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어떻게 잘 지냈어?”
오염수 방출 반대를 외치며 용산으로 행진하는 중이었다. 누군가 나의 어깨를 치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녀는 십 년 전 모습 그대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누나는 하나도 안 변했네.”
“무슨 소리야. 환갑도 지났고 이제 할머니야.”
“그럼, 희정이가 결혼했어?”
“희정이 아이가 벌써 세 살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 누나는 어때? 여전히 행복해?”
십 년 전, 그녀와 나는 오랫동안 소설 공부를 같이했다. 같은 아파트에 살며 형님과 어울려 맥주도 자주 마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녀는 나를 호프집으로 불렀다. 나의 조언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였다. 그녀에게 고민이 생긴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
“축하해. 그 사람도 누나를 사랑했으면 좋겠네.”
“그 사람이 나에게 먼저 고백했어.”
“그럼,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말이 정말이야?”
“오십이 넘어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엄마 생각이 나서 많이 울었어. 우리 엄마는 서른도 안 되는 나이에 혼자되어 우리 남매를 키웠지. 엄마도 여자라는 생각을 한 번도 못 했어. 내가 오십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우리 엄마는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이제야 미안해졌어. 우리 엄마는 지금 내 나이쯤에 돌아가셨지. 나는 그때 엄마가 다 늙은 할머니로 보였거든.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다시 한번 남자에게 사랑받고, 지금 나처럼 행복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누나의 고민은 뭔데?”
“그 사람이 같이 살고 싶다고 해서….”
집안 속사정까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그녀의 부부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형님도 유쾌하고, 희정이 역시 착하고, 똘똘했다. 그런데 다 늦게 사랑이라니, 왜 그 사람은 세 살이나 많은 그녀를 좋아하는 것일까?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누나 얼굴을 보니까 벌써 답은 정해진 것 같은데, 잘 생각했어. 하지만 이유는 알고 싶어. 내가 글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이유가 희한하게 궁금하네.”
“지금 결혼 생활에 불만은 없어. 가끔은 힘들어도, 다들 그렇게 사니까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있었지. 문제는 내가 지금보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거야.”
“그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다는 거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살고 있었어. 내일도, 모레도 그냥 그렇게 사는 그거로 생각했어. 그런데 그 사람을 만나니까 어제처럼 오늘을 보내며 살고 싶지 않았어. 앞으로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니? 그동안이라도 그냥 행복하게 살고 싶어. 그뿐이야. 너는 어때? 행복하니?”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 나는 가슴 벅차게 밀려오는 커다란 행복도 좋지만, 그건 단지 욕심이라고 생각해. 늙어서 그런지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는 것도 보잘것없지만 행복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또 특별히 행복하고 싶지도 않고, 고민도 하고 싶지 않아. 만사가 다 귀찮아.”
“이해인 수녀의 행복의 얼굴이라는 시에,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한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내가 지금 행복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나에게 고통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라는 시구처럼 내가 찾는 행복이 유별할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 행복에 당연히 고통도 따르겠지. 하지만 나는 죽기 전에 가슴 벅찬 행복을 하루라도 느끼고 싶었어. 그뿐이야.”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숙제처럼 남겨놓고, 그녀는 사라졌다. 작은 가방 하나 들고 사라진 그녀를 십 년 만의 거리에서 만났다. 그녀는 아직도 행복하다며 하얗게 서리 내린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그녀의 반듯한 목선이, 서리 내린 머리가 아직도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나는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숙제처럼 남겨진 행복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십 년 전처럼 여전히 행복했고, 여전히 예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