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근무 날이다. 하남에서 수원까지 출근하기에 아침부터 분주하다. 아내는 출근을, 아이들은 등교를 했다. 거실에 홀로 앉아 오늘 하루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야간 근무니까 잠을 못 잘 테니, 집에서 푹 쉬었다가 출근해야지.‘ 잠시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해보지만 잠이 쉽게 들지 않는다.
오후 3시다. 광역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기에 서둘러야한다. 다행히 시간에 맞춰 광역버스에 올랐다. 낮이라 버스가 텅텅 비었다. 버스는 외곽순환도로를 달려 야탑역에 도착했다. 지하철 시간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분당선을 탔다. 다행히 자리에 앉았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다가 졸다가를 반복하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바로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후 저녁을 먹고, 주간 근무 조와 교대했다. 2시간 넘게 대중교통을 타고 왔더니 접수대 앉자마자 피곤함이 몰려온다. 뜨거운 커피를 한잔 타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오늘의 첫 전화벨이 울렸다.
"경기 119 상황실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신고자분? 신고자분?"
".......“
나는 전화를 끊고, 신고자에게 세 번 정도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신고자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혹시나 위험에 처한 상황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신고자에게 ‘필요하면 119로 다시 신고해주세요.’라는 문자를 보낸 후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음 신고 전화를 기다렸다. 바로 접수대의 벨이 울렸다.
"경기 119 상황실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네. 여기는 서울 소방입니다. 경기도 시흥시 쪽에 승강기 구조 요청 건입니다. 신고자 분, 말씀하세요. 경기 소방 연결됐습니다."
“경기 119 상황실입니다. 신고자분, 연결되었으니 말씀하세요. 서울 소방 직원 분 연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여기는 손말이음센터입니다. 장애인분이 저희 쪽에 연락해서 승강기 문이 안 열려서 도움을 요청한다고 하네요."
"아. 네. 그러면 저희가 출동을 나가겠습니다. 혹시 정확한 현장 주소와 필요한 정보가 있을까요?"
"잠깐만요. 제가 장애인분과 메시지를 보내서 확인해보겠습니다."
"네.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건지 궁금했다)"
"시흥시 정왕동 쪽이라고 하는데요."
"그래요. 정확한 주소가 필요한데요? 확인 가능할까요?"
"잠깐만요. 확인해볼게요. (헤드셋 너머로 키보드 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신고하신 장애인분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 같다) 시흥시 정왕동 000번지라고 합니다."
"잠깐만요. 제가 주소 검색을 해보겠습니다. (나는 신고자가 불러준 주소를 신속하게 검색했다. 주소가 조금 달랐다) 신고자의 주소가 조금 다른데요. 혹시 건물 이름이 @@건물 맞나요?"
"잠깐만요. 제가 장애인분과 메시지로 확인해보겠습니다. (잠시 후) 맞는 것 같다는데, 정확하게는 모르겠다고 하네요."
"아. 그래요. 그러면 승강기 버튼 위의 승강기 번호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3453-456 이런 식으로 말이죠. 확인 가능할까요?"
"잠깐만요. 확인해볼게요. (잠시 후) 승강기 번호가 0000-000이라고 하네요."
"그렇군요. 그러면 제가 승강기 번호 0000-000을 검색해보겠습니다. (검색 후) 혹시 거기 시흥시 정왕동 @@빌딩으로 나오는데, 확인 가능할까요?"
"네. 잠깐만요. (잠시 후) 네, 맞는다고 하네요."
"다행이네요. 저희가 출동을 바로 나갈 건데, 혼자 고립되신 건지? 몇 층에 계신지요? 혹시 구조대상자가 아프시거나 불편한 게 있으신지요? 필요하면 구급차도 출동 가능합니다. “
"잠깐만요. (잠시 후) 아니요. 괜찮답니다. 혼자이고, 2층에 있답니다. 문 개방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잠깐만요. '구조출동, 구조출동, 시흥시 정왕동 @@빌딩, 엘리베이터 1명 고립', 구조대 출동했습니다. 혹시 더 필요하신 게 있나요?"
"잠깐만요. (잠시 후) 괜찮다고 합니다."
"다행이네요. 구조대에서 전화 갈 수 있으니까, 기다리라고 전해주세요. ‘너무 무서우면 크게 심호흡하시라’고도 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제가 더 감사하네요.“
6분 넘게 통화한 끝에 구조대를 정확한 주소로 출동시킬 수 있었다. 보통 주소만 파악하면 바로 출동인데, 이번 신고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정확성이 필요했기에 최대한 침착하게 대응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손말이음센터를 검색해봤다. 신고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청각장애인분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관이었다. 옆 동료에게 방금 출동 건을 이야기하고, 손말이음센터에 대해서도 알려줬다. 사실 구조대 출동을 보낸 후에도 걱정이 많이 되었다.
‘혹시 중간에 잘 못 전달받은 것은 없는지? 제대로 된 주소로 출동을 보냈는지? 구조대상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았는지? ‘
그래서 구조대의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을 했다. 다행히 구조대가 신속 · 정확하게 도착해서 구조대상자를 안전하게 구조했다. 내가 직접 장애인분을 도와 드린 건 아니었지만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삼자를 통해서 신고 접수받은 게 처음이라 당황스러웠지만 침착하게 신고를 받고, 출동대에게 정확한 현장 정보를 제공했다.
다음 날 아침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어제 장애인분 구조출동이 생각났다. 상황은 심각하지 않았지만 아찔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침착하게 대응했고, 침착했기에 구조대상자를 안전하게 구조할 수 있었다. 구조대상자, 손말이음센터 상담사, 그리고 나까지 세 명의 합이 잘 맞았기에 해결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도 신기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간접적으로 장애인 분에게 도움을 줬다는 기쁜 마음 때문인지 다른 퇴근 날과 달리 지하철 의자에 기대자마자 두 눈이 스르르 감겼다. 잠시 눈을 감았던 것 같은데 벌써 야탑역이다. 다른 어떤 날보다 잠이 참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