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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네잎 Nov 10. 2021

책갈피에서 툭! 떨어진 시

-  『나무』에서

수세기 전부터 인간은 우리를 땔감이나 종이의 원료로만 생각해 왔어. 하지만 우리는 죽어 있는 물건이 아니야.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이 그렇듯이 우리는 살아 있고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자각하고 있어.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고통을 받고 기쁨을 느껴.

나는 당신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언젠가는 우리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몰라…….

당신들이 그걸 원한다면 말이야.     


- 베르나르 베르베르, 『나무』, 열린책들, 2003, p285.     


          



숲은 숲  



                  

숲은 굴리기 좋게 뭉쳐져 있었지

다른 방향을 향해 굴려도 숲은 숲

굵은 굴참나무와 여린 떡갈나무 사이로 지나간 바람은

혼자서 걷고 있는 오늘의 날씨를 뭐라고 할까

언젠가부터 내 무릎에서는 동록(銅綠) 냄새가 나고

외다리로 간헐적으로 두드린 점들이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라고 애써 위로한다

지난 계절이 뱉어 낸 기척들이 쌓인

산책로를 따라 나는 쇠똥구리처럼

숲을 밀면서 안으로 들어간다 

    

초록은 언제쯤 낯설어질까

나무가 나무를 안고 새를 재우는 시간

골짜기는 얌전한 안개를 기르고

어린 짐승의 가르랑 가르랑 소리는 커지고

이 숲을 다 지나가면

수많은 사람이 되거나 희박한 우리가 될 텐데  

   

사람이 앵무새를 흉내 내도 숲은 숲

나 놀라고 나무가 화들짝 흔들려도

새가 숲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돌아와도

무릎 아래 허공은 놀라지 않으니 숲의 법령은 詩다

나는 문득 고개를 꺾어 밑둥치 근처에서

직립하는 문장들을 본다

솎아낼 필요 없는 날이미지 속에서

나는 미련 없이 생생한 통점을 버린다     


- 김네잎, 《다층》 201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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