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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반 Mar 23. 2024

우울의 단면(1)

사는 게 숙제인 여자

 열린 문틈 사이로 비둘기 한 마리가 비집고 들어온다. 그놈을 따라 들어온 녀석들이 어느새 내 발밑에서 날개를 퍼덕거리며 우글거렸다. 나를 중심에 두고 그 비둘기 떼가 사위를 점점 좁혀오고 있었고,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발레리나처럼 발끝을 꼿꼿이 세웠다. 무리 중 한 녀석과 눈을 마주쳤고 체머리 떨 듯 움직이는 머리통과 까만 부리가 공포감을 극대화했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몸집의 배가 될 법한 날개를 펼쳐 날아올라 나를 확 덮쳤다.


 짧은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눈이 번뜩 뜨였다. 몸이 들썩일 정도로 힘껏 소리를 낸 게 분명했다. 단박에 잠이 달아날 정도로 정신이 들었다. 살짝 젖혀진 커튼 틈으로 비집고 들어온 길쭉한 빛이 어둠에 묻혀있는 내 얼굴을 강렬하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 탓에,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미간의 주름을 힘껏 오므린 채로 눈꺼풀 안에서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가슴 언저리에서는 걷고 뛰기를 반복하는 때의 가슴의 박동처럼 제멋대로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팽팽한 실 끝을 튕겨 파동을 만드는 모양새로 정수리에서 사지로 헤집고 다니는 묘한 살갗의 느낌도 거슬렸다. 한동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른쪽 눈에서 볼을 타고 눈물이 한 줄 흘렀다. 슬프지도 않은데 왜 눈물이 나지, 너무 놀란 건가, 속으로 물었다. 오른손을 겨우 들어 올려 가슴에 얹고 가만가만 토닥였다. 괜찮아, 그냥 꿈이야, 하고 혼자 속삭였다. 엊그제 지하철역 앞 광장에서 떼로 모여 뜨듯한 햇빛을 이불 삼아 깃털을 부풀리며 웅크리고 있는 비둘기 떼를 보고 얼굴을 일그러트렸던 잔상이 남아 있었던 탓일 거라고 짐작했다. 비둘기가 머리통을 앞뒤로 뒤흔드는 움직임을 자세히 보면 볼수록 더 징그럽고 끔찍하다. 그래서 길을 지나다 비둘기를 보면 멀리 돌아가곤 하는데 떼를 지어 우글거리는 무리를 보면 한꺼번에 날아올라 나를 삼킬 것 같아서, 온몸의 신경을 더 세우게 된다.

 숨이 곧 멎을 듯 말 듯 가슴 언저리를 맴도는 가느다란 맥박의 움직임이 불현듯 찾아와 며칠째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증상이 심해져 짧은 숨을 여러 번 내쉬는 단계까지 되면 두통까지 몰려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머리가 묵직해 눈을 감고 누워있는데―발밑에서 우글대는 비둘기 떼―꿈속의 장면이 계속 떠올라 도리질을 치고 일어나 앉았다. 내 얼굴을 가로지르던 빛이 밖의 때를 알려 줄 뿐, 절반쯤 쳐진 암막 커튼은 제 기능을 충실히 발휘해 적당히 방안을 어둡게 하고 있었다. 양팔로 내 몸을 힘껏 안았다. 불안증세가 심해지면 자신을 안아 괜찮다고 속삭여 주라는 어느 심리학 박사의 인터뷰 기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양팔의 힘으로 가슴을 압박해 무게감을 실어주면 심리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세상에 막 태어난 아기를 엄마의 가슴과 맞대 주는 거와 같은 이치일까, 잠깐 생각했다. 한참 몸을 오그라트렸는데도 증상이 잦아들지 않아 이내 그마저도 그만뒀다.


[우울의 단면 2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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