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는 어느 나라 가수인가? 정답 남한, 북한의 수도는? 정답 평양’ 스페인 광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탑승한 트램 안 모니터에서 나온 문제였다. 세비야 대중교통수단에서 한국과 관련된 문제가 나오다니?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인지, 한국 사람들이 많이 와서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신기했다. 딸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국뽕이 차오른다고 한다. 나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숨은 의도가 무엇일까? 의심부터 한다. 나이를 먹으면 부정적으로 변하다고 하는데... 창피하다.
트램에서 내려 십 분 정도 걸으니 스페인 광장이 나타났다. 스페인 광장은 반원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반원 모양의 건물을 통해 남미를 포옹하는 스페인의 두 팔을 표현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구조물은 과달키비르강을 향해 있는데 이는 남미로 향하던 배들이 그 강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수로를 건널 수 있는 다리의 개수는 총 4개, 이는 옛 스페인의 네 개 왕국을 상징한다. 광장을 둘러싸고 마흔여덟 개의 벤치가 있으며, 이는 스페인의 각 주를 대표한다. 세비야,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말라가 등등 각 주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중에서도 '그라나다' 그림이 가장 유명하다. 그라나다의 왕 보압딜(무하마드 12세)이 알람브라 궁전의 열쇠를 페르난도 왕과 이사벨 여왕에게 넘기는 장면이다. 광장 벤치의 타일 그림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스페인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인공적으로 지어진 강이었다. 관광객들이 여유롭게 나룻배를 띄우고 노를 젓고 있었다. 그것도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에서 말이다. 힘들 텐데..., 보기에 안쓰럽다. 광장 한가운데에서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분수, 그리고 그 앞에서 비눗방울을 잡으며 놀고 있는 아이들, 어느 나라든지 아이들은 귀엽고, 예뻤다. 그늘에 서서 뛰어다니는 아이들 구경했다. 우리집 아이를 키울때 나는 20대 초반이었다. 그래서 아이가 귀여운줄 몰랐다. 소중한 줄 몰랐다. 오직 책임감으로 아이를 대했던 것 같다. 내가 지금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우리집 아이를 키웠으면 더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었을까? 딸에게 미안했다.
“너도 저만한 때가 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컸네.”
“아빠는 지금도 저만하잖아.”
“백설 공주님은 어디에 게시는 거야? 어디를 가면 간다고 말해야 찾지를 않지!”
“저기 음악 소리가 나는 곳에 계실 듯한데 그리로 가보자. 일곱 번째 난쟁이야.”
건물의 중심부로 다가가니, 시끌시끌한 음악과 함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매력적인 스페인 젊은 여인이 플라멩코를 추고 있었다. 그토록 보고 싶던 플라멩코를 눈앞에서 보는 영광을..., 전혀 예상도 못 했다. 음악 소리에 끌려왔을 뿐인데, 그런 나에게 그녀는 예고도 없이 불쑥 다가왔다. 홀린 듯이 관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가만히 앉았다. 구두소리에 나의 심장 박동소리가 함께 뛰었다. 현란한 기타 소리와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는 이내 나를 뜨겁게 만들었다. 춤을 추는 젊은 그녀 곁에 선생인 듯, 선배인 듯 나이가 든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박자를 세고 있었다. 젊은 그녀의 춤이 마친 후 나이든 여인은 흡족한 듯 젊은 그녀를 안아줬다. 젊은 여인은 모자를 들고 객석을 돌아다녔다. 관객들은 그녀에게 아낌없이 동전과 지페를 건넸다. 잠시후 나이 든 여인이 간이 무대 앞에 섰다.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고 관객들을 향해 손을 높이 들었다. 여린 손짓과 함께 조용한 기타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녀의 춤은 시나브로 시작되었다. 나이 든 여인에게는 젊은 여성과 사뭇 다른 느릿느릿한 춤사위였다. 천천히 움직이는 그녀에게서 생명의 존경스러움, 시간의 흐름, 노년의 아름다움이 뿜어져 나왔다. 차분한 기타 소리는 점점 빨라졌다. 그녀는 치맛자락 끝을 잡고,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무대를 격정적으로 돌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어느새 흥분된 박수로 응답하고 있었다.
전에 읽었던 ‘밤에 우리 영혼은 - 켄트 하루프’의 첫 문장이 생각났다.
그러던 어느 날 애디 무어는 루이스 워터스를 만나러 갔다. 오월,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기 바로 전의 저녁이었다.
그녀의 춤은 소설 속 완전히 어두워지기 바로 전의 저녁의 시간을 보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춤은 격정적이며, 한없이 슬펐다.
“아빠, 내일은 플라멩코 박물관에서 제대로 된 공연을 볼 거야. 지금 너무 감동받지 마.”
“너무 좋다. 플라멩코는 역시 한이 서려 있어.”
“저는 감동보다 배가 고픕니다. 저녁 식사하러 가시죠.”
저녁은 숙소 근처 아주 작은 식당이었다. 맛집인 듯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꽤 있었다. 가게가 좁은 탓에 서서 먹는 사람이 많았다.
“맛집인가 봐?”
“어제 택시 타고 지나갈 때 봤는데 사람이 바글바글했어. 그래서 와 봤지.”
“뭐가 맛있을까?”
“사람들 시키는 거 보고 따라 시켜야지. 하몽도 먹어야지.”
“하몽 하몽이라는 오래된 스페인 영화가 있었어. 에로물인데 아마 지금 봐도 수위가 꽤 높을걸. 스페인에서 섹시한 여자를 은어로 표현할 때 하몽이라고 부른다네. 그때 처음으로 하몽을 알았지. 30년이 지난 지금 본토에서 드디어 하몽을 맛볼 수 있겠군.”
하몽이 맛있다는 딸의 입맛이 궁금했다. 나에게는 엄청 짠데 뭐가 맛있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차라리 감자크로켓이 더 좋았다. 감자크로켓은 우리가 흔히 아는 딱 그 맛이었다.
“아빠, 저 아저씨 팔뚝 타투가 축구왕 슛돌이야.”
“나도 봤어. 아까 트램에서는 피카추도 있었어.”
“아빠도 하나 해?”
“나는 원피스로 할까?”
“가오나시를 추천합니다.”
“가오나시가 말했지. 한번 만난 인연은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잊고 있을 뿐이라고. 너와의 오늘을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하는 의미에서 가오나시로 하자."
"정말 하는 거야?"
"다큐로 받지 마. 아빠 말은 언제나 99%가 농담이야."
스페인광장 (구글 펌)
48개 지역별 벤치가 있다
스페인 광장 분수
하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