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프레소
‘엄마가 아기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모유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유수유가는 아기에게 좋다고 여기저기서 강조한다. 그래서 나도 모유가 충분한 것은 아니었지만, 할 수 있는 한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마치 압축해서 짜내는 에스프레소처럼.
2주간 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조리원에서 짐을 싸면서도 이제 아기와 함께 진짜 생활을 하러 집으로 돌아간다니 마음이 설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편했던 조리원 생활이 아쉽기도 하고, 내가 과연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도 됐다. 이제 조리원에서의 세심한 케어와 여기서 즐겁게 수다를 떨던 친구들을 당분간은 만날 수 없으리라.
쑥쑥이를 데리고 집으로 온 첫날, 밤새 모유수유를 하는데 쑥쑥이는 30분 빨면 1시간 있다가 일어나고, 1시간을 빨면 2시간 있다가 일어났다. 나는 새벽 내내 3시간 정도 밖에 못 자고 밤새 똥 싸고 오줌 싼 기저귀를 치웠댔다. 시시때때로 일어나 또 다시 울고 있는 쑥쑥이를 보면 정말 ‘어.떡.하.지?’ 네 글자만 3D처럼 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남편이 좀 도와주면 안 되느냐고? 신기하게도 거의 모든 남편들이 그렇듯, 남편은 옆에서 아무리 아이가 울어대도 절대 깨지 않고 쿨쿨 잘도 잔다. 엄마는 아기가 칭얼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벌떡 일어나고, 내일 출근해야 하는 아빠를 차마 깨우지 못한다. 그야말로 나 홀로 멘.붕.상.태!
‘설마 이대로 백일까지? 백일쯤엔 아기가 통잠을 자는 ’백일의 기적‘이 일어난다는데. 그땐 정말 잠을 잘 자줄까?’
긴가민가 하는 두려움이 밤새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나는 쑥쑥이가 태어난 계절, 겨울에 태어났다. 그래서 조리원에서 돌아오고 얼마 안 있어 내 생일이 되었다. 난생처음, 모유수유를 하면서 생일상을 받아보았다. 시도 때도 없이 먹는 아가 덕에 나는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미역국에 밥을 말아 모유수유를 하면서 먹었고,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불었다. 집에 오니깐 산후조리는커녕, 잠이나 실컷 자 보았음 소원이 없겠다 싶었다.
조리원에서 만났던 둘째아기 엄마가,
“조리원은 천국이야. 지금 이 시간을 즐겨.”
‘천국? 그 정도야? 그럼 집에 가면 지옥이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에이~ 설마......’
나는 집에 가면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하고 처음이니까, 당연히 서툴러서 힘든 거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조리원에서만 해도 아기는 신생아실에서 돌보아주고 아기에게 모유 먹일 때랑 신생아실 소독할 때 방에서 하루 2시간 정도씩만 데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기는 항상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그게 아니었다. 집에서 하는 모유수유는 2시간마다 앉아 있느라 허리 아프고, 잠은 못자서 헤롱헤롱 대고 있는데, 나 혼자 밥하고 청소도하고 빨래는? 첩첩산중.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처음에는 부모님과 이모님의 도움을 받았지만, 한달쯤 뒤부터는 차차 내가 혼자 해내야 하는 것들이었다.
아기를 키우다 보면 어제와 오늘이 판이하게 다름을 실감하게 된다. 어제는 잘 먹고 잘 잤는데 오늘은 먹기 싫다고 울어대고 한 시간마다 깨서 난처하게 만드는가 하면, 어제는 못 뒤집었는데 오늘은 뒤집기도 한다. 어제는 아무나 얼러주면 방긋방긋 잘 웃다가도 오늘은 엄마가 아니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낸다. 책에서는 분명 이렇다 했지만, 내 아기는 안 그렇고, 남들 아기는 벌써 긴다 해도 내 아기는 이제 배밀이를 할 수도 있다. 육아에는 정해진 게 없고 정답이 없는 것 같다. 아기마다 엄마마다 성향이 다 다르니 그저 사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면 백점만점이 아닐까? 아기를 키우는 일은 참으로 신비롭다. 내가 한 생명을 낳아 먹이고 입히고 씻기며 기르는 일을 하고 있다니! ‘엄마’라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아기에게 감사한다.
조리원에서 만난 모유시대 엄마들끼리 틈틈이 카톡을 주고받았다. 서로의 아기가 커가는 것을 공유하고, 걱정을 나누며 잘 키우고 있다는 위안을 얻는다.
“잠 잘 때가 제일 예뻐요.”
아이가 갑자기 울어대면 왜 그런지 살펴주고 달래줘야 해서 진이 빠진다. 정말 자고 있을 땐 천사가 따로 없다. 몇 개월이 지나면서 밤 수유가 줄어드니, 아기는 잘 자도 밤에 가슴이 아파와 나만 유축하러 깨게 되고 덕분에 잠이 홀랑 깨버린 나는 또 잠이 오지 않는다. 아기를 낳고 가장 힘든 점이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거였다. 아기가 잠이 들면 그 시간에 엄마도 같이 자면서 쉬어야 한다던데, 하지만 현실은 어느 새 아까 생각난 육아용품을 검색하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된다. 젖꼭지, 젖병, 모유 보관팩, 살균소독기, 세척솔, 이유식 그릇, 숟가락, 턱받이, 유아의자, 유아식탁, 범퍼 등등등... 세상엔 왜 이리 신기한 제품들이 많은 걸까? 검색을 하면 할수록 백화점에서 아이쇼핑을 하듯 신세계가 펼쳐진다.
몇 달 쓰고 버릴 것 같은 장난감의 금액이 부담스러울 땐 장난감 빌리기 사이트에서 대여도 한다. 검색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폭풍검색을 하며 이게 좋은지 저게 좋은지 브랜드를 따져보고 후기도 꼼꼼히 본다. 내 아이가 쓸 건데 안전하고 편리하면서도 이왕이면 싸면 좋겠다. 그렇게 비교에 비교를 거듭하다 하다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고 슬슬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어젯밤에도 잠을 설쳐서 피곤한데 누군가 이게 제일 가성비 좋다고 딱 하나만 골라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바로 이때, 으앙~ 아직 다 고르지도 못했는데, 아기가 깬다. 대략 난감. 일단 장바구니담기. 결제는 다음 타임에 해야겠다고 미루고 아기에게 달려간다.
나는 그 어렵다는 혼합수유를 했다. 양이 충분치 않아서 한 타임 걸러 한 번씩 모유수유를 하고, 분유도 타서 먹였다. 유축도 하고 젖병 소독도 하고 말이다. 그러는 사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지난 겨울은 외출도 몇 번 못하고 아기와 함께 한 방콕이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면, 가끔 육아 일기도 써본다.
[나의 하루는 24시간 풀가동된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게 정신없이 아기 우유 먹이고 유축하고 나 밥 먹고 소독하고, 장난감으로 놀아주고 안아서 잠도 재우고 목욕시키고......힘든 점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옆에서 보는 것과 직접 겪는 것과는 천지차이...... 밤이 되면 온 몸이 쑤신다. 샤워도 잊을 채 잠에 빠져들기 일쑤......사실 할 시간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낳은 것은 세상에 태어나 내가 제일 잘 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정말이지 아기가 웃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누군가 알려 준, 한 인간의 몸에 두 개의 심장이 있을 때가 바로 임신 기간이라는 말이 정말 신비롭게 다가온다. 엄마가 되게 해 준 쑥쑥이에게 고맙다. 사랑한다! 아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