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반 Mar 25. 2024

우울의 단면(7)

사는 게 숙제인 여자

 연희의 말끝은 늘 간질거리는 애교가 섞이지만,

 괜찮아?

라고 물을 때는 눈썹을 갈매기 날개처럼 올리며 뭔가를 확인받으려는 듯 말의 밀도를 꽉 채우곤 했다. 나는 연희를 향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연희가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사람들이 펼쳐 든 우산 위에 부서지듯 안개처럼 내려앉아 또르르 흘러내리는 이슬비의 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수직 낙하하는 빗줄기가 바닥에 내리꽂히는 수천 개의 화살 같아 보였다. 그 사이를 뚫고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과 창밖의 무채색 도로변 모습이 꼭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져 이질감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은 말이지 난 괜찮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

 사는 게 내내 역하고 힘에 부치는데, 사람이 왜 사는지가 궁금한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져서 방안에 틀어박혀 산 송장처럼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누군가 묻는, 당신 괜찮냐는 단어는 꽤 생소하다. 그리고 낯간지럽다. 그 물음에 내 속내를 드러내 보이는 게. 이제껏 연희처럼 내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이도 없었지만 나도 내게 묻지 않았다. 가끔 생각했다. 감정이라는 영역이 뇌에서 삭제 돼 버린 건 아닐까. 대부분 나를 거쳐 간 사람들은 무거운 내 대화방식을 못 견뎌 했다. 그리고 나에 대한 인내심의 한계를 깨닫고 떠나갔다. 점점 감정과 속내를 드러내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생각과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이 내게는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의 파고를 제어하는 데에 진이 빠질 정도의 에너지를 소모해야 그나마 숨을 쉬고 살 수 있었다.

 카페의 소음이 연희와 나의 침묵을 메우고 있었다. 딱히 내가 뒷말을 이어가지도, 연희가 덧말을 붙이지도 않았다. 연희는 내게 말이나 생각을 채근하지도 강요하지도 않았다. 빗줄기는 더 강해져 우산을 쓰고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의 폭우로 변했다. 바닥에 내리치는 빗소리가 카페 안의 소음을 낮출 정도로 통창을 뚫고 들어왔다.

 “집을 나올 거야. 엄마가 며칠 내로 화를 낼 거거든. 엄마는 인내심이 짧아.”

 “그렇구나. 언젠가 네가 말했던 거 기억난다. 혼자 지내는 것도 좋지. 누구에게나 혼자인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연희는 간드러진 웃음이 가라앉은 말끔한 말투로 담담히 새벽녘 술집의 기억을 더듬는 듯했다. 연희와 나는 이미 식어 버린 커피를 아주 천천히 마시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몽롱한 정신으로 허공에 흐릿한 시선을 날리며 눈을 깜빡이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는데 손에 쥔 전화의 진동이 느껴졌다. 연희의 답 문자겠거니 생각했다.

 ‘주연희의 언니 주영현님이 오늘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신이 몽롱해 연희의 부고 문자인 줄 알았다. 눈을 부릅뜨고 다시 내용을 확인하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스산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밀려 축 늘어진 나뭇가지가 사악 소리를 냈다. 서늘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는 듯했다. 다리에 힘을 주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왔던 길을 되돌아 천천히 걸었다. 분명 땅에 발을 디디고 걷는데도 다리에 무게가 실리지 않았다. 금세라도 고꾸라질 듯이 몸이 흐느적거렸다. 마치 무중력 상태의 우주 공간에서 걷는 듯 나는 듯 휘청이는 몸뚱이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신발을 벗고 식탁 의자에 앉아 상체를 구부렸다. 빈속에서 헛구역질이 계속 밀고 올라왔다.     


핸드폰이 무음인 상태로 울렸다 꺼지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암막 커튼이 만들어 낸 어둠 속에서 눈만 겨우 뜬 채로 핸드폰 액정 불빛에 시선을 고정했다. 수신인의 부재에 지친 듯 소리 없는 핸드폰 발광은 멈췄고 방안에 다시 완벽한 어둠이 내렸다. 며칠이 아니, 몇 달이 흐른 건지 가늠되지 않았다. 연희의 언니 장례식장에 조문을 다녀온 게 마지막이었나 보다. 집 밖을 나선 게. 검은 상복을 입고 위태롭게 조문객을 맞던 무표정한 연희의 얼굴이, 영정 사진으로 처음 본 연희 언니의 웃는 얼굴이 머릿속에서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해졌다. 지난한 감정들이 나를 옭아맸다. 조문객이 상주에게 으레 건네는 위로의 말조차 나는, 하지 않았다. 상대를 걱정하는 피상적인 말들의 진위가 의문스러웠고 무엇보다 나는 남겨진 이 보다, 떠난 이에 대한 연민이 더 컸다.


[우울의 단면 8 계속]


이전 06화 우울의 단면(6)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