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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네잎 Sep 07. 2021

책갈피에서 툭! 떨어진 시

-『통조림공장 골목』에서

캘리포니아 주 몬터레이의 캐너리 로*는 시(詩)이고, 악취이고, 삐걱거리는 소음이고, 독특한 빛이고, 색조이고, 습관이고, 노스탤지어이고, 꿈이다. 캐너리 로는 모여 있는 동시에 흩어진 곳이고, 함석과 쇠와 녹과 쪼개진 나무이고, 잘게 부서진 보도와 잡초가 무성한 나대지와 고물 수집장이고, 골함석으로 지은 통조림공장이고, 초라한 극장이고, 식당과 매음굴이고, 북적이는 작은 식료품점이고, 연구소와 싸구려 여인숙이다. 그 주민은, 그 사람이 말한 적이 있듯이, “창녀, 뚜쟁이, 도박꾼, 개자식들”인데, 그 말은 곧 ‘모두’라는 뜻이다.


* 캐너리 로(Cannery Row)는 말 그대로 '통조림공장 골목'이라는 뜻이다.


-존 스타인벡, 『통조림공장 골목』, 문학동네, 2015, p7.





통조림공장




당신은 아직도 몰라요 내가 통조림공장 공장장인 줄 아주 특별한 공법을 가지고 있고 아주 은밀한 비법을 사용하는 줄, 따라 해 볼까요? 닭날개통조림 완두콩통조림 아르마딜로통조림 곰발바닥통조림 계란말이통조림 상어지느러미통조림 청새치통조림 쥐며느리통조림 높은산저녁나방통조림 개미알통조림 방울뱀훈제통조림 맹물통조림 은하수통조림 양떼구름통조림 망상통조림...... 당신은 어떤 통조림 앞에서 1초간 머뭇거렸나요? 이름과 상관없이 용도는 당신이 결정해요, 날개가 돋는 기분을 원하세요? 닭날개통조림을 우울한 기분과 버무리세요 5월 자운영 꽃밭을 맨발로 뛰어다니는 기분을 원하세요? 높은산저녁나방통조림에 바람 한 소절을 섞으세요 온갖 소리들이 단 한 사람을 향해 쏟아지던 밤 키스를 재현하려면 은하수통조림을 따세요 그리움이 동그라미인지 사각인지 원통인지 구분할 필요는 없어요 머뭇거리는 당신은 거인에게 초대받고 싶은 일곱 살을 원하는군요 완두콩통조림을, 내가 깜박했어요 곧 출시되는 통조림이 하나 더 있어요 이건 순전히 죽은 자를 위한 통조림 사랑했던 사람들 대신 울어줄 곡비통조림 기가 막히죠 백 년으로 할까요? 천 년으로 할까요? 유통기한은 오직 당신만이......


-김네잎, 『포엠포엠』,  2018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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