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승 택시

by 윤희웅

오늘은 존경하는 선배와 술을 마시고, 떠들고, 위로받은 날이었다. 최 선배는 술값으로 만 원 한 장이면 충분했다. 저렴하고, 맛있는 술집은 주로 동대문, 광장시장, 종로 구석에 숨어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최 선배 손에 이끌려 광장시장 골목에 숨어있는 전집에서 막걸리 두 병에 빈대떡과 전을 만원에 먹었다. 파고다 공원 뒤쪽 골목으로 들어가 막걸리 두 병에 돼지고기 듬뿍 든 김치찌개로 2차를 했다. 물론 이곳도 만원이었다. 다음으로 동대문 풍물시장으로 자리를 옮겨 막걸리 두 병에 반계탕으로 3차를 했다. 물론 만원이었다. 마지막으로 포장마차에서 막걸리 두 병과 순대로 4차를 했다. 이곳은 만원도 아닌 팔천 원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트림과 섞여 수시로 올라오는 막걸리 냄새는 목젖을 샌드백 치듯이 강타했다. 전철을 타려면 조금이나마 술 냄새를 숨겨야 했다. 비틀거리며 편의점에 들어가 마스크를 한 장 샀다. 몸에서 나는 막걸리 냄새는 어쩔 수 없지만 숨 쉴 때마다 입에서 나는 막걸리 냄새는 나에게도, 남에게도 민폐였다. 지금 탄 전철은 사당 행 막차라 안산까지 가려면 사당에서 환승을 해야 했다. 잠들지 않으려고 빈자리가 눈에 띄어도 일부러 서 있었다. 사당에서 안산가는 전철이 없다면 택시를 타야 했다. 지갑이 순간 가벼워지는 마술을 경험할 수 있다. 예감은 어김없었다. 사당에서 안산 가는 열차는 이미 끊어졌다. 하지만 산본행 막차가 남아 있었다. 산본에서 안산까지 합승 택시를 검색해 보니 만원 정도였다. 이제 마음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산본역 계단을 내려오니 도로에 택시들이 줄 서 있었다. 나는 택시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안산 한 명”


눈치 빠른 택시 기사가 뛰어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택시 기사에게 간택되었다. 뒤늦게 달려온 기사는 나에게 ‘한 명만 더 타면 지금 출발할 수 있는데’, 하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잡힌 손목을 슬며시 빼며 말끝을 흐린 택시 기사를 따라 나셨다. 택시 뒷자리에 학생으로 보이는 여성 두 명, 조수석에는 직장인으로 보이는 여성 한 명, 셋이 타고 있었다. 기사는 조수석에 앉아 있던 여성에게 뒷자리로 자리를 옮겨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기사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기사는 시동을 걸고 안산으로 출발했다.


“안산 중앙역까지, 인당 만 오천 원입니다.”


그때였다. 학생처럼 보이는 여성이 핸드폰을 기사에게 내밀었다.


“기사님, 중앙역까지 택시비가 만 오천 원 나오는데 어떻게 인당 만 오천 원을 받아요?”

“택시에 타실 때 말씀드렸잖아요. 안산 중앙역까지 인당 만 오천 원이라고. 그때는 아무 말 없다가 지금 이러시면 곤란해요.”

“저는 인당 만 오천 원 못 내요. 여기에 4명이 탔으니까 오천 원씩 낼게요. 그러면 기사님도 택시비 오천 원 더 받는 것이니까 밑지는 장사는 아니잖아요. 우리 그렇게 해요?”


뒷자리에 같이 앉아 있던 직장인 여성은 학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좋아요’를 외쳤다. 이제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나에게 시선이 쏠렸다. 기사는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저씨는 어떻게 하실래요?”


살면서 이처럼 당황스러운 순간이 있었을까. 기사의 표정과 뒷자리 여성들의 표정을 번갈아보며 나도 모르게 손에 난 땀을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우리가 택시에 탈 때 인당 만 오천 원이라는 것을 알고 탔잖아요.”

“그런데 아저씨, 합승은 불법 아니에요. 좋아요. 그러면 신고할게요.”

“알았어요. 신고하지 마시고 오천 원씩 내세요.”


택시가 중앙역에 도착하고 여성들은 오천 원씩 택시비를 냈다. 나는 허탈해하는 기사를 바라보며 만 오천 원을 냈다. 택시 기사는 오천 원만 받겠다며 만원을 다시 돌려줬다. 나는 만 원을 다시 돌려주며 택시 문을 열고 나왔다.


“사장님, 댁이 어디세요?”

“저 시청 근처입니다.”

“그럼 타세요. 집 앞까지 모셔다드릴게요. 이런 일이 가끔 있어요. 처음에는 화도 내고 했는데 학생들은 못 당해요. 몇 번 신고당해서 벌금도 내봤고, 이제는 그냥 그러자고 해요. 아무래도 벌금 내는 것보다 오천 원씩이라도 받는 것이 났겠죠.”

“학생들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조금 치사하네요. 그렇다고 야단칠 수도 없고, 솔직히 뭐가 옳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이 먹으면 사는 게 좀 쉬워질 줄 알았는데… 점점 힘들어요.”

“잊어버리세요. 건강에 해롭습니다. 아무튼 오늘 고생하셨고, 덕분에 집 앞까지 잘 왔습니다.”


돌아가는 택시를 바라보며 집 앞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편의점 사장이 아는 척을 하며 막걸리를 봉지에 담아 줬다.


“전작이 있는 것 같은데 또 드시게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요. 사장님은 아세요?”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냥 사는 거죠.”

“그렇죠. 그냥 살아야겠죠.”

keyword
이전 26화아드님 이름이 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