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좌도 순대 내장은 포기 못하지

순대 트럭 찾아 삼만리

by 고든밍지

나는 소식좌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주변인들의 증언이 그렇다. TV에 자주 나오는 소식좌 연예인들 '박소현, 산다라 박, 김국진, 코드쿤스트' 등등처럼 식욕이 없거나 음식에 대한 미련이 없지는 않다. 나는 맛집을 찾아다니는 미식가이자 식재료에 누구보다 진심인 찐으로 식욕이 왕성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중학교 시절에는 툭하면 장염에 걸렸고, 고등학교 1학년부터 시작된 역류성 식도염은 강제로(?) 나를 소식좌로 만들었다. 물론 그전에도 대식가이진 않았지만, 많이 먹으면 항상 탈이 나는 체질이라 조심히 먹어야 했다. 맘껏 먹으면 큰일이 난다는 사실을 오랜 경험으로 확인했다.


그런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음식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순대의 부속(내장)이다. 간, 허파, 오소리감투, 염통 등 찰이나 토종 순대보다는 내장을 더 좋아하는 내장러버다. (물론 순대도 좋아한다.) 일부로 순대골목이 있는 시장에 가서 내장을 잔뜩 사 오기도 했다. 그리고, 순대를 주문할 때는 항상 외쳤다.


"이모~ 순대보다 내장을 많이 주세요."


갑자기 먹고 싶기도 하고, 마음껏 먹기 위해 인터넷으로 내장을 종류별로 구입하기도 했다. 대량으로 삶아 지퍼백에 소분 후 냉동보관을 했는데 은근히 삶고, 일일이 써는 작업이 꽤 귀찮았다. 가격이 저렴하고, 원하는 부위를 입맛대로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귀차니즘을 이기지 못하고 어느 순간 그만두었다. 집 앞 마트나 근처 분식집에서 종종 사다 먹곤 했지만 내장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역 카페에서 알게 된 집 근처에 자주 온다는 8000 순대 사장님의 인스타 아이디! 시장, 분식집, 마트, 인터넷에서 파는 것도 다 사 먹어봤지만, 순대 트럭에서 사 먹어본 적은 없었다. 나에게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레드오션이었다. 나의 호기심과 정복심을 자극했다. 사장님 인스타에는 요일별로 장사하는 지역이 올라왔고, 변동이 될 때도 있지만 장사를 시작하면 글을 올려주는 방식이었다.


집 근처에 오는 날은 고정적인 스케줄이 있어 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최근에 갈 수 있게 되었지만, 사장님도 주변 상인과의 자리 문제로 우리 동네 쪽에는 꽤 오지 않았었다. 오더라도 내장 수급이 어려워서 순대만 판다는 글을 보고, 꽤 오랫동안 (그래봤자 한 달) 내장을 못 먹고 있었다. 피에 굶주린 뱀파이어처럼 내장에 굶주린 상태가 지속되었다.


피아노 레슨이 있는 날이었다. 피아노 선생님도 순대 러버라 지난번에 순대 트럭 아저씨의 인스타 아이디를 알려준 적이 있었다. 피아노 선생님은 학원을 끝나고 가면 이미 순대 트럭이 끝난 뒤라며 하소연했고, 나도 최근에는 일정이 있어 먹지 못했다고 툴툴댔다. 레슨 시간에 피아노 곡보다 진지하게 순대 얘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오랜만에 인스타를 들어갔다. 바로 오늘, 순대 트럭이 원래 오던 장소는 아니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온다는 정보를 확인했다.


'원래 산책을 그쪽으로 나가려고 하기도 했고! 마침 오늘따라 순대 얘기도 했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피아노 선생님도 사다 줄 겸 가볼까?' 혼자만의 합리화를 시작했다. 어느새 콧노래를 부르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30분이 넘게 걸어 마주한 순대 트럭! 너무 반가웠다. 원래 낮을 많이 가려 스몰토크를 하는 성격이 절대 아닌데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요새 통 안 오셔서 여기까지 왔다고, 너무 기다렸다고 팬심(?)을 뿜뿜 드러냈다. 피아노 선생님이 생각나 두 개를 주문하고는 평소처럼 외쳤다.


"사장님, 순대 한 개는 내장을 순대보다 많이 주세요!"

"비율을 어느 정도로 할까요?"

사장님은 익숙한 듯 물었다.

"음.. 8 대 2? 7대 3? 물론 내장이 많은 쪽이에요."


사장님은 찾아와 줘서 고맙다며 내장을 평소보다 더 잔뜩 챙겨주셨다. 발걸음도 가볍게 돌아와 피아노 학원에 들러 순대를 전해주니 피아노 선생님의 웃음이 마스크를 뚫고 나오는 것 같았다. 순대 트럭을 찾아다니는 동지에게 우정 어린 선물을 주고 나니 괜히 뿌듯해졌다. 왕복 1시간이 넘게 걸어 배고픈 배를 잡고, 내장을 서둘러 입에 넣었다. 역시나 맛있었다. 내가 삶으면 이 맛이 안 나는데, 간이 너무 촉촉하고 부드럽게 잘 삶아졌다고 혼자 호들갑을 떨며 먹어댔다.




물론 소식좌이기에 한 번에 다 먹을 수는 없고, 어제도 먹고, 오늘도 먹고, 내일도 먹을 것이지만, 힘들게 찾아 헤매는 고생(?)이 더해져 역대급으로 맛있었다. 냉장고를 열면 남아있는 내장을 보며 마음 한편이 든든하다. 질린다기보다는 내일도 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


분명 어제는 아파트 온수가 안 나와서 오들오들 떨면서 씻으니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마주한 순대 트럭을 보니 갑자기 운수가 트이는 기분도 들었다. 순대 트럭에 이렇게 행복해질 일인가 싶다가도 아직 내가 좋아하는 게 있다는 사실이, 좋아하는 것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게 새삼 행복해지는 하루였다.


그래서 순대트럭 사장님, 다음 주에 꼭 오실 거죠?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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