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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벌써 두 번째야.

(단편 연재: 조지아에 갈 결심 epi. 4)

by 우유강

섬에 온 후 세 번째 근무 학교에서 또 다른 죽음을 만났다.


이번에는 흔들림의 진폭이 훨씬 크고 오래갔다.



은혜의 바로 옆 자리에 앉았던 동년배 남교사가 이 학기 개학을 앞두고 도시 북쪽의 좁고 어두운 골짜기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던 것이다.


혼자 쓰던 방 책상 위에 지갑과 휴대전화를 가지런히 두고 나갔던 그는 일주일 만에 계곡을 지나던 사람에 의해 아주 우연히 발견되었다.


평소에도 종종 며칠씩 집을 비웠다던 그의 실종신고는 그가 집을 나간 지 삼사일 후에야 이루어졌고 아마도 우연한 발견이 아니었다면 개학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실종 상태였을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말을 아꼈고 가족들의 얼굴에는 두껍고 무거운 감정들이 무표정 아래 깊숙이 감춰져 있었다.


그는 은혜가 섬에 온 후 두 번이나 같이 근무한 인연이 있었다. 처음에 봤을 때 그는 온갖 법에 대해 해박했고, 정치경제의 꼭대기쯤 앉아있는 사람처럼 세상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냉소하곤 했지만 그가 가르치는 반 아이들은 그의 수업을 좋아하고 즐거워했다.



그랬던 그가 두 번째 다시 만났을 때는 완전히 변해 있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술에 절어 있었고 수업시간에 횡설수설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대응하지 못해서 분위기는 엉망진창이 되기 일쑤였다.

그가 맥을 놓은 게 먼저였는지 유난히 억센 아이들의 도발이 먼저였는지 모르지만 그의 수업 시간마다 자주 소란이 일어났다.


젊고 예민한 학년부장은 통제가 안 되는 모든 상황에 내내 화가 나 있었고 은혜 역시 교무실의 나머지 교사들처럼 그를 점점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 반의 아이들 뿐 아니라 학년의 전체 분위기들이 점점 더 거칠어지고 힘들어졌다.


학부모들의 아우성에 교육청과 학교관리자들도 시달렸을 것이고 모든 비난이 고스란히 그에게 되돌아왔을 게 명확한 여름방학 직전, 학년 교무실은 거의 폭발 직전의 지경이었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대학 동기인 여교사가 한 번씩 그와 대화를 나누곤 했지만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던 은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은혜는 이혼 후 다른 이성에게 친절하게 행동하는 것을 철저히 금기로 삼아왔었다.

의지할 곳 없는 객지의 근무처에서 구설수에 오르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 수는 없다고 노심초사하며 살아왔으니 그녀는 그의 절망을 적극적으로 방관했거나 또는 적극적으로 회피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십 년 같던 시간 끝에 기다리던 여름방학이 왔고 학생들이 모두 귀가한 방학식날의 어둑하고 서늘한 본관 계단을 터덜터덜 내려가던 그의 뒷모습을 은혜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를 계곡으로 불러올린 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방학하던 그날 그는 보이지 않는 힘에 양팔을 붙잡힌 채 끌려 내려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바로 옆자리 동료를 떠나보낸 경험이 섬에서 다시 일어났다는 것은 육지로부터의 은혜의 탈출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녀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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