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가 쓰는 시 네 편
유난히 서둘러 집을 나섰지만
눈앞에서 버스를 놓쳐버리는 날
가려던 방향이 아닌
반대 방향의 지하철을 타고 가다
한참 뒤에서야 알아차리는 날
높은 구두를 신었는데
때마침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나
수많은 계단을 온전히 올라야만 하는 날
이 모든 게 한 번에 일어나
온 세상이 내 편이 아닌 것 같은
그런 날이 있다.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운이 나빴다, 재수가 없었다.
훌훌 털어버리고 싶다가도
고장 난 마음의 시계는
애꿎은 시간에 울어대는 뻐꾸기시계처럼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눈물샘을 조여왔던 나사가 풀린 듯
소리내어 울고만 싶은
그런 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