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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by 송나영

야채가 금값이다. 노는 밭에 상추랑 오이랑 채소를 심어서 먹어보자고 절대 안 한다는 친한 엄마를 설득해 나섰다. 일주일에 딱 하루만 가자고 했다. 그 밭은 그네의 친정아버님 밭이다. 밭은 작물을 심지 않으면 벌금이 나온단다. 이런저런 밭에 대한 일을 전해 듣다가 그 밭에 채소를 심어 보면 어떻겠냐고 말을 걸었다.

지인의 친정아버님이 구순을 앞두셨는데 한 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신다. 밭에 가는 일로 그네는 아버지와 자주 다퉜다. 집 근처에 있는 텃밭도 아니고 차로 한 시간 이상을 가야 한다. 전에는 운전을 하셨지만 자주 사고가 나면서 아버님은 차를 팔았다. 전에는 동네 아는 지인에게 기름값을 대주며 다니셨다가 이제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밭에 가신다. 산 넘고 물 건너서 한참 가야 한다. 전철역에서 내려서 밭까지 가는 버스가 없어서 택시를 이용하시는데 택시비가 너무 많이 나온다고 들었다.

그네는 칠 년 전에 그 밭에 대추나무를 심고 다시는 밭에 안 간다고 했다. 대추나무 농사를 짓고 얼마나 힘들었던지 밭이라면 혀를 내두르곤 했었다. 작년에는 밭에서 나온 아이 얼굴만 한 고구마를 얻어먹었다. 고구마 대여섯 개를 한 달 이상 두고 먹었다. 그네의 지긋지긋한 친정아버님 밭에서 여름 내 먹을 야채를 심기로 했다. 나의 제안에 그네는 바로 친정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밭에 간다는 말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시나 보다. 친정어머님께 전화가 왔다고 했다. 너네 아버지가 무슨 일로 저렇게 신이 났냐고 지인에게 물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일주일마다 그네와 그네 친정아버님을 모시고 간다고 했는데 내가 또 대책 없이 일을 벌인 건 아닌가 덜컥 걱정도 됐다. 밭에 가는 게 묘하게 설렌다.

말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모종을 사러 나섰다. 제대로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지인을 데리고 농협 하나로 마트로 갔다. 그네도 아버님을 모셔다 드리고 가끔 일손을 도왔을 뿐이라 아무것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다. 일을 겁내는 그네와 겁 없이 덤비는 내가 일을 벌인다. 모종은 종류별로 다양하게 있었다. 모종 한 판이 별로 많아 보이지 않았다. 모종 세 개씩 사자는 그네와 그걸 어디에 심냐고 한 판은 심어야 되지 않겠냐고 꼬드겨서 결국 열 종류나 되는 모종을 반 판이나 한 판씩 사서 비닐봉지에 담아 차에 싣었다. 계산을 하는데 모종 파는 분이 이거 다 심으려면 도가니 나간다고 하셨다. 내 눈에 별로 많아 보이지 않아서 그렇게 많냐고 다시 물었다. 괜찮다고 한 두 시간이면 다 심는단다. 그네의 아버님께서 뭐 하러 벌써 모종을 샀냐고 하셨다.

밭으로 가는 날 그네의 어머님까지 배웅을 해주셨다. 아버님을 모시고 한 시간을 달렸다. 팔십구 세인 아버님께서 길을 다 알려주셨다. 아버님이 표정이 없으셨는데 지인 말로는 굉장히 기분이 좋으신 거란다. 밭에 가보고 나서야 왜 벌써 샀냐는 말이 이해가 됐다. 예전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파란 플라스틱 화분에 상추랑 토마토, 고추를 심은 적이 있었다. 흙 붓고 그냥 모종 사서 심었다. 밭도 그런 줄 알았다. 흙에다 모종만 꽂아두면 되는 줄 안 거다. 밭은 작년에 심은 작물이 잔뜩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밭을 일궈야 하는 것이었다. 작년에 심었던 가지는 나무가 돼 있었고 주먹만 한 토마토도 바짝 마른 채 매달려 있었다. 나무를 뽑고 바닥에 잔뜩 핀 민들레랑 잡초를 캐서 버렸다. 아버님은 우리가 산 모종을 쓱 훑어보시더니 땅을 이 만큼은 해야 한다는 말씀 한 마디 하시고 쉬지 않고 삽으로 땅을 파셨다. 콕콕 심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나의 무식함이 벌린 일은 컸다. 허리가 부서지는 줄 알았다. 노동에 익숙지 않은 나는 힘만 엄청 쓰면서 일을 했고 그네 아버님께서 땅을 갈아엎는 것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모종을 심기도 전에 나는 뻗을 판이었다. 밭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겨우 사분의 일만큼의 모종 심을 밭을 만들어놓고 진이 다 빠진 뒤에야 모종을 심으려고 주저앉았다. 바닥에 철퍼덕 앉아버린 내가 무척 힘들어 보였나 보다. 지인은 내가 아예 흙바닥에 앉아서 대파를 다닥다닥 가깝게 심었다고 했다. 맞다. 야채를 키워 먹겠다는 야무진 생각은 벌써 사라지고 대충 하고 빨리 집에 가서 씻고 드러눕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지인은 오히려 점점 흥미가 생겼고 모종을 심으면서 다시는 야채값 깎지 말아야겠단다.

지인은 심어놓고 나니 너무 예쁘다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점점 생각이 없어졌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일하시던 아버님께서는 벌써 세 시가 넘었냐고 하셨다. 우리는 점심도 거른 채 일을 했다. 아버님이 밭일을 하고 돌아오실 때 들르던 어죽집을 찾아갔다. 정신없이 퍼먹었다.

지인은 당신이 흙기운을 받고 오셔서 생기가 돈다고 했다. 나는 점점 바짝 마른 시래기처럼 변해갔다. 지인은 아버님한테 일주일에 한 번씩 간다는 말을 하면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럼 아버님은 더 자주 가자고 하신단다. 입을 꼭 다물고 댁에 모셔다 드리고 집에 돌아왔다. 아버님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고장 난 양수기를 고치려고 아는 분에게 전화를 걸었고 다음 계획을 실행할 준비를 하셨다. 나는 일이 커질까 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심어놓은 밭작물 사진을 이모한테 보여드렸더니 많이 심었단다. 다들 왜 들깨를 심지 않냐는 말을 했다. 제일 일이 없다고 했다. 오이값 줄이려는 계획은 무산되고 들기름을 짜게 생겼다.

우리는 심어놓은 모종이 궁금해 이틀 뒤에 갔다. 비닐하우스 자물쇠를 여는 순간 우리는 서로 놀랐다. 그네와 나는 거기서 벌써 일을 하고 계신 아버님을 만났다. 손아귀 힘이 약해지신 당신은 자물쇠를 열지 못해서 비닐하우스 뒤편으로 얼기설기 세운 장애물을 치우고 들어가셨다. 전철이랑 택시 타고 오셔서 비닐하우스의 나머지 사분의 삼을 다 치우신 거다. 모종 심은 자리의 반대편에 있던 말라비틀어진 고추 뽑자고 할까 봐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그게 다 없어졌다. 아버님은 말씀하지 않으신다. 일만 하신다. 지인과 나는 손을 걷어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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