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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의 버섯들.

by 윤희웅

세비야의 아름다운 야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엥카르나시온 광장(Encarnación square)에 있는 메트로폴 파라솔(Metropol Parasol)이다. 세계 최대 목조구조물이며 지역명을 따서 엥카르나시온의 버섯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구조물은 독일 건축가인 율겐 마이어 헤르만(Jürgen Mayer-Hermann)이 2004년 국제 현상공모에서 당선된 것으로, 2011년 4월에 준공되었으며, 규모는 가로 150미터, 세로 75미터, 높이 약 28미터이다. 메트로폴 파라솔을 항공사진으로 보면 생각보다 엄청난 크기에 압도당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세비야의 좁은 골목들을 지나다 예고 없이 마주하는 메트로폴 파라솔이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메트로폴 파라솔에 가기 위해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음악 소리가 들린다. 살바도르 성당 근처에는 크고, 작은 플라멩코 공연장들이 밀집해 있었다. 건물 안에서 들리는 기타 소리와 함께 건물 밖에서는 호객행위가 한창이었다. 호객행위를 하는 그들과 눈이 마주치면 나는 단호한 손짓과 친절한 미소로 그라시아스를 외쳤다.

“가르시아스.”

“가르시아스가 아니라 그라시아스라고 몇 번 말해?”

“가르시아라고 롯데 야구선수가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자꾸 가르시아스라고 하네.”

스페인에 도착한 첫날부터였다. 딸은 수시로 나의 발음을 고쳐주고, 식당에서 스페인어로 주문하라고 강요했다. 몇 번의 강요는 무시했고, 몇 번의 강요는 외면했다. 나의 태도가 딸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아빠, 메트로폴 파라솔이야. 꼭 버섯 같지?”

“버섯보다는 아주 큰 와플 같다.”

“아빠는 내가 이야기하면 일단 땡깡부터 놓는 것 같아.”

“땡깡은 일본말이고, 간질이라는 뜻이야. 간질을 우리말로 하면 지랄병인데, 너는 지금 아빠에게 지랄병이라는 표현을 쓴 거야. 몹시 나쁜 말이지.”

“알았어. 아빠랑 말 안 해.”

“삐쳤구나.”

“삐졌구나가 맞는 말 아니야?”

“삐치다, 삐지다 둘 다 표준어거든. 사실 삐치다가 맞는 말이고, 삐지다는 나중에 표준어가 됐어. 못 믿겠으면 검색해 보세요.”

“알았으니까, 나에게 말 시키지 마.”


메트로폴 파라솔이 거대한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도시환경을 해치고 있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구조물이 갖는 재료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유리나 반짝이는 금속과는 달리 나무는 중세의 도시환경과 크게 대비되지 않았다. 나무로 만들어서 도시환경을 해치지 않고, 친환경적이라는 것도 있지만, 나는 목재의 포근함과 따뜻함에 더 끌렸다. 메트로폴 파라솔을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에 새들이 집을 짓지 못하게 그물과 긴 못들이 박혀 있었다. 차라리 새들이 집을 짓고, 바닥에 똥이 떨어져도 새와 사람이 공존하는 것이 더 환경친화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무튼 삐친 딸을 달래 가며 곳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메트로폴 파라솔이 세비야의 랜드마크라 관광객도 많고, 더워서 그런지 현지인들도 많았다. 또한 해 질 녘이라 거리공연도 많았다. 기타 연주도, 플라멩코도 곳곳에서 공연되었다. 맥주 한 병들고, 돌아다니며 공연을 즐겼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마트에 들러 맥주와 과일을 사기로 했다.


“스페인까지 와서 하이네켄만 마셔? 스페인 맥주도 맛있어.”

“맥주 종류가 너무 많아서 고르지를 못하겠어. 이 중에 스페인 맥주가 뭐야?”

“저기 점원 있네. 스페인 사람하고 말하고 싶다며, 직접 물어봐.”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것을 알면서 직접 해보라는 것은 지금까지 삐쳐있다는 증거였다. 그렇다고 내가 너에게 미안하다고 할 것 같니? 소통은 대화가 아닌 표정과 센스라는 것을 보여주마. 나는 점원에게 다가갔다.

“hi, I want Spanish beer.”

점원이 가리키는 맥주 판매대에 많은 종류의 맥주가 있었다. 거기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망설여졌다. 나는 점원에게 다시 물었다.

“You, best choice?”

점원은 웃으며 맥주를 추천했다. 그리고 나에게 길게 영어로 이야기했다. 아마 선택한 맥주에 대한 설명이었을 것이다. 나는 방긋 웃으며, 미국 배우처럼 어깨를 으쓱거렸다. 신이 난 점원은 다른 맥주도 권하며, 또다시 설명했다.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과 더 큰 리엑션으로 화답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악수를 청하며, 땡 큐와 그라시아스를 외쳤다. 곁에서 나를 지켜보는 딸의 표정에서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계산도 아빠가 해.”

“알았어.”

계산대 앞에서 점원은 나에게 영어로 질문했다. 눈치를 보니 봉지가 필요하냐? 일회용 젓가락과 스푼이 있는데 어떤 것을 줄까? 비용이 추가된다. 그런 이야기 같았다. 나는 플라스틱 백과 찹스틱을 외쳤다. 그리고 우아하게 그라시아스를 외치며 카드를 내밀었다.

“점원이 하는 말, 알아들었어?”

“내가 어떻게 알아듣니? 알아듣는 척했지. 소통은 표정과 센스라니까.”

“배우 나셨네. 그것도 한국 배우도 아닌 미국 배우야.”

그날 저녁, 딸과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걱정했던 일이 일어났다. 친한 친구끼리 여행을 가도 싸우는데, 딸이라고 예외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경험도 있었다. 아들과 오사카에 갔을 때, 도착하자마자 싸우기 시작해서 집에 올 때까지 싸웠던 기억이 있었다. 그나마 오사카 여행은 짧아서 다행이었다. (아들에게 추앙 받고 싶다. https://brunch.co.kr/brunchbook/labor00) 그런데 열흘이 넘는 딸과의 스페인 여행에서 별일 없으리라 믿지 않았다. 마트에서 사 온 맥주를 나눠 마시며 싸움은 시작되었다.

“내가 비혼주의자가 된 이유 중에는 아빠 영향도 있어.”



메트로폴 파라솔 공중 사진(구글펌)
골목을 돌아서면 깜짝
큰 와플
살바도르성당앞 광장
싸움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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