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라멜 마끼아토
아이와의 첫 만남은 마치 내가 처음으로 만났던 달콤 쌉싸름한 커피 ‘카라멜 마끼아또’ 같았다. 출산의 과정은 씁쓸한 에스프레소처럼 고통스럽지만, 보드랍고 작은 생명체는 부드러운 우유 같고, 아이가 눈을 뜨는 것을 볼 때면 달콤한 카라멜 시럽처럼 짜릿했다.
한 밤중, 한참 잠을 자고 있었는데, 아래쪽에서 뭔가 미지근한 물이 울컥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눈이 번쩍 떠지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래가 축축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뭐지? ......설마, 이게 양수?’
나는 그때 막달이었지만 예정일이 아직 3주나 남아 있었다. 바로 이틀 전, 병원에 정기검진 갔을 때만 해도 의사 선생님께서 첫째는 늦게 나온다고 말씀하셨던 터라, 아직 마음의 준비가 하나도 안 된 상태였다. 심지어 배도 별로 아프지 않았다! 다만 가끔씩 배가 조금 뭉치는 느낌은 있었는데......
‘이게 정말 양수라면 큰일이다! 만약 지금 출산한다면 아기가 작아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할지도 모르는데......’
6개월 전쯤 먼저 출산을 했던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출산 한 달 전에 배가 뭉쳐서 병원에 갔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예상보다 일찍 아기가 나오려고 하니 병원에 입원해서 몇 주 동안 누워있으라고 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혹시 나도 그런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나는 옆에서 곤히 자고 있던 남편을 깨웠다.
“자기야, 나 병원에 가야 할 거 같아.”
“어? 뭐라고?”
놀라며 눈을 번쩍 뜬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조심조심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혹시 입원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출산가방 싸 놓은 거 가지고 가자.”
“응, 알았어. 갈아입을 옷도 한 벌 챙기는 게 좋겠다.”
보통 한 달 전에는 출산가방을 싸놓아야 한다고 책에서 본 터라, 바로 저번 주에 출산가방을 싸놔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리는 새벽 5시가 조금 넘어서 집에서 나왔다. 차를 타고 주차장에서 나오는데 막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함박눈이었다. 내가 태어나던 날도 눈이 엄청 내렸었다던데...... 순간 엄마 얼굴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엄마도 이런 이상야릇한 기분이셨을까?
“아직 예정일이 3주나 남았는데 설마...... 벌써 나오겠어? 나도 그 친구처럼 안정을 취하라고 하지 않을까? 병원 가서 검사해보면 알겠지. 마음 편하게 먹자.”
남편도 나도 걱정은 되었지만, 몸이 더 나빠지는 것 같지는 않아서 조금 긴장한 채로 산부인과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은 아직 진료시작 전이어서 산부인과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날따라 급한 산모는 없는 듯 했다. 담당 선생님도 8시나 되어야 출근을 하신다고 했다. 뭔가 물이 나온 것 같다고 검사를 했는데, 그게...... 양수가 맞단다! 어머나!
간호사가 말했다.
“산모 분들이 양수가 터졌다고 하면 물이 콸콸 샐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양수가 맞습니다.”
“네? 오늘 아기가 나온다고요? 아직 3주나 남았는데?”
‘어머, 나 출산 하는 거야? 오늘?!’
남편도 당황스러웠던지, 그 새벽에 애 낳으러 왔다고 부모님께 알리기도 뭐하고 우리 둘이서 잘 해보자 했다. 우리는 일단 분만 대기실로 들어가 배 뭉치는 검사를 하는 장치를 달았다. 배에 막 힘이 들어가는 것처럼 조여 오는 이상한 느낌, 그러면서 골반뼈도 조금 아픈 것 같았다. 배에 붙여놓은 장치를 따라 그래프가 왔다갔다 오르락 내리락 움직였다. 배 뭉치는 간격이 점점 짧아지고 나는 무서운 마음에 무통주사를 놓아달라고 했다. 새우등처럼 등을 구부릴 수 있어야 무통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미 너무 진행돼서 아파하는 산모는 무통도 도움 받을 수 없는 거라고. 그런 건 왜 진작 알려주지 않는 걸까? 다행히 나는 아직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등을 충분히 구부릴 수 있었고, 무통을 맞았고, 다만 배가 뭉치는 것은 때때로 딴딴하고 묵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못 참을 정도로 아프지는 않았으니 정말 다행이었다.
배가 뭉쳤다가 풀렸다가를 반복하며 몇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분만 임박! 나는 가족분만실로 옮겨지고 남편도 수술실에 들어갈 때 입는 초록색 복장을 하고 따라 들어왔다. 아기가 나오기 직전이 되어서야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나타나셨다.
“자, 배가 뭉치는 느낌이 들 때 힘을 주어야 해요.”
‘아, 배가 뭉칠 때가 아기가 나오려고 힘을 주는 때구나. 나도 타이밍을 잘 맞춰서 힘을 줘야 아기가 나오기가 쉽겠구나!’
잘 알아들었지만, 타이밍을 잘 맞춰서 호흡을 하면서 배에 힘을 주는 거라고 산모교실에서 배웠지만, 라마즈 호흡법 같은 건 이미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무통을 맞았어도 심하게 뭉치는 느낌은 계속 들었으며, 아프면 호흡법을 잊는데 어찌 평화롭게 ‘후~후~’를 한단 말인가! 어쨌든 나는 의사선생님의 지시에 맞추어 뭉치는 것 같은 순간에 있는 힘껏 힘을 주었고, 몇 번 시도한 끝에 드디어 큰 산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며 아기가 나왔다. 하늘이 노래지는 순간에 아기가 나온다더니, 천장의 주황색 불빛에 정신이 몽롱하고 눈이 부셨다.
‘아, 내가 아기를 낳다니.’
다행스럽고 뿌듯한 감정에 취하기도 잠시, 그때 담당 의사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에 탯줄이 감겼잖아. 빨리 빼!”
나는 정신을 차리고 아래쪽을 보았다. 그 짧은 시간에 산부인과 선생님께서 아기의 목에 감긴 탯줄을 빙빙 돌려 빼내고 계셨다. 탯줄이 그렇게 긴 줄 처음 알았다.
“애가 피를 먹은 것 같아. 소아과 선생님 오시라고해. 빨리! 썩션해야 돼!”
잠시 후, 소아과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치익 칙’ 썩션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서야 아기는 울음을 터트렸고, 피는 더 이상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때 까지 몇 분, 몇초의 시간이 지난건지도 모르겠고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숨죽이고 있었다.
다행히, 신속하게 썩션을 마친 아기는 간호사가 바로 간단히 씻겨서 커다란 수건으로 감싸 안아 주셨다.
“아가야, 엄마야.”
간호사님께서 아기를 내 젖가슴에 대어 주셨다.
‘아, 아기를 처음 만나는 순간이란 이런 거구나! 정말 작네. 아고 귀여워.’
나는 그 눈도 못 뜨는 작은 생명체의 얼굴을 본 순간, 출산의 고통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는 말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쑥쑥아, 엄마야.”
그 말을 들은 아기는 가냘프게 눈을 조금 떴다.
“어? 이것 봐. 눈 떴어!”
우리는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 쑥쑥 자라서 쑥 나오라고 ‘쑥쑥이’라는 태명을 지었었다. 정말 이름처럼 쑥쑥이는 잘 자라다가 갑자기 쑥 나온 것이었다.
남편도 아기를 안아보았는데, 너무 조그맣고 가벼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렇게 나는 진통 7시간 만에 갑자기 엄마가 되었다!
내 아기는 예정일보다 3주나 일찍 태어났지만 간신히 2.7kg을 넘어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다만, 입에서 피가 나왔기 때문에 그 피가 엄마피를 먹은 건지 아기 입속에서 나온 건지, 울 때 폐로 들어가진 않았는지 지켜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날은 아기 얼굴을 더 보지는 못하고 다음날 창문 너머로 아기를 볼 수 있었다.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얼마나 조마조마 했던지.
‘쑥쑥아.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모든 부모들의 바람은 여기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