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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hill Mar 17. 2024

miss me?

단편소설

창밖에서 스며들어온 불빛이 벽에 그려진 바다를 비추었다. 불빛은 바다의 그것과 비슷한 하늘색을 띠었기 때문에 빛을 받은 바다는 더욱 아름답고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디서 온 빛인지는 몰랐지만, 빛이 방안을 훑고 떠나갈 때 마지막으로 창가에 놓인 작은 어항을 비추었다. 어항에 담긴 깨끗한 물과 수초, 그리고 작은 은빛 물고기가 짧은 순간 동안 반짝였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빛이 떠나가자 방은 다시 어둠으로 잠겼고, 바다 그림과 어항 같은 것들은 다시 그림자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빛이 어디서 왔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이 도시에는 한밤중에도 행사를 열거나 헬리콥터가 날아다니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니, 다만 잠을 자는 사람들의 집안으로 빛을 쏘이는 행위는 하지 말았으면 했지만 말이다. 내가 밤에 잠을 자지 않는 야행성의 사람인 것이 다행이었다. 오늘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잠이 더더욱 안 오는 밤이다.      


나는 바다를 사랑했다. 아니, 애초에 바다뿐 아니라 강이나 호수 등 물과 관련된 것을 쭉 사랑해 왔다. 어릴 적부터 바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부터 아쿠아리움에 가는 것,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영화와 사진들까지, 바다나 물과 관련된 것을 보고 마음속에 새겨 넣었다. 별 볼 일 없는 예술가가 된 지금까지도 내 작품들은 항상 물에 젖어 있다. 사진이든 글이든 말이다.      


내 주변을 둘러싼 가짜이지만 아름다운 푸른색, 물과 바다의 재현. 그것들에 둘러싸인 나는 대신에 아이폰을 다시 손에 쥔다. 아이폰을 열어 핀테레스트 앱을 들어간다. 내 글의 90퍼센트는 이 앱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장해 놓은 사진들을 쭉쭉 훑어보다가 하나의 사진에 눈길이 걸린다. 마치 무의식적으로 마음의 배가 거기에 덫을 내린 것처럼. 움직이는 사진인 움짤, GIF인 그 사진에는 한 인어의 모습이 담겨 있다. 빨간색과 주황색 사이의 진저 머리, 요염하게 흔들리는 옥색 꼬리, 봉긋한 가슴에 차고 있는 조개 브래지어와 날씬하고 가느다란 몸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인어공주의 모습이다. 어릴 적 동화책에서 처음 본 이후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남아 마음의 심연을 계속해서 헤엄치는 인어공주. 자막이 달려 있는데 인어공주가 묻고 있다.


‘Did you miss me?’      


만화에서 공주가 왕자에게 묻는 장면임을 알고 있지만 나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인어공주를 그리워한다고. 인어공주가 마치 나에게 질문을 하는 것 같다. 인어공주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내가 그리워하는 건 이 인어공주가 아니다. 


동화책에서 인어공주를 만난 지 몇 달 후, 나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정확히 어디로 여행을 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다. 기억나는 것은 여행지에서 보고 겪은 것들, 그때의 이미지와 에피소드들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뜨거운 햇살과 차가운 물, 초록색 나무와 풀...... 자연에 굉장히 가까운 여행지였음은 기억난다. 


그곳에서 나는 가족과 함께 해수욕장에 갔다. 나는 가족의 손을 떠나 내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물장구를 치고 놀았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 가족의 손길에서 벗어나 아이가 사실상 혼자서 논 일은 상상할 수 없지만, 그 당시에 나는 어느덧 아이들과도 떨어져 홀로 남게 되었다. 홀로 남은 상황이 조금은 외롭고 두렵기도 했지만, 지금껏 겪지 못한 상황에 나는 호기심이 발동했던 것 같다. 그것도 집이나 고향이 아니라, 평생 처음 와 보는 여행지에서라니. 


그런 나는 얕은 바다를 헤엄치고 놀았다. 물안경을 끼고 잠수를 하기도 했다. 그때는 깊이 그리고 오랫동안 잠수하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재밌게 놀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것들은 내가 그 여행을 기억하는 이유가 아니다. 


남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얕은 바다에서 나는 잠수를 하고 물 속을 들여다보다가, 누군가를 혹은 누군가를 보았다. 나에게서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물속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상반신만 인간의 모습을 가졌을 뿐, 하반신에는 물고기의 꼬리가 달려 있었다. 나는 인어공주를 실제로 본 것이다. 


나를 바라본 인어공주는 다른 방향으로 다시 재빨리 헤엄쳐 갔지만, 그 모습을 본 어린 나는 인어공주가 실제로 존재하는 줄로만 알았다. 크게 놀라거나 부모님께 말하는 일도 없었다. 단지 그 사실을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물속에서 눈부시게 빛나던 인어공주의 모습은 아직까지 잊은 적이 없다. 


그 시절의 상상력이 강하게 발동한 것인가? 너무나도 생생했던 꿈이 자신을 기억으로 둔갑해 내 머릿속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인가? 진실을 알 수는 없다. 앞으로도 진실을 밝힐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GIF 속의 인어공주가 계속 묻는다. 내가 그립냐고. 그립다고 말한다. 이미지 속의 인어공주는 내가 그리워하는 인어공주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질문에 나는 그렇다고 답한다. 


나는 다시 핀테레스트 앱을 닫고 아이폰을 끈다. 아이폰은 침대 머리맡에 살포시 내려놓는다. 다시 인어공주 생각을 하니 마음이 복잡해진다. 바다를 사랑하는 나로서 어떻게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잘 안다. 인어공주가 그립다는 생각을 갖는다. 그리움과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건 계속 창작하는 것일 뿐, 인어공주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라도 써 볼까. 내 머릿속 마음속에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실존하는지도 모르는 인어공주를 말이다. 나는 여전히 바다를 사랑한다. 말들이 복잡해지고 난잡하지만 내 생각이 이렇다.


인어공주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나는 그녀를 계속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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