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는 다시는 없을 유일한 교복 자율화 시대였다. 검정 교복을 벗어던진 청소년들은 무엇보다 록밴드에 열광했다. 시나위, 부활, 들국화, 백두산 중 록밴드 3 대장은 누구인가를 놓고 많은 청소년이 목숨을 걸고 혈투를 벌였다. 들국화의 포크 록부터 백두산의 헤비메탈까지 그 당시 청소년들은 지금의 아이돌 팬덤문화 못지않게 열광했다. 1980년대 대학가요제는 록밴드가 점령했다. ‘마그마의 해야’, ‘티삼스의 매일매일 기다려’,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는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나 역시 ‘들국화의 행진’을 목 놓아 부르며 눈물을 흘렸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 끝까지 가는 거야. 행진하는 거야를 다짐하며 청춘의 힘든 시기를 넘어왔다. 어느 날,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나온 후, 록밴드는 텔레비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나마 홍대에서 인디밴드로 숨을 허덕이던 록밴드는 2005년 음악캠프 생방송에서 카우치 멤버의 충격적인 노출 사고로 방송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가슴 한편에 록의 정신을 품고 살았던 나는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록은 사라졌다. 사라진 록과 함께 나의 청춘도 사라졌다. 매너리즘에 빠져 하루하루를 힘겹게 지내던 나에게 2011년 KBS에서 방송된 탑 밴드는 죽어있던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다만 나이를 먹었을 뿐이다. 그동안 가슴 깊이 숨어있던 록의 정신이 다시 살아남을 느꼈다. 방송을 보다 처음으로 공개방송 신청을 했다. KBS 공개홀 앞에서 젊은이들과 같이 줄을 섰다. 심장의 부산스러운 떨림을 오랜만에 느꼈다. 기다렸던 공개방송은 감동적이었다. 다만 장시간 스텐딩공연으로 인해 허리를 부여잡고 잠시, 아니 한동안 주저앉았을 뿐, 나는 젊은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 나는 아직 죽지 않았어. 록이 살아 있잖아. 이제 다시 달리는 거야. 공개방송의 뜨거운 감동을 안고 살아가던 나에게 시간이 지날수록 록의 갈증은 더욱 심해졌다. 그래, 록을 느끼자. 록의 고향인 홍대에 가자. 배가 나오고, 머리가 조금 빠졌을 뿐, 나는 아직 젊은이다. 나는 스스로를 격려하며 전철을 탔다. 그때까지는 젊은이들 속에서 위화감 없이 섞일 자신이 있었다. 홍대의 록 공연장 앞, 많은 젊은이 속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괜히 왔다는 생각과 어떤 고난이 와도 끝까지 행진해야 한다는 록의 정신 사이에서 수없이 고민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집으로 돌아간다면 평생 머리 빠지고, 배 나온 아저씨로 살아야 한다. 겉모양보다 록의 정신으로 살고 싶었다.
매표 순서를 기다리며 가만 살펴보니 더 이상 매표를 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모든 좌석은 인터넷 예매였으며, 취소된 좌석만 현장 판매였다. 아무리 살펴봐도 취소된 좌석이 나에게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나의 청춘은, 록의 정신은 이렇게 끝이 나는 것일까. 나는 불안함에 현장 진행 요원에게 다가가 사정 설명을 하고 자리를 얻고 싶었다.
“저 죄송하지만, 공연을 볼 수 없을까요? 인터넷 예매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멀리서 왔는데 이렇게 돌아가기가 너무 아쉽네요. 방법이 없을까요?”
“아버님, 공연 보러 오셨어요?”
아버님이라니,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입장은 아니었다. 나는 억지 미소를 띠며 공연을 꼭 보고싶다고 말했다.
“아드님 이름이 뭐예요?”
이 상황에서 뜬금없이 아들 이름을 왜 묻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진행요원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되는 처지였다.
“요셉입니다.”
“아, 요셉이 아버님이시구나. 들어오세요.”
“표를 구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들어갑니까?”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들어오세요.”
“그러면, 푯값을 드리겠습니다.”
“가족은 푯값 안 받습니다. 어서 들어가세요.”
그제야 진행요원이 왜 아들 이름을 물었는지 이해가 갔다. 아마 출연진 중에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나 보다. 나는 순간 망설였다. 내 아들이 아닌데, 하지만 나는 어느새 진행요원의 안내를 받으며 공연장에 들어가고 있었다.
“무대 앞으로 가시겠어요?”
“어휴, 젊은 친구들이 노는데 어떻게 제가, 저는 뒷자리에서 조용히 음악만 듣다 가겠습니다.”
나는 공연장 뒤에 서서, 진행요원이 가져다준 맥주를 마시며 편안하게 공연을 즐겼다. 가끔 허리가 아파 잠시 주저앉았을 뿐, 두 시간이 넘는 공연을 진행요원 덕에 마음껏 즐겼다. 만족스러운 공연 관람이 끝난 후, 나는 부리나케 빠져나가다 진행요원과 마주쳤다.
“아버님, 공연 어떠셨어요?”
“좋았습니다.”
“요셉이 보고 가셔야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괜찮습니다. 그냥 갈게요. 그리고 요셉에게는 제가 왔다고 말하지 마세요. 부탁드립니다.”
진행요원은 잠시 생각하는 듯 보였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밝게 웃었다.
“저의 아버지도 말없이 공연을 보고 가시곤 했는데 모든 아버지가 다 비슷하네요.”
“뭐, 다 그렇죠.”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일은 아버님과 저의 비밀로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아무리 록의 정신을 품고 산다 해도 나이는 속일 수 없었다. 나는 배 나오고, 머리가 빠진 아버지였다. 덕분에 공짜 공연을 봤으니 아쉬울 것은 없었다. 요셉이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고마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