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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必然)

(단편 연재 : 조지아에 갈 결심 epi. 1)

by 우유강

5층 복도에 식판을 층층이 담은 급식 수레가 올라왔는지 익숙한 바퀴소리가 난다. 병실 여기저기에서 나는 소리와 간호사실 앞에서 뭔가를 요구하는 환자들 목소리로 5층 복도는 언제나 소란스러웠는데 지금은 급식 수레의 바퀴소리뿐이다.


마포에서 가장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거리 한복판에 있는 병원이 이렇게 비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병실은 텅텅 비어 보인다.


“연말이랑 명절에는 항상 이래요. 다들 집에 가세요. 가족들과 보내다 오시기도 하고 연말에 맞춰 퇴원하시기도 하고요.”


11월 끝나갈 때쯤 입원한 은혜는 덕분에 연휴 내내 1인실의 호사를 누릴 수 있었고 이제 연휴가 끝나가는 새해 첫날이다.




작정하고 암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간 건 지난 구월 첫째 주 토요일이었다. 그날은 삼 개월마다 한 번씩 혈압 약을 타러 가는 날이었고 내과에서 약을 타고, 바로 위층 유방외과로 올라가면 동선이 절약될 것이었다.


왼쪽 유방 바깥쪽에서 몽우리가 만져진 게 언제부터였는지 은혜는 확실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유난히 지치고 피곤한 날엔 어김없이 왼쪽 겨드랑이에서 부기와 통증이 느껴졌고 어느 날 오랜만에 정성 들여 때를 밀다 왼쪽 젖가슴 안에 단단한 덩어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덩어리는 생각보다 컸다.


건강한 여성이라면 한 달에 며칠씩은 젖가슴 안으로 뭔가 만져지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그건 생리가 끊기는 완경 이전에나 있어야 할 일이다.

한쪽 가슴은 물 풍선 같이 말랑한 데 다른 쪽만 기분 나쁘게 딱딱한 덩어리가 만져지고 있었다.

좌우대칭인 경우, 비교해서 서로 다르다는 건 사고가 발생했다는 신호다.



“아!” 하는 짧고 깊은 탄식이 폐부에서부터 우러나왔다.



이년마다 챙겨야 하는 정기검진마다 치밀 조직이 나왔고 두 번 정도 찾아갔던 여성의원에서 그 정도 치밀 조직은 한국여성에게 흔한 특성이라고 진단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니 그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무시했었다.

치밀 조직을 무시한 것이 가장 큰 실수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세상 모든 일은 주변의 조건들이 묘하게 부합하며 흐름을 만들어내고 그 흐름 끝에 나타나는 것이라는 인과율을 은혜는 믿는 편이다.

동시에 그 어떤 경우에도 ‘선형 방정식’처럼 단선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도 없다고 믿었다.

‘확률’

‘확률’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에 대해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완벽한 개념이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네. 확률적으로 그렇잖아.’ 라고 말하거나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잖아. 확률적으로 그래.’라고 말하더라도 말이다.



살아가며 부딪히게 되는 많은 일들 앞에서 은혜는 종종 인과율이나 확률을 떠올리며 적응하려 애써왔다.

유방암이 생겼다고 한들 그럴만한 발생 조건들이 숱하게 있었을 것이고, 확률적으로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생겨서는 안 될 일이라는 건 없다는 것이 자명하므로 의사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울고불고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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