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식당에서 식사하기’가 스페인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래서 오늘 점심은 미슐랭 가이드와 스페인 식당 인증 마크가 있는 곳으로 예약했다. 물론 예약은 가이드인 딸이 했다. 미슐랭 스타는 별의 수에 따른 의미가 남다르다. 우선 별 한 개는 요리가 훌륭한 식당, 별 두 개는 요리를 맛보기 위해 멀리 찾아갈 만한 식당, 별 세 개는 요리를 맛보기 위해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식당이라고 한다. 보통 별 한 개라도 받으면 평생 매출은 보장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오늘 우리가 갈 곳은 미슐랭 별 하나이며, 스페인 식당이 인증한 (sol) 태양 마크도 있는 식당이다. 세비야의 버섯들을 지나 구시가지 골목을 돌고 돌아 마주한 식당은 아주 근사했다. 건물 안임에도 중정으로 떨어지는 햇살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킬 만큼 아름다웠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식당 안에 풍경이 달라졌다. 하얀 벽면과 햇살은 신전에 앉아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식탁을 안내받고, 식사에 관한 설명을 해준다. 대충 눈치껏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약이 잘못된 것 같았다. 우리는 점심 코스메뉴를 먹으러 왔는데 점심시간이 끝났다는 이야기 같았다. 숙소에서 내가 서두르자고 그렇게 이야기했음에도, 굼벵이처럼 늦장을 부리더니 이럴 줄 알았다. 또다시 버럭 할 수는 없고, 내 눈치를 살피는 딸의 모습에 모르는 척 가만히 있었다.
“점심 코스 요리가 끝났다는데 어떡하지?”
“별수 없지. 대신 추천이나 해 달라고 해.”
“점심 코스가 아니면 비싸….”
“퇴직금 아직 많아. 이왕이면 술도 비싼 와인으로 달라고 해.”
고급 식당이라 그런지, 주문받는 사람, 요리만 시중드는 사람, 술만 시중드는 사람, 그리고 전체적으로 살피는 매니저까지, 식사하는 우리 곁에서 서성였다. 손가락만 살짝 들어도 상큼한 미소와 함께 잘생긴 남자가 달려왔다.
“One sweet wine, please. 내가 제대로 시킨 것 맞지? 설마 한 잔이 아니라 한 병을 주는 것은 아니지?”
“bottle이라고 안 했으니까, 잔으로 줄 거야.”
“요리가 딱 한 입이다. 한 입씩 주면서 나이프와 포크가 왜 필요해. 그냥 젓가락이나 주지.”
“왜? 맛이 없어?”
“보기만 좋지. 맛은 별로.”
“와인은 어때?”
“내가 종류별로 석 잔째인데, 와인은 맛있네. 금가루도 뿌려주고 고급스럽어. 옆에서 식사도 도와주고, 눈만 마주쳐도 웃으며 달려오고, 대접받는 기분이 좋네. 그래서 사람들이 비싼 곳에 오나 보다.”
식사는 이베리코 전문점답게 모든 요리가 딱 한 점씩 주는 돼지고기였다. 커다란 접시에 올려진 한 점을 먹고 나면, 배가 꺼질 때쯤 커다란 접시에 한 점이 나오는 속도였다. 연인끼리 식사라면 모를까? 어제 크게 다툰 부녀 사이는 딱히 할 말도 없고, 어색한 기운만 흘렀다.
“빨리 주면 안 되나? 빨리 달라고 말 좀 해 봐.”
“빨리 달라고 하면 나라 망신이야. 아빠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예의가 없다고 욕을 먹으면 좋겠어? 그렇게 심심하면 핸드폰 보면서 기다려.”
먹을 것은 없고, 시간만 길어진 식사를 마쳤다. 계산서를 확인하고 카드를 쟁반 위 작은 상자 안에 넣었다. 매니저는 쟁반을 들고 가 계산을 하고 돌아와 나에게 영수증과 카드를 건넸다. 그리고 딸에게 질문했다. 딸은 미소와 함께 칭찬했다. 나에게도 식사가 만족스러운가를 물었다. 질문하는 매니저의 태도는 너무나 당당했다. '너희들 이런거 먹어본적 있어?' 하는 표정에 괜히 부아가 올랐다.
“so so.”
“아빠 왜 그래?”
“난 별로였어. 정말이야.”
“그래도 그렇지, 지금 뭐가 별로였냐고 묻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일단 양이 적었고, 짰고, 식당 분위기하고, 와인만 좋았어.”
딸은 땀을 흘리며 매니저에게 설명했지만, 나는 설명을 듣는 매니저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지으며 so so를 연발했다. 나는 당연히 좋아하리라는 자신감 넘치는 매니저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 세상에 당연히가 어딨어?
매니저의 배웅을 받으며 식당을 나왔다. 식당이 멀어지자, 딸이 나를 잡아챘다.
“아빠,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나오는 신구 할아버지 같았어. 왠 심술이야?”
“심술 아니야. 그런데 넌 솔직히 정말 맛있었어?”
“나쁘지는 않았어.”
“나는 별로였어. 내가 손님인데 so so라고 말도 못하니?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네. 사람들 많은 것 보니까 맛집인가 보다. 아이스크림 먹자.”
아이스크림 가게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점원은 친절했다. 아이스크림의 종류가 너무 많아 고르는데 시간이 걸렸음에도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기다려줬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고, 점원을 향해 엄지를 들어 올리며 ‘delicious, Very Good’을 외쳤다. 역시 친절이 최고의 맛이었다.
식당 안 풍경과 반만 나온 딸
테이블 셋팅
돼지고기 타르타르 애피타이저와 금가루 와인
리조또가 아니라 쌀알 파스타
돼지고기 안심
돼지고기 목살
스페인에서 제일 맛있게 먹은 아이스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