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중이라는 말의 위로
한 번도 열심히 산 적이 없던 건 아닐까. 아니,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살아낸 날들은 어디로 흘렀고, 어디에 멈췄을까. 무엇을 위해 잘 살고 싶었는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사는 게 마음처럼 되지 않고 괴로워서, 그래서 더 잘 살고 싶었던 건 아닌지.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던 그 집에서, 이제는 나만의 삶,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선택권이 내 손에 주어졌는데, 막상 살아보니 생각만큼 잘 살아내지 못한 것 같아서 놀랍고, 또 조금 허무했다. 한때는 그 집이 나의 숨통을 막고 있다고 믿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나 보다. 그냥 나는 다 크지 못한 어른아이가 되었다. 늘 생각했던 것과 달리 현실은 이렇게 다르고, ‘잘 살아낸다’는 말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각박한 현실에 어쩌면 매 순간 낭만이라도 부여잡고 싶어서 애쓰며 살아온 건지도 모르겠다. 살아온 기억의 합이 나의 삶이 된다는데, 나는 왜 그 합이 허무로만 채워진 것 같은 걸까. 조금 더 아껴서, 조금 더 느긋하게 살아볼 걸. 아니, 대체 어떻게 사는 게 열심히 사는 걸까. 무엇에 진실해야 했고, 무엇에 집중했어야 했을까.
나는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하루를 살아내야 했던 걸까.열심히 산다는 게, 거창한 계획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있는 그대로 데려오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마음 하나로도, 사람은 꽤 먼 길을 걸어오기도 하니까.
그렇게 열심히 살고 싶었던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면, 그저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평범하게 출근하고, 돈을 제때 벌고, 밥을 잘 챙겨먹는 사람. 상처를 조용히 넘기고, 감정을 어색하지 않게 정리하고, 사소한 거엔 휘청이지 않는 어른처럼. 그게 ‘나’이기보단 ‘이상적인 이미지’였는데도, 나는 늘 거기 닿지 못하는 스스로를 괜히 부끄러워했고, 방 청소가 며칠씩 밀리거나, 식사가 하루 두 끼로 줄어드는 날이면 괜히 자책부터 들었다.
사는 게 버거운 건 당연한데, 그 당연한 감정을 늘 숨기고 견디는 게 어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자주 무너지고, 그 무너짐을 아무도 모르게 수습하느라 더 지쳐버린다. 진짜 힘든 날엔 침대 옆에 컵라면 용기가 며칠씩 쌓이고, 핸드폰 화면만 멍하니 들여다보다 하루를 날려버릴 때도 있다. 나조차 나를 실망스럽게 느낄 땐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은 마음이, 목 뒤로 천천히 가라앉는다.
괜찮은 척하려고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와 현관문을 닫는다. 나 혼자라는 사실이 무겁게 느껴진다. 감정은 제때 표현하지 않으면 몸에 고이고, 그게 쌓이면 별일 아닌 일에도 크게 흔들린다. 나는 그런 날들을 몇 번이나 겪고 나서야 진짜 나를 돌보지 않았다는 걸 알아챈다.
요즘은 그냥, ‘잘 살자’는 말보다 ‘무너지지 말자’는 말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대단한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정시에 밥을 챙겨먹고, 아픈 곳이 있으면 병원에 가고, 하루에 한 번쯤 숨을 돌릴 시간을 갖는 것. 그 정도면 오늘도 잘해낸 거라고, 조용히 인정해주는 연습을 하고 있다.
모든 걸 잘하지 않아도 된다. 어설퍼도 괜찮고, 조금 무너져 있어도 괜찮다. 사람은 그렇게 사는 거라고, 그걸 이제야, 아주 천천히 알아가는 중이다. 나를 조금 덜 미워하는 법, 남의 기준으로 나를 깎아내리지 않는 법을 이제야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그런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지금, 나는 아직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았지만, 어디로든 계속 가고 있다. 어쩌면, 지금 이 길의 한복판이, 내가 그렇게 찾아 헤맸던 ‘살아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