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이스탄불에서 근무할 때 일어났던 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늘 그렇듯이 오전 9-11시는 업무에 집중하는 시간이다. 어느 회사나,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나는 오전 이 시간대가 가장, 그리고 특히 중요한 일을 처리하면 효율이 높다. 남들보다 나은 결과의 이유가운데 하나가 내가 나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시간대에 중요하게 우선해야 할 일을 해내는 것에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5월 첫 주 금요일 오전 10시. 곧 주말이라 살짝 들뜬 마음에 Guns N’ Roses version으로 knocking on heaven’s door를 들으며 업무속도를 높이고 있는데 내 즐기는 기분에 시샘이라도 한 듯 회사 로비에서 소란이 들려왔다. 중년의 한 아주머지가 큰 소리로 무랏(Murat A)을 요란스럽게, 흥분된 상태에서 찾는다는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톤으로 봐서는 상당히 급한 듯, 화난 듯 종잡을 수가 없었고 일단 웬만한 기세로는 멈출 것 같지 않은 분위기였다.
무랏은 키도 크고 잘 생긴 데다 회사 내에서 가정적으로, 업무적으로 매너 좋고 신뢰 또한 높은 직원이었다. 일에서도 영업맨으로 잔뼈가 굵어 업계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고속승진 중이었고, 역량과 인성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직원이었기에 무랏에게 찾아온 여성이 자못 궁금했다. 그런데 의외로 그의 아내였다. 대개 아내가 회사까지 찾아올 때는, 그것도 남편의 이름을 회사 전체가 알 정도로 저렇게 외쳐댈 때는 둘 중의 하나다. 가정에 큰일이 생겨 급하거나, 남편이 큰 잘못을 하여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때. 과연 그렇게 점잖고 신뢰 있는 무랏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내가 사태파악을 하는 사이에 무랏도 연락을 받고 로비로 달려가고 있었다. 같은 시간, HR 매니저는 무랏의 아내를 손님용 미팅룸으로 데리고 가 진정을 시키고 있었다. 그녀는 무랏과 아내에 대해 나름 잘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처해서 아내와 대화를 나눈 듯하였다. 대화가 어찌 진행되었는지는 모르나 무랏의 아내는 나와 무랏이 도착하기 전 자진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상황인즉슨, 무랏의 아내가 의부증을 앓고 있다는 것에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알아야 했고 특히 무랏의 저녁일정에 대해서는 매우 예민하여 석식 미팅이 어디서 누구와 이뤄지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알아야 했었다. 무랏의 바른생활과는 별개로 그녀의 증상은 심각했으며 무랏 역시 그녀의 이런 태도를 병으로 여기며 최대한 아내를 위해 더 가정에 신경을 쓴다고 했다. 그녀는 터키 최고의 대학인 보스포루스(Bosphorus) 대학 (보아지치 (Bogazici) 대학이라고도 함)을 졸업한 재원인 데다 키도 크고 누가 봐도 특출 난 미인이었다.
선남선녀의 만남이 화근이었다. 여기에 터키 특유의 외모지향적 문화까지 보태져 생긴 결과였다. 조금 보태어 설명하자면 터키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외모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옷, 장신구, 휴대폰, 차 등 외적인 것에는 투자를 주저하지 않는다. 돈이 없더라도 할부 혹은 빌려서라도 신상을 구매한다. 터키 물가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월급으로는 차, 명품, 휴대폰, 신상들을 감당할 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250만 원이 넘는 휴대폰도 잘 팔리고 명품거리와 자동차 샵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이런 환경에서 잘생기고 잘 나가는 남편을 둔 그녀의 불안감이 극도로 치달았던 것이다.
목요일, 그러니까 하루 전 저녁, 무랏은 회사 동료들과 늦게까지 회식을 하고 전통술인 라크를 마시는 바람에 아내에게 저녁일정을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못했다. 특히 회식자리에 옛 여성동료가 초대되었는데 뒤늦게 알게 된 이 여성동료의 존재에 대해 무랏 부인이 민감하게 굴었던 것이다. 집으로 귀가한 뒤 꼬치꼬치 캐묻는 아내에게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았고 아니, 혹시나 의부증인 아내가 예민해질까 봐 옛 여성동료얘기를 하지 않은 것이 무랏의 실수라면 실수였다. 아내는 이러한 무랏은 물론, 늦게까지 회식을 하는 회사에게까지 화가 난 상태에서 다음날 아침 회사로 직접 찾아왔던 것이다.
HR 매니저가 무랏의 아내에게 전날 회식자리의 분위기, 옛 동료의 초대 배경 등을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해 주자 무랏의 아내는 전후상황을 이해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 날의 사건을 해프닝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생각해 볼 부분이 있었다. 무랏과 아내, 두 사람 모두 나무랄 데가 없었다. 한국식으로 표현을 하면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었다. 선남선녀들이었고 재원들이었다. 단지, 아내의 의부증은 치료가 필요했다. 원인은 추측건대 부모들의 삶에서, 사회에 만연된 외형 중시 등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었다.
터키의 증가하는 이혼율_세 쌍 중 한쌍이 이혼_을 고려 시, 이 증상은 두 사람이 이혼을 선택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도 있었다. 재원이었던 두 사람은 이혼을 선택하여 의부증, 의부증 원인에서 벗어나 당장 마음의 평안을 찾고 다른 삶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결정을 존중하는, 즉 결혼과 가족구성 결정에 책임을 다하는 것을 선택하였다. 서로를 보듬고 가는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터키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과는 결이 다른 결정이고 선택이었다.
이 부부는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우선이었다. 아내의 의부증은 남편에 대한 마음이었고, 남편의 배려는 아내의 아픔을 치료해 주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남편은 자신의 존재로 숨어 있던 아픔이 드러난 것이라 생각하여 아내의 아픔과 같이 한 것이고, 아내는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어 주기에 남편의 마음과 같이 한 것이었다. 온전체가 되어 의부증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또 다른 에피소드는 생길 수 있겠지만, 근본이 바른 사람들이었기에 이들은 자신들의 여정은 더욱 굳건히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더 키웠다. 이 믿음으로 아내의 아픔은 낫고 남편의 배려는 깊어질 것이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과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마음은 밖에서도, 비즈니스에서도 관통했다. 무랏 부부의 얘기는 업계에도 회자되어 무랏에 대한 신뢰를 더 단단히 하게 되었고 무랏 존재자체가 신용이 되었다. 어려운 비즈니스 상황에서도 무랏의 한마디는 거래선들에게 아무런 반감 없이,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다.
내가 발을 딛고 기댈 수 있는 곳, 마음을 열어 신뢰할 수 있는 곳에서 진심을 다할 때, 모든 것을 관통하여 굳건히 나아가는 듯하다. 이 부부의 얘기처럼, 서로의 선택을 존중하고, 선택에 책임을 다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배려하고, 위하는 마음으로 장애요인이 있더라도 아름다운 여정을 계속 이어가 보자고 제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