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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면 달라질 줄 알았지.

(단편 연재: 조지아에 갈 결심 epi. 3)

by 우유강

10년쯤 전에 이주해서 살아온 섬에서의 삶은 그녀 집의 북쪽 발코니 창 너머로 보이는 포구의 해수면처럼 대부분 고요했다.


그녀가 살았던 조현읍의 포구는 특히 바람이 잔잔했다. 파도가 일지 않은 날, 바다는 거울이 되어 작고 빨간 모자를 쓴 사랑스러운 등대와 제방, 하늘을 그대로 복사해냈다.

그저 한 폭의 그림이었다.


하지만 바다는 원래 파도가 치는 곳이다.


풍랑이 일고 저 깊은 바다 속까지 뒤집어 까며 으르렁거릴 때는 그 포악함에 온 섬 전체가 납작 엎드려 조아려야 한다.

사람들은 소라게처럼 집 안으로 들어가 창문을 꼭꼭 걷어 닫고 텔레비전이나 모바일을 들여다보며 바다의 분노가 언제 그칠지 겸손한 자세로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사나워진 바다는 탐욕에 목숨을 걸지 않는 이상 저리 낮은 자세로 엎드린 사람들을 잡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바다가 고요할 때, 사람들이 방심할 때 물의 정령들이 홀린 영혼을 잡아가곤 한다. 무방비 상태일 때 벌어지는 사망사고는 남겨진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비로소 바다는 다시 두려운 존재가 된다.


은혜가 이사한 지 이태 째, 빌라 일층에 살던 중학생 아들 하나가 가족 나들이로 바다에 갔다가 익사하였다.

초등학교 학생회장을 했던, 장남의 장남인 귀한 아들을 잃은 가족들은 한 달도 채 못 견디고 서둘러 빌라를 떠났다.



“애 엄마 어떻게 지내나 몰라. 그렇게 금쪽같은 아들을 보냈으니.”


“애 아빠가 더 하지. 등 뒤에서 일어난 일을 몰랐으니.”


아들은 아빠가 갯바위 낚시를 하던 곳 바로 뒤에서 소리도 없이 물에 빠졌고 어쩌다 뒤돌아보니 이미 물 위에 엎드려 있었다고 했다.



은혜를 포함한 이웃들은 그 집이 이사 간 후에도 매달 한 번 계단 물청소 시간에 서로 눈을 마주칠 때마다 아주 낮은 소리로 아들을 잃은 엄마를 걱정하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오 층이 빠른 소식을 물어왔다.



“애 엄마 아기 가졌다네. 아들이래, 아들.”



계단 물청소 시간은 그 후로 다시 시끄러워졌다.

더 이상 낮은 목소리로 수근 대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 일은 섬으로 온 은혜를 다시 불안하게 흔드는 계기가 되었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죽음이 주위에서 벌어지면 은혜는 늘 자신의 발목에 사자에게 닿은 실이라도 묶여있는 듯 안절부절못하였다.

주위에서 벌어지는 죽음에 자신이 무슨 책임이라도 있는 것처럼 언제부터인가 스스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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