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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을 잘 하면 병난다.

[오늘의 심리학 #153]




사회불안장애과 공감의 관계는 실로 미묘하다.



 여러분은 '공감을 잘 한다'는 말이 좋은 말로 들리나요? 공동체 생활이 강조되는 사회일수록 '공감'은 장점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 실험 내용은 '공감'이 과연 마냥 좋기만 한가에 의문을 던져주죠.


- journal Clinical Psychological Science 에 게재된 연구 중 사회불안장애에 관한 실험이 있다.
- 사회불안을 가진 사람이 공감력이 높은지 알아내는 실험이었다.
- 사회에서 배제되는 경험을 담은 주제의 영상을 시청하도록 한 뒤 영상 속 인물의 감정 반응, 그걸 보는 자신의 감정 반응을 적도록 하자, 사회불안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정확한 공감을 보여줬다.
- 이 뿐만이 아니다. 사회불안이 없는 사람도 실험 상에서 '인위적인 거부 경험'을 겪은 후엔 공감력이 올랐다.

 저널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사회불안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감정에 훨씬 더 정확하게 공감하더라.'

 공동체 생활에 큰 강점으로 작용하는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오히려 사회불안을 앓고 있을 수 있습니다. 직관적으로 생각해봐도 어쩌면 당연합니다.

 공동체를 중요시 여긴다, 사회성이 좋지 않다, 감정적으로 기민하다 등의 요소가 모였기 때문에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체크할테니까요.


 감정은 나의 현재 상태를 나타냅니다. 내 몸의 보안 신호죠. 보안 시설이 둔감해서 도둑이 와도, 불이 나도 잠잠하면 큰일이겠죠? 하지만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세요. 강아지가 뛰어놀아도, 휴지가 펄럭여도, 누군가 기침 소리를 내어도 따르르릉 울리는 초민감 센서가 있다면 어떨까요? 항상 긴장 상태로 있을 겁니다.

 사회불안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에 두려움을 갖고 있어요. 그러니 공감 능력이 좋다면 더더욱 사회불안에 취약할 수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공감을 잘 하면 병난다는 거죠.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시선을 조금 더 확대해보죠.


- 영상 속 인물에게 조언을 해줄 것인지 묻자(조언을 길게, 또는 짧게, 또는 안 할 수 있었다.) 사회불안을 가진 사람은 정확한 공감을 하지만 부정적인 조언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저널의 두 번째 실험을 보면 사회불안을 가진 사람이 공감력에 비해 조언은 부정적으로 한다고 합니다.


 저는 바로 부모님이 떠오르더라고요. 자식 혹여 잘못될까 사사건건 잔소리하고 참견하는 부모님들 많잖아요. 하지만 정도가 지나친 공감 때문에 오히려 자녀가 상처받는 일이 많아요. 부모님들은 얘기합니다.

 "이게 나 잘 되라고 하는 거니?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거잖아!"

 부모님이 잘못한 건 아닙니다. 다만 미숙한 거죠. 그 미숙한 조언으로 인해 오히려 상대방은 기분이 나빠집니다. 마음의 문을 닫기 때문에 악순환이 계속 됩니다.




 저는 이 저널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을 더 하게 되었어요.

 심리학과에서 통하는 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기가 심리적인 문제가 있어서 심리학과에 들어온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딱히 사람들의 아픔에 관심이 없으면 심리학에도 관심을 가질 확률이 적으니까요. 다만 사회불안 기저를 깔고 있는 사람들이 심리학을 취급할 땐 이론을 편식합니다. 최근 대중 서적의 흐름을 보시면 '너는 괜찮은 사람이야.', '너의 삶을 살아.', '너를 사랑할 사람은 너 밖에 없어.' 같은 말이 많아요. 틀린 말이 아닙니다. 권장할만한 인생의 태도죠.

 그러나 이 말만 편식하면 엉뚱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적이야.', '조금 더 뻔뻔하게 살아야 해.'


 이 결론은 위험해요.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교류하는 한 얼마든지 허용 가능한 '다름'들이 있어요. 하지만 심리학을 편식한 이들은 '다름'을 '틀림'으로 봅니다. 나의 불안을 구원해주었던 저 말들이 100% 옳은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두렵기 때문입니다.


 상담심리가 편식형 심리학에 편향될수록 우린 뻔뻔한 외톨이가 될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품어주는 '큰 사람'이 되지 못 하고, '너만 챙기면 돼!' 라며 '좁은 사람'을 만들 수 있어요. 솔직히 저게 듣기에도 좋잖아요. 마음도 편해지고.


 다른 사람을 더 잘 공감하는 능력, 나의 감정을 정확하게 캐치하는 능력을 가진 건 복입니다. 관계적인 문제를 만나 끔찍한 혼종이 되었다고 해도 그 복이 사라지는 건 아니죠. 이 복을 잘 사용하기 위해선 '감정'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받아들이는 것(나 뿐만 아니라 타인의 감정까지도),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마이너스 관계에 대한 관용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복을 저주로 여기며 편식하고 있진 않나요?




* 참고 자료


1. 눈을 마주치는 순간 당신에게 일어나는 변화

 공감을 높일 수 있는 생물학적 꿀팁에 대한 소개입니다.

https://brunch.co.kr/@3fbaksghkrk/145

https://youtu.be/1VrErIwI7io



2. 진짜 나를 알면 실망할거야. 가면증후군

 자신의 어두운 모습을 남들이 싫어할 거라 지레 짐작하여 만들어지는 착한 아이. 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https://brunch.co.kr/@3fbaksghkrk/223



3. 공감이 생긴지 고작 100년?

 진정한 공감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글입니다.

https://brunch.co.kr/@3fbaksghkrk/231




* 출처 자료


ANXIETY

Is Social Anxiety Really an Empathy-Based Superpower?

New research shows that socially anxious people have greater empathic accuracy.

Posted May 19, 2020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targeted-parenting/202005/is-social-anxiety-really-empathy-based-super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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