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희웅 Aug 26. 2024

헤밍웨이는 론다의 절벽에서 무엇을 봤을까?

' 헤밍웨이가 미국 문학에게 남긴 유산은 그의 문체다.' 헤밍웨이를 간결하지만 정확하게 표현한 문장이다. 헤밍웨이 문체의 특징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6 단어 소설이다. 친구들이 단어 6개로 자신들을 울릴 만한 소설을 써 보라고 장난 삼아 내기를 걸자 즉석에서 지었다.

      

팝니다. 아기 신발. 사용한 적 없음. (for sail. baby shoes. never worn.)     


 헤밍웨이가 사랑한 도시 론다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배경이며, 집필 장소이기도 했다. 론다 곳곳에서 헤밍웨이의 자취를 찾는 재미가 있었다. 투우장 옆에 있는 헤밍웨이 동상에 눈을 맞추고, 헤밍웨이 산책길이 걸어본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면 이내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 밑으로는 내려다보기 아찔할 정도로 깎아지른 절벽이다. 헤밍웨이는 분명 이곳에서 절벽 밑을 봤으리라. 그는 무엇을 봤을까? 절벽은 마지막 길이다. 굳이 그다음을 찾는다면 추락일 것이다. 그래서 절벽은 절망을 상징한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새처럼 날아오르는 장소일 것이다. 산책로는 절벽을 따라 이어져 있다. 난간을 잡고 낭떠러지를 넘겨다보면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진다. 이내 곧 누에보 다리가 보였다. 오줌이 쏙 들어갔다. 양쪽 절벽을 연결하는 아름다운 다리였다. 다리 밑으로 보이는 협곡은 윈도 바탕화면 같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아름다운 협곡이었다. 누에보 다리를 바라보며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한 대사가 떠 올랐다.   

  

"이 세상에 너 하나뿐이라서 널 사랑한 게 아니라, 널 사랑하다 보니 이 세상에 너 하나뿐이었다."     


 헤밍웨이는 말했을 것이다. 절벽 너머에 넓게 펼쳐진 평야가 있다. 절벽만 보지 말고, 평야를 보라고. 누에보 다리를 자세히 보면 창문이 뚫려 있었다. 스페인 내전 기간 중 감옥 및 고문 장소로도 사용되었으며, 포로 중 몇몇은 창문에서 골짜기 바닥으로 던져져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죽는다면 조금은 덜 억울했을 만큼 아름다운 협곡이었다. 누에보 다리와 협곡 그리고 호텔을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헤밍웨이도 이쯤에서 차를 마셨을 것 같다. 풍경이 너무 좋아.”

“앞에 보이는 건물이 호텔이야. 스페인 정부가 운영하는 호텔이지. 그곳에 묵고 싶었는데…. 누에보 다리는 야경이 훨씬 더 예쁘거든.”

“헤밍웨이 말처럼 연인끼리 오기 좋은 도시다. 없던 사랑도 솟아날 것 같다. 신혼여행으로 오면 좋겠다.”

“나, 비혼주의자라고.”

“너 말고, 나.”

“아빠, 결혼하려고?”

“내가 말 만하면 다큐로 받니. 아빠 말은 99%가 뻥이야. 몰랐어?”

“아재 농담은 아재나 아줌마들에게 해. 나한테 하지 말고.”

“헤밍웨이가 점심을 먹던 식당으로 가자. 헤밍웨이가 앉았던 의자에 앉아서 헤밍웨이가 먹던 음식을 먹어보는 거야. 어때?”

“거기가 어디인 줄 알아?”

“가이드가 알려 준 식당. 내가 가이드에게 살짝 물어봤거든.”     


 '푸에르타 그란데' 웨이터의 유쾌함은 내 취향이었다. 스페인은 웨이터가 우리와 달리 전문 직업인으로 대접 받는 느낌이 들었다. 젊은 사람도 있지만 나이 든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한결같이 유머로 무장했다. 다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소꼬리찜과 까르보나라를 주문했다. 그는 엄지를 올리며, 대단하다는 표정으로 perfect을 외쳤다. 식전주로 주문한 샹그리아와 휘핑크림 스프레이를 들고 왔다. 나에게 스톱을 외칠 때까지 휘핑크림을 올려준다며 농담했다. stop을 안 하면 휘핑크림을 천장까지 올리겠다며 ready?를 외쳤다. 나는 ok 하며 그를 휘핑크림을 쳐다보며 s~t~o~p을 아주 천천히 말했다. 웨이타는 나의 stop 소리에 맞춰 크림을 아주 천천히 올려줬다. 마침내 우리는 하이 파이브를 하며 즐거워했다. 론다에서 소꼬리찜이 유명한 이유는 투우 때문이었다. 투우장에서 죽음을 맞이한 소를 요리했다고 한다. 투우장의 소는 투우를 위해 길러져서 먹을 곳은 오직 꼬리밖에 없었다는 웃픈 이야기다. 추천해준 방법대로 달달 소꼬리찜에 으깬 감자를 올려 먹었다. 까르보나라는 테이블 앞에서 공연하듯, 직접 요리를 해줬다. 나는 훼밍웨이 사진이 벽에 걸려 있는 식탁에 앉아, 그를 쳐다보며 점심을 먹었다. 후식으로 매실 진액?을 작은 술잔에 담아 줬다. 나는 웨이터에게 술잔을 가리키며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내 귀에 속삭였다. ‘secret’. 나 역시 웨이터 귀에 속삭였다. ‘Please’. 그는 다시 내 귀에 속삭였다. ‘secret’.      

웨이터 덕분에 스페인에서 제일 유쾌한 점심을 먹었다. 물론 소꼬리찜도 까르보나라도 마음에 들었다.        


투우장 옆 헤밍웨이 동상
산책길 끝에 나오는 절벽
누에보 다리
누에보 다리가 없었을때 건너다니던 엣날 다리
식당의 역사를 말해주는 사진들
‘secret’.


이전 27화 아빠랑 스페인여행 11일 일정 Day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