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에 다툼은 피곤한 일이다. 미우나, 고우나 같이 다녀야 하니 다툼이 있던 다음날은 더욱 어색하기만 했다. 같은 길을 걸어도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어디 가는 거야?”
“일정 공유했잖아. 왜 안 보는 건데?”
“일정 봤어. 그래도 물어볼 수는 있잖아.”
“무리요 공원에 갈 거야.”
“무리요 공원에 내가 존경하는 동상이 있는데 누구인 줄 알아?”
“안 궁금해.”
무리요 공원에는 전설적인 바람둥이의 돈후안 동상이 있었다. 돈후안의 이야기로,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려 했지만, 말도 꺼내지도 못했다.
“무리요 공원에 대항해 기념탑이 있는 거 알아? 콜럼버스가 버스를 타고.”
“콜럼버스가 버스를 타?”
“재밌지? 미국 버스회사 이름 중에 콜럼 버~스가 있어.”
“정말이야?”
“거짓말이지.”
“날 더운데 말 시키지 마. 짜증 나니까.”
무리요 공원은 대항해 기념탑과 돈후안 동상이 있었다. 돈후안은 전설 속의 인물인데 동상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얼마나 잘생겼을까? 그런데 돈후안은 평범하게 생겼다. 키가 크거나, 조각같이 잘 생겼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역시 연애는 인물보다 감정이 우선인 것 같다. 무리요 공원은 잘 가꾼 나무들과 꽃, 더운 날씨에 어울리는 분수가 많았다. 곳곳에 이젤을 펴놓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원을 지나 계속 걸었다.
다음 일정은 황금의 탑이다. 황금의 탑을 가는 길에 세비야 대학교가 있었다.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일단 더워서 그늘로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대학교를 설명하는 표지 글을 읽었다. 아, 이곳이 세계에서 제일 컸다는 담배공장이었다. 그렇다면 이곳이 카르멘이 일했다는 담배공장?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맞았다.
“여기가 지금은 대학교지만, 전에는 담배공장이었다네. 오페라 카르멘 들어 봤지?”
“극 중에서 카르멘이 담배공장 공원이었거든. 바로 여기가 그 곳이야. 예상 못 한 럭키비키인데.”
“럭키비키가 무슨 뜻인 줄 알아?”
“개꿀, 행운 뭐 그런 뜻 아니야? 네가 자주 썼잖아. 그래서 따라 한 거야.”
“뜻도 모르면서 따라 하지 마.”
어젯밤 일에 대하여 먼저 사과를 해야 하는데, 사과도 없이 실없는 농담만 던지니 삐침이 오래갔다. 세비야 대학교를 지나 황금의 탑까지 왔다. 황금의 탑은 대항해 시대에 황금으로 채워졌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스페인의 수탈이 심했다는 간접 증거였다. 황금의 탑을 오르려고 줄을 섰다.
“탑에 오르려고?”
“그래야지. 넌 싫어?”
“난, 싫어. 보고 싶으면 혼자 가.”
“그래, 올라가 봤자 특별히 볼 것은 없을 것 같다.”
“저기, 범선이 있네. 저걸 타고 대항해를 시작했나 보네. 범선 보러 가자.”
강가에 메워놓은 범선은 콜럼버스가 타고 나간 범선은 아니지만 그 당시 범선을 고증에 따라 제작했다고 한다. 범선을 구경하고 투우장으로 향했다. 투우 경기는 없었지만, 박물관이 있어 구경하기 좋을 것 같았다. 사실 출발할 때 투우 경기 관람을 놓고 의견대립이 있었다. ‘스페인이니까 투우 경기는 꼭 봐야지’하는 나의 의견과 ‘동물 학대에 동조할 수 없다’는 딸의 의견이었다. 그래서 나 혼자 경기를 보는 것으로 결정했는데 경기 날짜가 맞지 않았다. 그래서 박물관만 보기로 했는데….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보고 와.”
“너는 안 들어가?”
“나는 올 때부터 안 본다고 했잖아.”
“경기를 안 본다고 했지. 여기는 박물관이잖아.”
“나는 동물 학대 단체에 십 원도 보태고 싶지 않아.”
“그럼, 날도 더운데 걸어서 여기까지 왜 왔어?”
“아빠가 보고 싶다고 해서 왔잖아.”
“어젯밤 때문이야?”
“아니거든. 나는 아빠가 하자는 대로 하는 중이야.”
“됐어. 나도 안 봐. 숙소로 가자.”
이러려고 한 것은 아닌데, 나도 모르게 또 버럭버럭하고 말았다.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힐끔거리며 돌아보는 시선을 느꼈지만 나는 짐짓 모른 척, 있는 힘껏 입술을 내밀고 걸었다.
“포르투갈에서 먹었던 에그타르트 집이 여기에 있네? 정말 맛있어서 밥 대신 먹기도 했어. 아빠, 먹을래?”
“커피 없으면 안 먹어.”
“커피 사줄게. 먹고 가자.”
“그럼, 화도 풀어.”
“나는 화 안 났거든. 아빠 혼자서 괜히 그러고 있는 중이거든.”
나 혼자서 사랑하고, 나 혼자서 이별했다. 나 혼자서 고민하고, 나 혼자서 상처받았다. 더 이상 너 때문에 다른 사랑 이제 못할 것 같다. 유행가 가사 같은 내 심정이었다.
골목길 분수
무리요 공원 분수(펌)
공원 화가
대항해 기념탑
세비야 대학교
세비야 대학교 실내
황금의탑
대황해 시대 범선
투우장
에그타르트 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