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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정 Sep 07. 2024

2. 산후조리원

        --- 카푸치노

 요즘은 아기를 낳고 병원에서 퇴원을 하면 거의 ‘조리원’에 가는 산모들이 많다. 조리원에서는 산모가 쉴 수 있게 아기를 돌봐주기도 하고 모유수유도 도와주며 아기를 돌보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요가 수업을 하거나, 마사지를 받거나 하면서 그곳에서 만난 엄마들과도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다.

 ‘조리원은 천국이다.’ 

 ‘조리원이 천국이라고? 난 지금 모유수유만으로도 힘든데......?’

 그런데 조리원에서 2주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곧바로 알아 버렸다. 카푸치노의 풍성한 거품처럼, 조리원의 모든 것은 거품이었다는 것을. 쌉싸름한 커피를 숨기려고 부드러운 우유 거품으로 잘 포장해 놓은 곳이 바로 조리원이다. 



  임신을 하면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된다. 태교에 좋은 음식, 운동, 책, 그림 등등. 우선 건강이 최우선이니깐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좋은 생각만 하자고 다짐하며 몸을 정갈하게 하려고 애쓴다. 엄마들만의 공간인 ‘맘카페’란 곳에도 가입을 해서 다른 예비 엄마들은 무엇을 준비하는지도 엿보고, 세상 신기한 육아용품들도 속속들이 알게 된다. 한 달에 한 번씩 병원 검진을 다니면서 초음파로 아기가 쑥쑥 크는 것도 확인하고, 조마조마한 검사들도 하다 보면 어느 새 배가 조금씩 불러온다. 아기를 낳을 때 힘들지 않으려면 운동도 해야 한다고 해서 6개월쯤부터는 임산부 요가, 발레 같은 것들도 배우고, 태교를 한다며 학창시절 실과 시간에만 했던 바느질과 뜨개질도 다시 해본다. 나는 배넷저고리와 모자 뜨기를 했었는데, 태교를 잘 하면 똑똑한 아기를 낳을 수 있다고해서 첫째 때는 정말 열심히 바느질과 뜨개질을 했던 기억이 있다. 둘째 때는 첫째를 돌보느라고 베넷저고리 겨우 하나 만들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슬슬 조리원을 검색하게 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산후조리를 잘못하면 평생 고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기를 낳고 나서 엄마가 몸을 회복하는 것을 중요시 여겨 왔다. 조리원 문화는 거의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한 것 같은데, 1998년도쯤에 처음 생겨났다고 한다. 아기를 낳은 산모들이 모여서 몸조리를 하는 곳. 이곳은 2주 동안 산모 대신 능숙하게 아기를 돌보아주며, 그 동안 산모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스트레칭 운동도 하고 마사지도 받으면서 편안하게 회복에만 집중할 수 있다. 또, 모유수유를 처음 해보면 모든 것이 서툴 수 밖에 없는데 이를 잘 할 수 있도록 아기에게 젖 물리는 방법이나 유축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가슴이 아프면 가슴마사지도 해준다. 특히 모유수유를 할 때 첫 2주간은 가슴에 젖멍울이 들어서 무지 아픈데 이때 마사지사의 도움을 받으면 정말 좋다. 젖이 잘 나와야 아기도 좋고 산모도 편안해 진다.

   나도 아기를 낳고 나서는 ‘조리원’이라는 곳에 가리라 마음을 먹은 터라 여기 저기 살펴보았다. 먼저 인터넷으로 여러 군데를 검색해 보고 후기도 꼼꼼히 읽어 본다. 그 중에 세 군데 정도는 직접 방문해서 느낌을 보고, 이용했던 지인들이 있으면 직접 물어본다. 그리고 내 예산에 맞춰 가장 마음에 드는 한 곳을 찜해 놓는다. 일찍 예약할수록 좋은 방을 싸게 예약할 수 있다. 나도 임신 6개월쯤 되어서 갈만한 조리원을 검색하고 미리 예약을 해 두었다. 친정엄마도 힘들지 않고, 아기를 전문적으로 돌보아주며 모유수유도 도와준다니. 무엇보다 음식이 잘 나오고 남편도 함께 할 수 있으며 회복운동이나 마사지도 해주니 조금 비싸더라도 도움을 받고 싶었다. 처음엔 뭐든지 설레는 법.


  아기와 함께 병원에서 나와 조리원으로 찬 겨울 바람을 피해 도착했다. 아기는 조리원에 도착하자마자 이름을 확인하고 조리원 선생님들께서 데려가시고, 남편과 나는 호텔방 같은 조리원방으로 입실했다. 이제 2주간 이곳에서 생활한다. 

  “조리원 옷으로 갈아 입으시고, 우선 머리부터 감겨 드릴게요. 마사지는 미리 예약을 하셔야 하고 전화벨이 울리면 모유수유하러 수유실로 오시면 되요. 가슴 마사지도 미리 꼭 예약하세요. 산모 분들이 많아서 원하는 시간에 못 하실 수도 있어요.”

 “아, 네네. 알겠습니다.”

  뭐 그렇게 할 일이 많은지 왠지 스케쥴이 빡빡한 느낌이다. 일단 대답을 해 놓고 그래도 아기를 돌보아 주니까 나는 쉴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한다.

  내가 갔던 조리원은 방이 거의 꽉 차 있어서 내가 미리 결제한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미리미리 예약을 해야 했고, 신생아 돌봄 교육과 함께 요가나 모빌 만들기 등의 시간도 정해져 있어서 그걸 다 하려면 부지런히 왔다갔다 해야 했다. 빨래는 바구니에 넣어두면 빨아서 말려서 가져다주고, 밥도 방으로 가져다 주었다. 

 ‘와우. 호텔이 따로 없네. 집안일도 안하니까 좋다.’

 안심을 하며 일단 푹신한 침대에 누워본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몸을 뉘일 시간도 없이 젖이 차오르는지 가슴이 아파온다. 

 “실장님, 가슴마사지 예약할게요.”

  그런데 1시간 뒤에나 오란다. 가슴이 아픈 걸 기다렸다가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기다리는 내내  ‘젖이 돈다.’ 라는 찌릿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이상 야릇한 느낌!

 “치밀유방이라 아프겠어요.”

  ‘응? 그게 뭐지? 아프다고? 모유수유가 힘든 건 아기가 가끔 젖꼭지를 깨물기 때문만이 아니었어?’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가슴마사지실에서 나오는 비명이 바로 나의 비명소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게...... 마사지사 선생님께서 손가락을 댈 때마다 가슴을 쥐어짜듯이 아팠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던가! 모유수유는 고통어린 신세계였으며,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 중의 일부이고,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새벽에 자고 있으면 세 시간 간격으로 전화벨이 울린다. 자다 말고, 눈을 감은 채로 수화기를 든다.

  “네.”

  “쑥쑥이 엄마, 수유하러 오세요.”

  “네? 벌써요?”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분명 좀 전에 수유를 마치고 와서 잠이 들었는데, 또 수유시간이라니. 이건 정말 거짓말이다. 몸이 천근만근 여기저기가 쑤시고 가슴이 찌릿찌릿 아파온다. 그래도 나는 이제 엄마가 아닌가? 아기 엄마가 되었으니 나만이 할 수 있는 모유수유를 최대한 열심히 해 보아야 한다. 나는 부스스 일어나 두껍고 커다란 수유쿠션을 어깨에 메고 눈을 반쯤 뜬 채로 슬리퍼를 질질 끌고 수유실로 간다. 군인들은 총을 둘러메고 전쟁터에 가지만 우리 엄마들은 수유쿠션을 둘러메고 전쟁터같은 수유실로 간다.

  ‘이번엔 아기가 잘 빨아줄까?’

  쑥쑥이는 일찍 태어나서 그런지 입이 짧고 빠는 힘이 약해서 젖을 빨다가 금방 지쳐 잠이 들곤 했다. 입을 벌린 채 잠이 든 아기를 흔들어 깨워가면서 먹여야 해서 수유실로 가는 내 마음 속 에는 나름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안녕하세요~! 또 만났네요.”

   수유실에는 항상 비슷한 시간대에 아기 젖을 먹이던 엄마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다. 아기가 젖 먹는 시간이 비슷하니 계속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기들의 이름도 알게 되고, 저 아이는 잘 먹네, 이렇게 하면 잘 먹어요, 쉴드를 대면 젖꼭지가 덜 아파요. 등등의 정보도 교환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수유실의 선생님들까지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이끌어 주시니 30분 넘게 앉아서 아기 젖 먹이는 시간이 점점 재미있어진다. 그렇게 친해진 엄마들은 남자들로 따지면 군대 동기 같은 전우애를 가지게 되고 아기에 대한 정보도 나눔과 동시에, 그동안 살아 온 이야기를 하면서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3주나 일찍 태어나 남들보다 작았던 쑥쑥이는 열심히 빠는 것 같은데도 한 번에 많은 양을 먹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수유시간이 길어져서 쑥쑥이는 빨다가 힘들어서 잠이 들기 일쑤였고, 나는 한 번 가면 거의 50분을 앉아있었다. 처음에는 일찍 태어난 아기들이 많이 먹는 경향이 있다고 열심히 먹느라 그런 줄 알았는데, 50분동안 앉아서 먹이고 오면 두 시간 있다가 다시 벨이 울렸다. 

 “아니, 수유는 세 시간 간격이라면서요? 아직 두 시간밖에 안 되었는데요?”

 “그게......, 쑥쑥이가 배가 고픈지 자꾸 울어요. 아기가 먹고 나서 세 시간이 아니라, 아기가 먹기 시작한 시간 기준이에요.”

 띠로리~! 이게 무슨 말? 나는 분명 1시간동안이나 수유실에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단 말이다. 아이고! 허리가 아파왔다.      

  수유실에서 만나고, 요가할 때 만나고 계속 만나던 나 쑥쑥이 엄마, 똘똘이 엄마, 사랑이 엄마, 사강이 엄마, 쭉쭉이 엄마 다섯 명이서 친해졌다. 쉬는 시간에 남편들이 사다 준 간식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는 조리원에서 나가서도 모임을 갖자고 했다. 커피를 못 마신지 한참이 되어서 카페 가서 우아하게 커피 마시는 게 소원이기도 한 엄마들은 백일이 지나면 꼭 한 번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백일까지는 힘들대요. 백일이 지나면 이제 아기가 통잠을 잘 수 있게 돼서 좀 살만 하대요.”  

  “그래요? 그럼 우리 백일 지나고 꼭 만나요.”

  “우린 모유수유하다 만났으니깐 모임 이름은 ‘모유시대’ 어때요? 호호호!”

  두근두근! 남자들에게 군대동기가 있다면, 엄마들에겐 조리원동기가 있다고 했다. 나도 드디어 ‘조리원 동기’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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