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쓸 용기
나의 첫 책인 '난임, 뜻밖의 여정 : 병원으로 소풍 갑니다'가 나온 지 3개월이 지났다. 여전히 난임은 현재 진행 중으로 쓸 거리는 무궁무진하나, 책까지 나온 마당에 마냥 가벼운 마음으로 쓸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일상을 다룬 다른 소재의 글들은 꾸준히 써 내려갔으나, 왜인지 그 일만은 쓰기가 꺼려지기도, 두렵기도 했다.
난임에 대해 쓰기 위해선 내 안을 아주 유심히, 그리고 또 샅샅이 들여보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건 생각보다 엄청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일이었다. '결과에 상관없이 아예 모든 여정이 마무리되면 그때 써볼까. 이 여정은 끝이 오긴 할까' 등의 생각을 하던 차에 내 책을 읽은 독자에게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도 선물과 함께 진심 어린 감상평을 나눠주었던 독자였는데 뜻밖의 말을 꺼냈다.
"아는 후배가 글을 썼다고 해서 읽어봤는데 잘 안 읽히더라고요. 그런데 고든밍지 님 글은 한 번에 되게 잘 읽혔었거든요. 저는 경험도 없는 내용인데 말이에요. 그래서 혹시 다음 책은 준비 중 이신 거 있으세요?"
정말 책 제목처럼 뜻밖이었다. 내 기분을 위한 인사치레 정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으나 한 귀로 흘려버리기엔 너무 감동적이었다. 실패로 점철된, 이렇다 할 아무 성과도 없었던 1년여의 시간들이 그나마 의미 있게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써 내려간 일기 같은 글이었다. 아주 사적이지만, 울면서 써 내려간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던 그 글이 누군가에게 가서 닿은 것이다.
'다시 써볼까.' 생각하던 차에 마침 다니던 병원을 바꾸게 되었다. 새 병원에서의 첫 상담은 시험관을 몇 번 했는지, 보통 난자는 몇 개 채취되었는지, 공난포는 몇 개였는지 등 1년간의 내 시험관의 행적을 빠짐없이 물어댔다.
전 병원에서 받아온 약 70장의 의무기록은 어려운 의학용어로 빼곡했다. 자료를 제출하였음에도 방대한 자료라서 그런지, 시간 절약을 위해서인지 병원에서는 내 말에 더 의존하는 것 같았다. 결코 잊히지 않을 거 같았던 1년간의 시험관 여정은 어느새 머릿속에서는 여러 차수가 얽히고설켜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내 책을 펼쳤다. 생각보다 자세했다. 채취된 난자의 개수, 배아이식 개수와 등급까지. 불과 얼마 전 내가 써 내려간 책의 기록에 의존해 무사히 첫 상담을 마쳤다. 그리곤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뭐든 잊히는데 이럴 때 요긴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고. 써놓길 잘했다고 말이다.
다시 쓸 용기가 필요했다. 행동하기 위해 불을 지펴줄 작은 불씨가 필요했는데 나의 글을 기다린 다는 그 독자의 말 한마디가 첫 번째 불씨가 되었다. 병원 전원으로 인한 첫 상담이 두 번째 불씨가 되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쓰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도(사실 오열한다.) 쓰다 보면 마음 한편이 조금은 개운해질 것을, 먼 미래에 그때를 오롯이 기억할 수 있는 자료로써 가치가 있을 것을 안다.
일단 시작하면 성격상 멈추지 않고 쓸 것이다. 그럼 또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려나? 아무튼, 일단, 쓰자! 응원을 보내 주신 한 명의 독자님 감사합니다. 사실 한 명보다는 더 많은 사람(5명..?)들이 내 글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으며, 현재진행형인 나의 일상과 온전히 마주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