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싸이코박 닥터 Nov 03. 2022

숨기고 싶은 어린 시절

어린 시절

먼저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겠습니다.

평범하, 즐거웠고, 행복했던 어린 시절. (?)


아름다운 어린 시절을 얘기하고 싶은데, 왜  숨기고 싶은 기억이 떠오르는 걸까요?

잊고 싶은 기억, 고통받은 기억이 왜 자꾸 떠오를까요?


오은영 박사님 대부분의 부모/자녀 관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부모는 아이들에 관한 좋은 추억만 기억합니다.

- 아이들은 부모님에 관한 나쁜 추억만 기억합니다.


그러나 '모든'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며, 부모의 사랑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실수를 저지르는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종 우리의 아이들에게 실수를 합니다.


그래서 자녀가 부모와 관련한 자신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부모는 기억을 못 합니다. 이해를 못 하거나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며 분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녀로서 우리는 부모님을 사랑하고, 부모님도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부모님 하는 부분이 어딘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라고 하면, '부모님의 싸움'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자주 싸우셨습니다.

릿속에는 부모님이 싸우는 그림이 많이 있습니다.  


어느 날은 싸우시는 부모님 앞에 앉아, 남동생과 함께 북과 탬버린을 마구 쳤던 기억도 납니다.

이렇게 더 큰 소음을 내면 싸움이 멈출까 했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랑곳없이 부모님은 여전히 싸우셨습니다.


유치원 다니던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 꼬맹이들, 나와 내 동생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부모님이 헤어질까 봐 두려웠을까요?

버려질까 봐 두려웠을까요?

불안했을까요?


어른이 되어 타임머신을 타고 어렸을 때 부모님 싸우는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면, 이 장면에서 애들을 떼어냈을 것이고, 어른인 나는 어린 나와 내 동생을 껴안았 것이고, 위로했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그렇게 싸우는 것이 어린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부모님은 어린 우리를 사랑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른인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어린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딸들 앞에서 부부 싸움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근데 종종 남편과 딸들 앞에서 논쟁합니다.

티격태격합니다.

그래서 그런 내가 싫습니다.

애들 앞에서 싸우지 않기로 결심해 놓고 지키지 못하는 내가 싫습니다.

그래서 더 나에게 화가 납니다.


부모님 싸우는 걸 보면서 그 어린 나는 큰 결심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절대로 애들 앞에서 싸우지 말아야지.'라고.


인지행동치료에서 설명하길, 사람들은 어렸을 때, 고통을 피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못 지킬 결심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그 결심을 못 지켜 슬퍼하며 살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나도 못 지킬 결심을 한 것입니다.

싸울 수도 있는 건데 말입니다.


싸워도 우리는 화해할 때도 아이들에게 보여줍니다.

아이들에게는 상관없는 엄마 아빠의 문제라고 말해주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중에 화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엄마는 공부에 관해서는 매우 엄격하셨습니다.

화에 들린 엄마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 공부 안 하면 뭐 먹고살래? 뭐 입고 살래? 무슨 일 할래?...".


나는 *'공부를 잘했지만' 남동생은 별로 재능이 없었는지 흥미가 없었는지, 이러한 상처로 고생해서 그런지, '공부를 못 했습니다'. 


*오은영 박사님의  '공부 잘하는 아이'는 원만한 교우 관계 + 성실한 수업 태도 (노력하는 아이) + 건강한 식습관 아이라고 금쪽같은 내 새끼 71회에 말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내 동생도 공부 잘했습니다.

우리 모두 잘하지 않았습니까?



아빠는 나와 내 동생에게 화를 내신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한번 화를 내셨는데, 장면, 장소 및 상황을 정확히 기억합니다.


초등학교 때였습니다.

나와 내 동생은 게임기를 하고 있었고, 평소와 다름없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싸웠습니다.

형제자매들, 함께 있을 때는 악착같이 싸우고, 떨어져 있을 때는 그리워하는 존재.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얼마나 많이 싸웠는지! 


그 와중에 아빠가 들어오셨고, 아빠는 게임기를 바닥에 던지셨습니다. 

아빠가 그것을 부서질 정도로 아주 세게 던진 건 아니었지만 그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항상 평온하시, 술 한 잔을 드실 때를 제외하고는 종종 음소거 상태를 유지하시아빠.

그래서 처음으로 우리에게 화를 내는 아빠를 보는 것이 충격이었습니다.



아빠가 인생 처음으로 화를 내셨던 곳, 그 작은 아파트에서 맞이한 첫 월경 날도 기억납니다.

엄마 아빠는 나에게 빨간 장미를 주시고 축하해 주셨습니다.

아빠는 내가 여자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름다운 기억입니다.



나는 또한 항상 기도하고 계셨던 엄마를 기억합니다.

엄마는 가정 주부였기 때문에 항상 집에 계셨습니다.

동생이랑 나는 엄마가 같이 놀기를 원했지만, 엄마는  항상 기도하시느라 바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놀았던 기억이 없습니다.


한때 우리는 담요와 이층 침대로 창고를 만들었었습니다. 

-아이들은 똑같은 거 같습니다. 우리 딸 애들도 어렸을 때처럼 똑같이 이 층 침대에 창고를 만듭니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우리와 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창고로 왔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기도서와 묵주를 놓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마음은 다른데 가 있고 몸만 우리와 함께 있었습니다.

엄마는 우리와 놀지 않으셨습니다.




https://brunch.co.kr/@4179781ab6314eb/11

https://brunch.co.kr/@4179781ab6314eb/5

https://brunch.co.kr/@4179781ab6314eb/20








이전 03화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끔찍했던 일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