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둥이 육아맘으로 살고 있다

그냥 나의 자유로운 생각

by 사남매맘 딤섬


내나이 30살.. 첫 아이를 낳았다 다난성 난소 증후군에 자궁 내막이 얇아서 임신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산부인과로 부터 들었었다. 유산 위험도 있어서 조심했었고 젊은 나이에 낳은게 아니기 때문에 한명만 낳아서 잘키우자고 생각했다. 큰 아이 돌 무렵 경력 단절 기간이 짧고 내 직업으로 복직이 가능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워킹맘으로 살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하고 준비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난다. 왜그런 고민을 했었을까? 하지만 다시 그시간으로 돌아가더라도 그 고민을 할 것 같긴 하다. 누가 알았을까? 내가 다둥이 맘이 될지... 계획도 한적이 없는 다둥이 육아를...



그렇게 나는 남자 아이 세명을 낳았다.

(이대로 끝일 꺼라고 이제 더이상의 아이를 없을꺼라고 했는데 나는 돌아갈 수 없는 다둥맘의 길을 걷고 있다)


20대 중반쯤 .. 시골에 할머니들이 딸 낳을 상이라고 딸만 낳아서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고 걱정을 많이 했었다. 생각해보면 다 미신 같은건데 딸 둘 낳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혼자여서 자매가 부러웠는데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우연인지 셋다 태몽도 각도법도 딸이었다. 하지만 내 아이들은 남자 아이들 이었다. 그시절 나에게 그말을 해주던 할머니들은 이미 안계시지만 말씀해 드리고 싶다.


"그런거랑은 상관 없는 것 같아요 저 아들 셋 낳았어요"



귀엽고 사랑스러운 내 아이들.. 힘든 순간도 정말 많았는데 아직은 어려서 인지 애교로 엄마를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30대를 아이만 낳으며 보낼꺼냐고 니 삶은 없냐고 주위 사람들이 많이 물어본다. 이제 복직은 힘들꺼다 무슨일을 할 생각이냐? 말을 많이 듣고 있다. 내 삶이 어떻게 흘러 갈지 나도 잘 모르겠다. 10대 부터 내가 어떤 자격증을 따고 어떻게 할지 무슨 대학을 가서 무슨 일을 할지 생각했고 내 뜻대로 해왔다. 20대 때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열정적으로 달려 나갔었다. 30대의 내 미래까지 생각하면서 이루고 싶은 꿈도 있었다. 아이라는 변수를 만나기 전까지 였다.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30대의 삶..

아들 셋 다둥이 맘이 되었고 그뒤 내가 어떤 삶을 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처음이고 그뒤 내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 육아를 보더라도 나와는 달랐다. 나는 현재에 아이들과 내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 삶에 최선을 다한다 것을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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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키우면서 내 삶을 살아 가기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내 삶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날 힘들게 할 때도 있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게 할 때도 있었다. 즐거움도 주고 상상도 못한 기쁨을 준다. 이런 모든게 날 성장시켜주었다고 생각한다. 20대에는 상상도 못한 30살의 내가 있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 기간이 길어 지면서 5년 넘게 우리 부부는 취미 생활도 개인적인 생활도 하기가 힘들었다. 막내가 어느정도 클 때까지는 그런 삶이 힘들꺼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 고민이 많았었다.


둘째를 출산 한 후, 서로 머가 필요한지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신랑은 게임이 필요했고 나는 자유로운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이야기만 계속 했었다. 다행인게 둘다 억지로 시간을 만들어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명에게 육아의 무게를 넘기지 않았다. 한명에서 둘이 되는건 두배 정도의 힘듬 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니었다. 사람들이 3~4배는 힘들다고 했는데 내 체감은 더 했던 것 같다. 나이가 다른 두 아이...갑자기 동생이 생긴 어린 아이.. 그게 어떤건지 낳고 나서 알게 되었다. 그 힘듦은 부부의 몫이었다.

둘째가 통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내가 둘을 재우고 신랑에게 게임 시간을 주었다. 늦은 시간 2~3시간 플레이인데도 신랑은 너무 좋아 했다. 둘째가 모유를 때고 엄마가 없어도 되는 시점이 왔다. 주말에 신랑이 두 아이를 보고 혼자 첫 외출을 했다. 처음에는 어디를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5년만? 6년만?의 외출에 만날 친구도 갈 곳도 모든걸 잃은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서점에 가서 책을 보다가 책한권과 예쁜 펜 몇개를 사었다. 서점에 커피숍도 있고 다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었다.

그 뒤로 종종 난 나만의 작은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일은 안할꺼가? 니 삶을 살아야지!! "



정말 많이 듣는 말이다. 셋째 임신 할 때 부터 듣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수없이 듣고 있는 말 중 하나다

일 해야지 니 삶을 살아야지 2개가 세트처럼 따라온다. 20대 때는 정말 열정적으로 꿈을 향해 달렸었다. 30대 때의 내 멋진 삶을 기대했었었다. 상상과는 다른 30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처음에는 일을 하지 않고 있는 내가 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 않고 무의미하다고 느껴졌었다. 내 삶을 살아야 하는데 지금 머하고 있는거지? 라는 생각도 했었었다. 그런 생각이 바뀐건 셋째를 출산한 이후 인 것 같다. 일을 하는 것이 내 삶인가?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 고민은 아직도 하고 있다.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고 입히기만 하면 크던 시절이 아니기 때문에 나도 같이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는 한다. 하지만 내가 다둥이를 키운다고 해서 내 삶이 없는 건가?

지금 나는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 미래가 예측되지 않는다. 내 미래를 예측하며 쉼없이 달려나갔었는데 예측이 되지 않으니깐 불안하다. 나의 40대는 어떨까? 나의 50대는 어떨까? 나중에 내가 살아온 시간을 후회하고 아쉬워할까? 많은 고민을 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해본적 없는 많은 고민들을 해보고 있다. 20대와는 전혀 다른 고민들이 나를 휘어 감고 있다. 나도 답이 없다.

그치만 하나 확실한건 지금 이 시간 이 순간도 나는 내 삶을 알차게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 덕에 나에게 있는 다양한 감정과 표정을 알게 되었다. 세상을 또 다르게 보는 시선도 생겼다. 아가씨때의 여행, 부부의 여행, 아이 1명과의 여행, 아이 2명과의 여행, 아이 3명과의 여행 모두 다르다. 그런 새로운 배움이 힘들기도 하지만 재미있다.



다둥이를 키운다는 건


개인적으로는 한명을 키울 때가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다둥이가 되고 큰애가 하고 싶은것도 시켜주지 못할 때도 있고 공부나 이런걸 봐주지 못할 때도 있다. 싸우면 어떻게 해야 할지 늘 고민하고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 주다 보면 나도 멘붕에 빠진다. 하지만 셋이 함께 웃으며 공원을 뛰어 다니고 놀이터에서 셋이면 시끌 벅적하다. 큰애가 먼가 할 때마다 동생들의 호응이 큰 힘이 되어 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이는 성장해 나가고 있다. 어린 세아이를 키우지만 종종 커피 한잔 마실 여유가 있다. 같이 보드게임을 하며 신나게 놀기도 한다. EBS 교육방송에 놀이 과제를 보내고 TV에 나오면 서로 기뻐하며 춤을 춘다.

단지,

아이 2명을 기준으로 모든게 이루어진 한국에서 어디를 가기 힘들 때도 있다. (호텔 한번 가려고 하니깐 예약이 되는 곳이 없다. 택시도 인원 초과로 거부를 당하고 식당에서도 자리가 없다고 할때가 많다)

왜 모든건 아이 2명이 기준일까? 요즘은 세자녀도 정말 많은데..

세 아이를 데리고 지하철을 타면 할머니들이 몰려드신다. 소문을 들으시나? 그리고는 한마디씩 다 하고 가신다. 그게 아이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도 있다.

어찌보면 저출산이라곤 하지만 아이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 다둥이 보다는 맞벌이에게 맞춰져 있는 제도에..

아이를 낳고 있는 내가 어리석어 보이기도 한다.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다둥이를 낳아서 힘든것도 많고 잃은 것들도 많다.

하지만 얻은 것도 많고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새로운 풍경을 바라 본다.

아이들도 서로 의지하며 즐거워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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