건 마찬가지였다.
상철에게 내려진 벌은 이번에도 신체 교체형이었다. 양쪽 무릎 아래를 모두 기계로 교체하는 중형이었고 벌금과 수술비까지 떠안아야 했다. 손과 발이 기계로 바뀐 뒤엔 일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바지와 장갑으로 아무리 감춘다 해도 금속 특유의 마찰음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걸을 때마다 작게 울리는 모터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역겨운 벌레를 본 것과 같은 눈빛으로 상철을 훑어봤다. 기본 소득이 있어 당장 굶어 죽을 걱정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되자 상철은 자연스럽게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절도 정도였지만 강도로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강도질은 소매치기보다 오히려 쉬웠다. 늦은 밤 인적이 드문 곳에서 식칼을 들고 돈을 달라고 하면 사람들은 알아서 가진 것을 몽땅 상철에게 넘겨줬다. 솔직히 이건 강도짓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구걸을 하는데 칼을 들고 있었을 뿐이었다고 상철은 그렇게 생각했다.
한두 번 강도질에 성공하자 상철의 범행은 대담해졌다. 처음엔 떨려서 말을 더듬고 칼도 똑바로 쥐고 있기 힘들었지만, 이젠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돈 좀 적선해 달라는 말을 하면서 비릿한 웃음을 섞을 수준이 되었을 때 상철은 세 번째 체포를 당했다. 이젠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저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이제 흉악범이 된 상철에게 내려진 벌은 양 팔과 골반 이하 신체의 기계 교체형이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고급형 안드로이드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이 인간인지 기계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가장 치명적인 건 이제 기본 소득도 받기 어려워졌다는 점이었다. 기본 소득을 받으려면 신체의 60% 이상이 유기물이라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인공 장기의 교체 기술이 발달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고령인구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언젠가 상철도 찬성했던 법이었다.
당장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고민하던 상철은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안드로이드인 척을 하면 되지 않을까. 산업용 안드로이드 대여 회사를 만들고 요청이 들어오면 상철 스스로 나가 일을 하는 방식이었다. 웹 속 상철은 인간이었지만 현실의 상철은 철저히 안드로이드가 되었다.
얼마 동안은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 평화가 오래 가지는 못했다. 장기 계약을 한 공사 현장에서 만난 작업반장이 문제였다. 이유 없이 안드로이드 혐오를 드러내는 작업반장은 상철에게 침을 뱉거나 발등을 연장으로 찍기도 했다. 이 모든 행동을 망치나 스패너를 다루듯 무심하고 대수롭지 않게 하는 사람이었다. 참고 참던 상철이 폭발한 건 그 작업반장이 현장 구석에서 앉아 있던 상철의 얼굴에 오줌을 눌 때였다. 마치 삽에 묻은 모래를 오줌으로 닦아내듯 상철 얼굴을 휘저어 가며 오줌을 누자 오래 참던 분노가 폭발했다.
벌떡 일어나 작업반장을 향해 주먹을 날리려 할 때 흥분상태를 감지한 기계 의족과 의수에 전력이 차단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가슴에 묵직한 통증이 밀려왔다. 안드로이드에 오류가 생긴 거라고 착각한 작업반장이 망치를 던진 거였다. 가슴을 맞고 피를 토하는 상철을 보면서 작업반장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 챘다.
한동안 공포에 질려 있던 작업반장은 곰곰 생각 하는 듯 하더니 곧 원래의 무심한 눈빛으로 상철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상철의 입을 망치로 내리쳤다. 피와 함께 부러진 이가 사방에 흩어졌다. 상철의 입을 막은 작업반장은 팔과 다리를 하나 하나 망치로 내리쳤다. 상철의 의식이 희미해지는 사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어, 난데. 그, 우리 계약한 안드로이드 하나 있잖아. 어어, 그거. 그거 현장에서 떨어졌다. 손망실로 처리하고 업체에 보상해 준다고 전달해. 참, 그런 거 아니야. 내가 뭐 미쳤다고 일부러 그랬겠냐. 원래 그쪽 샤시 작업이 위험해서 종종 떨어지고 그래. 어. 그래. 그거 그렇게 처리해 주고. 어, 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