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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을 곁에 두는 방법

by 박진현

살면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과 친구와 좋은 사람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친구 1명과 좋은 사람들 몇몇이면 세상을 아주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서 많은 사람들을 사귀는 것이 좋고 주변에 많은 사람들을 두는 것이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것이 행복하고 좋다면 그것도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냐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는가는 사실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오고 가는 마음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마음을 주었는데 오는 마음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마음이 왔는데도 가만히 있어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을 주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니까요.


이 글을 읽는 우리 아이가 몇 살이든 상관이 없이 적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부모로서 아이가 좋은 사람들을 가까이하도록 교육을 하겠지만 아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당연히 실수도 할 수 있고 때로는 주변에 사람이 모두 사라지기도 할 텐데 그럴 때, 인생에서 인간관계에 대해서 회의감이 올 때도 이 글을 읽고 다시금 시작했으면 좋겠고, 설령 이 글을 읽는 순간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사귀고 있다고, 자신의 인간관계는 완벽하다고 생각할지라도 이 글을 읽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알려주고 싶은 것은 오고 가는 관계에 있어서 그 어떤 관계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남이 있다면 반드시 이별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만남이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것처럼 이별 역시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찾아오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슬플 수도 있지만 만남과 함께 하는 과정은 사실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람은 만남의 순간을 간직하며 관계를 이어하고 이별한 후에는 이별의 순간을 간직하며 생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남의 순간과 이별의 순간입니다.

물론 이별의 순간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는 관계의 모든 과정이 아름다워야 하겠지요.


그 과정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어렵고 방법도 다양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가장 중요한 것들만 알려주고 싶습니다.

먼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 상대방에게 '증오심'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관계를 맺고 살아가다 보면 그게 누구라도 수많은 감정들을 얽고 섥고 살아갑니다.

기쁠 때도 있지만 슬플 때도 있고 분노할 때도 있고 짜증이 날 때도 있으며, 서운할 때도 반드시 있습니다.

그런 감정들이 쌓이면서 예쁜 관계를 만들어가니까요.

하지만 증오심은 다른 감정입니다.

블로그 사진4-001 (1).png 증오

증오심이라는 감정은 분노한 감정이 아닙니다.

분노와 증오심은 완전히 구별됩니다.

분노는 어떤 사건이나 행동에 대해서 '일시적'으로 올라오는 감정입니다.

그리고 분노가 생기는 이유는 '타인을 굴복시키고자 하는 수단'입니다.

나의 생각이 관철이 되지 않을 때 상대방으로 하여금 하의 의견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수단으로써 분노라는 것을 사용하는 것이죠. 그래서 분노는 엄연히 말하면 이기심에서 나오는 폭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 분노는 일시적이어서 금방 가라앉습니다.

그리고 분노는 풀어질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증오심은 다릅니다.

증오심은 일시적이지 않고 아주 길고 지속적입니다.

그리고 어떤 특정한 사건이나 행동이기보다는 대상 자체의 존재에 대해서 각인되는 감정입니다.

"나는 너의 이런 행동이 싫어!"가 분노라면 "나는 네 존재 자체가 너무 싫어!"는 증오인 것이죠.

분노의 목적은 생각이나 의견을 상대방으로 하여금 관철시키는 수단이라면 증오심은 상대방에게 복수하고 배척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닙니다. 분노보다 파괴적이고 무서운 감정인 것이죠.

그리고 신체적인 반응도 다를 수 있습니다.

분노한 사람은 순간 편도체가 활성화되면서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심박수가 올라가고 근육이 경직이 됩니다. 즉 분노한 순간에 뇌는 6세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증오는 완전히 반대로 냉정하고 계획적일 수 있습니다.

아주 정상적인 상태에서 상대방을 의도적이고 계획적이고 냉정하게 싫어하는 것입니다.


분노는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거나 실수를 했을 때, 상대방과 의견이 충돌할 때 올라오는 감정이라면 증오는 상대방으로부터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거나 극한의 수치심을 느낄 때, 반복적으로 상처를 받을 때 나타납니다. 메커니즘 자체가 다른 것이죠.

상대방을 분노하게 만든 경우라면 금방 대화로 화해할 수 있고 일시적이지만 상대방을 증오하게 만든 경우라면 평생 그 사람과 적이 되고 언젠가는 복수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복수를 당하지 않더라도 평생 누군가가 나를 의도적으로 싫어하고 혐오한다면 그것만큼 슬픈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일이 바로 상대방에게 증오심을 심는 것입니다.


사람이 모인 자리에 가면 아무런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이 이렇게 오고 가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유 없이 싫어하게 되는 마음의 문제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있을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세상이라는 것은 마음으로 투영된 그 사람의 세계이니까요.

상대방에게 내가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마음으로 투영된 세상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조금은 어둡고 심란한 상태라는 것을 뜻합니다.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나에 대한 시선도 바뀔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이것만 알아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아름다운 이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블로그 사진4-001 (2).png 배신

1. 관계적 배신

"믿었던 사람이 나를 무너뜨렸을 때"


대표적으로 연인,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거나 불륜을 저질렀을 때, 가까운 사람이 자신의 비밀을 누설하거나 이간질을 하거나 뒤통수를 칠 때, 신뢰했던 동료, 상사가 자신의 공을 가로챌 때,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이 힘든 상황에서 외면하거나 모욕할 때가 있습니다.


기대와 현실의 괴리가 발생하면서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라는 생각이 올라오고 '나는 이용당한 거야'라는 정체성의 혼란이 오면서 증오심이 올라옵니다. 무서운 것은 이러한 배신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증오심을 유발하는 요인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경우 깊이 이야기를 해보면 십중팔구는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관계적인 배신을 당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에 대해서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배신감으로부터 오는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감정이 다른 사람을 신뢰하는데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연하죠... 사랑이라는 아주 아름답고 큰 감정이 한 번에 무너졌으니... 사랑이 큰 만큼 증오심도 크니까요.


그래서 관계에 있어서 소중하고 사랑하는 관계일수록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반대로 사랑하고 가까우니까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훨씬 더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믿는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입니다.

블로그 사진4-001 (3).png 불공평

2. 불공정하거나 부당한 대우

"나를 깎아내리고 짓밟았을 때"


직장에서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거나 차별, 조롱을 당했을 때, 사회적으로 공개적인 비난이나 무시를 당했을 때, 권력자가 자신의 약점을 이용할 때, 부정한 방법으로 자신보다 누군가가 더 큰 이익을 얻을 때가 있습니다.


수치심과 분노가 결합하면서 증오라는 감정을 만들어내고 억울하다는 생각에서 '타인은 악한 존재다'라는 생각으로 변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사회 자체를 악으로 보고 사회 자체에 대해서 증오심을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이에서도 이러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자녀가 있는 앞에서 배우자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것이 이러한 상황이 되겠지요. 직장에서도 절대로 타인을 공개적으로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설령 상대방이 정말 큰 잘못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 잘못의 대가가 어떤지 직원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들더라도 말입니다. 잘못이나 실수조차도 소중하게 대해야 합니다. 조용한 곳에서 단 둘이서 조목조목 알려줘도 지성인이라면 충분히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지적을 하는 사람 역시 항상 완벽한 사람은 아닙니다. 타인에게 대한 태도는 곧 '내가 잘못했을 때 받아도 되는 태도'라고 모든 사람에게 허락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깎아내리고 짓밟으면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를 깎아내리고 짓밟아'라고 허락하는 것과 같습니다. 공개적으로 자녀가 있는 앞에서 배우자를 깎아내리고 비난하는 것은 자녀에게 부모를 그렇게 대해도 된다고 허락하는 것과 같습니다.

블로그 사진4-001 (4).png 피해자와 가해자

3. 피해, 가해 상황

"자신이나 가족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을 때"


폭력, 학대, 사기, 절도, 살인 등으로 피해를 입거나 가해를 했을 때, 가족이나 친구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었을 때, 소중한 사람이 반복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거나 왕따를 당하거나 가스라이팅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자녀에게 정말 교육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사람들은 미래만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살아가죠.

근데 자세히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내가 상대방보다 강하다고 생각이 들면 함부로 하니 말입니다.


저는 특히 10대와 20대 아이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미래는 절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의기소침하고 아주 작고 부족한 친구라고 할지라도 10년 후, 20년 후에는 반대로 내가 그 친구에 비해서 의기소침하고 아주 작고 부족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은 상대방의 약함을 이용합니다.

비교의식에 사로잡힌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비열하게도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죠.

내가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은 나보다 상대방이 낮아지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겁니다.

학생 때는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집단을 이루고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면서 자신의 우월성을 자랑합니다.

사실은 그게 훨씬 나약하고 비열하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이죠.


사회에서는 약점을 이용하거나 상대방을 뒤에서 깎아내리면서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합니다.

사실 자신이 그 사람보다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권력을 쥐게 되면 주변 사람들이 가진 약점을 넘어서 그 사람들이 가진 소중한 것에도 접근하기 시작합니다. 제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한 둘이 있습니다.

자신들은 그런 자신들이 굉장히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만 뒤에서 사람들은 그 사람을 향해서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며 심지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걱정하기도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이나 소중한 사람을 향해서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그 사람과는 반드시 연을 끊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짓을 한 적이 있다면 심각하게 생각하고 병원을 찾아가서 상담을 받고 치료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의 경우 절대로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지금 당장 끊어야 합니다. 가볍게 생각하면 가족과 주변 사람을 모두 잃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블로그 사진4-001 (5).png 정체성

4. 정체성 위협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을 때"


인종, 성별, 종교, 지역, 정치적 신념 등으로 차별을 받았을 때, "너는 틀렸어"라는 형태의 존재 부정적 공격을 당했을 때, 자신의 인생방식이나 가치를 비하당했을 때가 있습니다.


존재에 대한 모욕감은 단순한 감정보다 훨씬 깊고 큰 상처를 남깁니다. 이런 경우 피해자는 자기 방어가 극대화되어 그 집단 전체를 증오하는 집단적 증오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쉽게 말해서 '존중받지 못할 때'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중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상대방은 깊은 상처를 받게 되고 증오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래서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기도 합니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든 삶은 온전히 존중받아야 합니다. 조금 부족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존재나 삶이 부정당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는 의외로 많은 순간 이기심에 사로잡혀서 타인을 부정하고 존중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그렇다는 것입니다.

블로그 사진4-001 (6).png 실망

5. 실망 누적

"작은 실망이 쌓여 돌이킬 수 없는 감정으로"


연인, 친구, 부모의 반복적인 무관심, 약속을 계속 어기거나 진심이 없는 사과를 반복, '이번엔 다를 줄 알았는데'가 반복되었을 때가 있습니다.


신뢰가 미세하게 무너지는 경험이 계속하여 반복적으로 누적되면 감정의 임계점이 넘어가며 냉소, 혐오, 증오의 단계로 변할 수 있습니다. 이는 조금 정도는 약할 수 있고 관계의 에너지가 소진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이 계속해서 비행을 저지를 때 선생님이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친한 지인이었는데 계속해서 습관적으로 약속을 어기고 심지어 약속을 어기는 데 있어서 전혀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괜찮다고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하고 다그치기도 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지적도 했으나 전혀 개선이 되지 않자 나중에는 제가 스스로 그 친구와 아예 만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소한 것들도 반대로 제가 존중을 받지 못하는 경우이니 말입니다.


실망한다는 것은 기대에 부흥하지 못할 때 생기는 감정입니다. 기대라는 것은 사실 그리 좋은 것은 아닙니다. 무언가를 상대방에게 바랬다는 것이고 대체로 그 바람은 상대방의 입장은 고려를 하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조금 상황이 다릅니다. 이기적인 바람보다는 인간적으로 마땅히 주고받아야 하는 신뢰에 대해서 실망을 하게 되는 것이죠. 관계에서는 마땅히 지켜져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일방적인 존중이 아니라 주고받는 존중과 신뢰가 그런 것이죠. 아주 작고 사소한 신뢰라고 해도 반복적으로 깨진다면 그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증오심까지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참 많은 것들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죠?

특히 증오심을 준다는 것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입장을 바꿔서 상대방이 나에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는 것들을 내가 상대방에게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면 사실 증오심을 심어주게 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섯 가지의 공통점을 보면 대체로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게는 가족, 연인, 배우자, 부모, 친한 친구, 직장 동료 등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사실 이것도 당연한 것이죠. 아주 먼 관계를 인간관계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많이 없습니다. 우리가 걱정하고 지켜야 할 인간관계라는 것은 사실은 가까운 관계들을 말합니다. 아주 가까운 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들을 지키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들인 것이죠. 가까운 관계들을 돌아보며 절대로 증오라는 감정을 심지 않는다면 사실 인간관계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만남이 있다면 이별이 있듯이 만남과 이별의 경계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갈 뿐입니다.

블로그 사진4-001 (7).png 사랑

아이에게


멋진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좋은 이들을 곁에 두는 것이란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많은 재산과 멋진 자동차, 건강을 가졌지만 가족과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지 못하여 고독하고 쓸쓸하게 늙어가던 사람들을 많이 봤단다. 성공이라는 것을 잣대로 그들을 평가하면 그들은 아마도 사회에서 굉장히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고 성공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면 아마도 그들에게 배우는 것이 맞겠지. 아버지도 한 때는 성공과 돈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성공을 배웠던 적이 있단다. 그러나 그건 성공을 하게 만들었지만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했지. 아마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기준으로 그들을 본다면 그들은 아마도 성공으로 볼 때 노숙자와 다름이 없는 정도의 삶이 아니었을까? 아무도 그들 곁에 남으려 하지 않고 있으려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들이 죽을 때도 마찬가지였단다. 가족과 심지어 자녀들도 그들이 죽어가는 동안 그들의 곁에 있기 싫어했단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성공, 돈,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주변의 수많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증오심'을 심었다는 것이란다. 증오심은 굉장히 뿌리 깊은 나무와도 같아서 시간이 지나면 본인조차도 그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무서운 감정이란다. 아버지는 사람이 죽을 때 딱 하나를 남긴다고 생각한단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란다. 사랑이라는 감정도 뿌리가 너무 깊은 나무여서 죽어서도 계속 자란단다. 사랑이라는 나무를 심는 사람이 되거라. 증오는 단 한 사람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심으면 안 된단다. 만약 네가 조금은 부족한 삶을 살고 조금은 가난하다고 할지라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계속해서 심다 보면 결국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거다. 아버지는 그렇게 확신한단다. 그러나 네가 세상을 가지더라도 타인에게 증오심을 심고 다닌다면 결국에는 모든 것을 잃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 될 거다. 명심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만약 이 글을 읽는 네가 누군가에게 증오심을 심었다면 당장 사과하거라. 증오심을 심었다는 것이 두려워서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대방이 평생 증오심으로 현재를 살지 못하고 과거에 얽매여서 현재의 자신을 버리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미안하고 안타깝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사과하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도 아마 상대방의 화가 풀리지는 않을 거란다. 몇 번이고 사과하거라.

기억하였으면 좋겠다. 반드시 증오심이 아닌 사랑을 심는 사람이 되거라. 네가 사랑을 심고자 노력한다면 세상 그 어떤 인간관계도 두렵지 않고 성공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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