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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 타파스 투어는 초승달과 함께였다.

by 윤희웅

그라나다는 스페인어로 감사합니다(Gracias)/천만에요(De nada)로 표현도 한다. 물론 이것이 도시 이름의 어원은 아니고 원래는 석류라는 뜻이지만 그라나다 사람들도 그럴싸하다 싶었는지 그라나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다. 가게를 나서면서 주인에게 ‘감사합니다’를 외치면 ‘천만에요’로 돌아왔다. 그라나다에서는 모든 만남이 그라나다(Gracias / De nada)였다. 스페인 여행 유튜브를 보면서 가장 기대했던 것 중 하나는 그라나다 타파스 투어였다. 대성당 근처에 타파스 가게들이 밀집되어 있어 많이 걷지 않아서 좋았다. 그라나다는 1박 2일 일정이었다. 밤에 도착한 우리는 오늘이 마지막 밤이다. 다음이란 없다. 한인 민박에 케리어만 놓고 무조건 밖으로 나왔다. 타파스 투어를 즐길 시간이 없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가게를 기웃거리며 안주를 살폈다. 개인적으로 입 맛이 까다롭지는 않지만, 모두 그렇듯이 나 역시 맛있는 것을 좋아한다. 먹고 싶은 것은 많고, 먹을 수 있는 양은 한정적인데, 맛없는 것을 먹었다면 화가 난다. 그래서 더욱 많이 기웃거렸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없어 웨이팅이 길거나, 손님이 너무 많으면 어쩔 수 없이 지나쳤다. 그렇다고 손님이 너무 적으면 맛이 없을 확률이 높다. ㄱ래서 또 지나쳤다. 고기보다는 해산물을 좋아하는데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끊임없이 두리번거렸다. 마냥 두리번거리기만 하니 딸의 한숨 소리가 그라나다를 덮었다. 어쩔 수 없이 가까운 타파스 집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잠깐, '타파스'라는 단어가 스페인어로 '덮다'라는 뜻의 'tapar'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타파스 유래는 2가지 의견이 있는데

1. 잔에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빵이나 햄 조각으로 잔을 덮었다는 의견.

2. 금주령 때, 술을 가리는 목적으로 덮었다는 의견.

세비야에서 그라나다까지 1일 여행을 해주신 가이드의 이야기였습니다.


처음으로 먹은 타파스는 햄버거였다. 빵을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더 이상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다가는 딸에게 맞을 것 같았다. 허접한 햄버거였지만 나름 맛은 있었다. 딸은 화이트 와인, 나는 맥주를 마셨다. 햄버거를 우걱거리면서도 나는 옆집은 어떤 타파스가 나왔나 연신 기웃거렸다. 딸은 웨이터와 불어로 Small Talk를 하는 중이다. 내 딸이지만 멋지다. 나도 외국어로 말하고 싶다. 수다 떨고 싶다. 평생 외국어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살다 보니 아쉬울 때가 생겼다. 바로 지금 같은 경우였다. 옆 테이블에 멋진 중년 여성이 나를 보며 웃었다. 나는 말없이 잔을 들고 화답했다. 그리고 바로 고개를 돌렸다. 말 시킬까 봐.


두 번째 타파스는 고기였다. 구운 고기가 아닌 부드러운 갈비찜 스타일이었다. 감자도 같이 익혀 나왔다. 감자를 으깨 고기와 함께 먹었다. 와인과 어울리는 타파스였다. 여기서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았다. 타파스는 바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웨이터에게 테이블로 안내받아 앉았을 뿐인데, 테이블에서는 타파스가 안 되고, 요리를 시켜야 한다고 홀 담당 웨이터에게 핀잔을 들었다. 일어서서 나오는데 가게 문 앞에서 처음 만나 웨이터를 만났다. 그는 왜 나오는지를 물었고, 딸은 영어로 말했다. ‘우리는 타파스를 먹으러 왔는데, 타파스가 안 된다고 해서 다시 나오는 중이다. 너 책임이다. 책임져라!’ 대충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웨이터는 우리를 타파스를 먹을 수 있는 바로 다시 안내를 해줬다. 그리고 미안하다며 윙크했다. 잘생긴 웨이터에게 딸은 ‘그라시아스’를 외치며 좋아했다.


세 번째 타파스는 더욱 신중하게 골랐다. 마지막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배가 점점 불러오며, 포만감에 모든 것이 귀찮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눈치를 챈 딸은 일단 밤 산책하며, 배를 조금은 꺼트리자는 현명한 제안을 했다. 알람브라 궁전을 끼고 걸었다. 도시는 조명을 과하지 않게 활용을 잘했다. 슬쩍, 슬쩍 보이는 궁전이 아름다웠다. 산책을 마칠 무렵 뜻하지 않은 해산물 타파스를 발견했다. 우리는 맥주를 시키고 무엇이 나올까 궁금해하며 수조를 바라봤다.

“문어 나오면 좋겠다.”

“나는 새우가 나올 것 같은데.”

“새우도 좋지. 가리비도 맛있는데. 치즈 가리비가 나오면 대박이겠다. 그래, 맛조개도 있지. 도대체 뭐가 나올까? 이 맛에 타파스를 먹는 것 같다.”

기다림 끝에 나온 타파스는 우리의 예상 밖이었다. 정어리 튀김이었다. 정어리 튀김은 처음이라 조심스럽게 한입 물었다.

“빙어튀김 맛인데.”

“아빠, 나는 미꾸라지 튀김 같아.”

“맥주에 튀김이라 환상적인 궁합이다. 맛있다. 오늘 간 곳 중에서 여기가 최고 맛집이다.”


그라나다의 첫날밤은 타파스와 함께, 초승달과 함께, 알람브라 궁전과 함께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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