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로 알려드릴 위스키 생산지는 일본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일본의 위스키 산업은 100년이 조금 넘는 역사를 가졌습니다. 특이하게도 한 사람의 열정과 노력에 의해 이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가 바로 닛카 위스키의 창립자인 타케츠루 마사타카 (竹鶴 政孝)입니다.
1894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타케츠루는 1916년, 오사카의 양조 회사 셋쓰주조(摂津酒造)에 입사했습니다. 그는 입사 초기부터 양조 기술에 대한 재능을 발휘하며, 맥주 품질 관리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여름철 높은 온도와 습도로 인해 맥주의 효모 활동이 과도하게 이루어져 품질이 변질되거나 병이 폭발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타케츠루는 효모 활동을 조절하기 위한 보관 기술을 개발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는 일본 내 맥주 유통과 품질 관리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셋쓰주조는 그의 성과와 재능을 높이 평가해 1918년 그의 스코틀랜드 유학을 지원하기로 결정합니다.
타케츠루는 글래스고 대학교(University of Glasgow)에서 화학을 전공하며 위스키 제조의 과학적 기초를 쌓았습니다. 그는 헤이즐번(Hazelburn) 증류소에서 실습하며 전통적인 스코틀랜드 방식의 증류, 숙성, 블렌딩 기술을 익혔습니다. 또한 스코틀랜드 여성 리타 카우언(Rita Cowan)과 결혼하며, 개인적으로도 새로운 연을 맺었습니다.
그의 유학 경험은 일본에서 보기 드문 사례였고, 스코틀랜드의 정통 위스키 기술을 체계적으로 배운 일본인으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1920년 귀국한 타케츠루는 셋쓰주조에 복귀했지만, 회사는 경영난 속에서 가짜 양주를 제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위스키 제조를 고수하려 했으나,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결국 1922년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회사를 떠났지만 이미 업계에 그의 명성은 높았습니다. 곧 그에게 코토부키야(寿屋)의 사장 토리이 신지로(鳥井 信治郎)가 접근하게 됩니다. 코토부키야는 이미 일본제 와인에 주정을 섞어 만든 아카다마 포트와인(赤玉 ポートワイン)을 성공시키며 고급주류의 가능성을 보고 있었습니다. 위스키 사업을 염두하던 토리이는 타케츠루에게 당시 대졸 신입사원의 8배에 달하는 연봉을 제시하며 그를 영입합니다.
1923년, 타케츠루가 코토부키야에 합류하고 일본 최초의 위스키 증류소가 교토 인근의 야마자키에 세워지게 됩니다. 당시 코토부키야에는 싱글몰트에 사용하는 단식증류기에 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증류소의 위치 선정, 설계부터 건설까지 대부분을 타케츠루가 관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29년 야마자키 증류소는 첫 제품인 Suntory White Label이 출시합니다. 그러나 첫 제품은 상업적 성공은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후 야마자키 증류소의 운영 방향을 두고 토리이와 타케츠루 사이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게 됩니다. 결국 타케츠루는 1933년 코토부키야를 퇴사하게 됩니다. 그는 북해도 요이치(余市)로 이동해 1934년 대일본과즙(大日本果汁)을 세워 사과즙과 브랜디 생산을 시작하게 됩니다. 194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위스키 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1952년, 대일본과즙은 공식적으로 사명을 닛카 위스키(Nikka Whisky)로 변경합니다.
토리이가 남은 코토부키야는 이후 1937년 몰트위스키와 연속식 증류기로 만든 주정에 아카다마 포트와인을 블렌딩한 '가쿠빈'이 대 흥행하며 성공 가도를 달립니다. 이후 코토부키야는 1963년 경영권 계승과 함께 ‘산토리’로 사명을 바꾸게 됩니다.
그렇게 닛카와 야마자키는 꾸준한 라이벌 관계를 유지합니다. 이것은 1977년 닛카 위스키가 산토리의 라이벌사인 아사히 산하에 들어가게 되며 심화됩니다. 여전히 닛카와 야마자키는 일본 위스키 업계의 오랜 경쟁자로 남아있습니다.
일본 위스키는 근 십 수년 동안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일본 드라마 '맛상(マッサン, 2014)'의 흥행이 지목됩니다. 닛카 위스키의 창립자 타케츠루 마사타카와 그의 아내 리타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흥행하며 일본 내 위스키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실제로 닛카 위스키를 보유한 아사히는 이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이용했으며, 타케츠루의 이름을 딴 위스키 브랜드 매출은 전년 대비 320% 증가했다고 발표되었습니다. 물론 드라마 맛상이 내수용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국제적 인기에 드라마가 준 영향은 적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본 위스키가 국제적으로 조명받게 된 것은 2014년, 저명한 위스키 평론가 짐 머레이(Jim Murray)가 그의 저서 위스키 바이블 2015에서 일본 산토리의 ‘야마자키 싱글 몰트 셰리 캐스크 2013’을 세계 최고의 위스키로 선정한 일이 계기로 보입니다. 이는 일본 위스키가 처음으로 이 순위의 정점에 오른 사건으로, 위스키의 본고장인 스코틀랜드를 제치고 달성한 쾌거였습니다.
머레이는 이 위스키에 100점 만점에 97.5점을 부여하며,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천재적”이라고 극찬했습니다. 당시 머레이가 스카치 위스키를 두며 ‘타락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업계의 행태를 비판하던 시기였기에 일본 위스키의 1위 등극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평가는 일본 위스키의 품질과 명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본 위스키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자 일본 내 위스키 업계에서는 자국 위스키에 대한 자체적인 규정이 필요함을 인지했습니다. 그렇게 2021년 4월 1일부터 일본양주조합(Japan Spirits & Liqueurs Makers Association)은 ‘재패니즈 위스키’라는 라벨을 사용할 수 있는 위스키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설정했습니다.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원재료: 맥아와 곡류를 사용하며, 물은 일본 국내에서 채취한 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제조 과정: 당화, 발효, 증류는 일본 내의 증류소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증류 시 알코올 도수는 95% 미만이어야 합니다.
숙성: 내용량 700리터 이하의 나무통에서 일본 국내에서 최소 3년 이상 숙성해야 합니다.
첨가물: 색조 조정을 위한 캐러멜 색소의 사용은 허용됩니다.
도수: 병입 시 알코올 도수는 40% 이상이어야 합니다.
다만 이 기준은 일본 식약처 등 정부 기관이 아닌 일본 주류 협회에서 설정한 것이므로 법적 강제성은 없으며, 지키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업계의 주요 증류소들이 협회에 소속되어 있어 자발적으로 준수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치치부 등 일본의 소규모 증류소들이 늘어나는 추세이고, 2010년대 이후로는 일본 위스키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며 일본 위스키 업계의 앞날은 밝아 보입니다. 오늘날 타케츠루의 열정은 여전히 살아남아 아시아 위스키의 선봉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
Harper, Douglas. “Masataka Taketsuru: Pioneer of Japanese Whisky.” Journal of Whisky Studies, vol. 18, no. 2, 2022, pp. 121–134.
“Masataka Taketsuru: The Father of Japanese Whisky.” Nikka Whisky Official Website, Nikka.
“Nikka Joins Asahi Breweries.” Asahi Breweries Corporate History, 1977.
Nomura, Hiroshi. The Japanese Whisky Handbook. Tuttle Publishing, 2020.
“The History of Suntory Whisky.” Suntory Global Website, Suntory.
Ulf, Stefan Van Der. Whisky Rising: The Definitive Guide to the Finest Whiskies and Distillers of Japan. Cider Mill Press, 2017.
“일본 위스키는 어떻게 세계를 석권했나.” 한국일보, 11 Nov.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