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어린 시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이야기로 기억하고 싶고 그렇게 얘기하고 싶은데, 싫은 기억이 왜 이리 떠오르는 걸까요?
누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미화하여 먼저 자신의 눈에,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어린 시절의 좋지 못한 추억을 숨기고 싶지 않을까요? 이런저런 고통을 겪지 않은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은영 박사님(-편안한 미소와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한국에서 매우 유명한 정신과 의사. 내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를 직접 봐야 합니다. 대부분에 한국 사람들은 그녀의 헤어스타일로 멀리서도 그녀를 알아본답니다.-)은 대부분의 부모/자녀 관계에서이렇게 말합니다.
- 부모는 아이들에 관한 좋은 추억만 기억합니다.
- 아이들은 부보님에 관한 나쁜 추억만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모든'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며부모의 사랑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합니다. '문제' 는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실수를 저지르는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종 우리의 아이들을 향해 실수를 하지요.
자녀가 부모와 관련하여 자신의 '상처' 에 대해 이야기할 때 부모가 모르는 척 아님 이해를 못 하거나 분노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부모님도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부모님을 어딘가를 '탓'하는 부분이 꼭 있습니다.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라고 하면, 나는 '엄마와 아빠의싸움' 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주 싸우셨어요. 내 기억 속에는 부모님이 싸우는 그림이 많이 있습니다. 엄마는 종종 아빠가 옳지 않다고 생각해'억울함' 을 자주 느끼셨고, 아빠는 종종 엄마에 화가 튀어 '수치심' 을 자주 느끼신 거 같아요.나는 부모님이서로에 대해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은심지어 내 남동생과 나, 우리는 북과탬버린 가지고싸우는 부모님 앞에서 최대한의 소음을 만들어 싸움을 멈췄으면 했던 기억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여전히 싸우고 있었습니다. 어렸던 나와 내 동생 기분은 어땠을까요? 유치원 초등학교 어린 꼬맹이들. 부모가 헤어질까 봐 두려웠을까요? 우리를 버릴까 봐 두려웠을까요? 불안했을까요?
만약 내가 성인으로서 이 장면을 목격했다면, 나는 이 '볼 수 없는' 장면에서 애들인 우리를 떼어냈을 것이고, 어른인 나는그어린 나와 내 동생을 껴안을 것이고, 어른인 나는 어린 우리를 위로했을 것입니다. 부모님 이 그렇게 싸우는 것이 어린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 앞에서 그렇게 싸우는 게 아니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부모님은 어린 우리를 사랑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른인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어린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딸들 앞에서 부부 싸움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부모님 싸우는 걸 보면서 그 어린 나는 큰 결심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절대로 애들 앞에서 싸우지 말아야지.'라고...
근데 종종 우리는 딸들 앞에서 논쟁합니다. 티격태격합니다. 그래서 그런 내가 싫습니다. 애들 앞에서 싸우지 않기로 결심해놓고 지키지 못하는 내가 싫습니다. 그래서 더 나에게 화가 납니다.
CBTtherapy를 배우면서 사람들이 슬픈 것은 어렸을 때 우리도 모르게 못 지킬 결심을 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살면서 전혀 안 싸울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내 부모님과 다른 점은 우리는 화해할 때도 아이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사이에 부드러운 순간도 보여주고 우리는 논쟁의 이유를 설명하고 (종종 우리가 감정을 잘못 관리하기 때문에 싸우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나중에 화해하는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설명합니다.
내엄마는 학교 일에 관해서는 매우 엄격하셨습니다. 나는 엄마가 화가 났을 때 우리에게 외치는 소리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 공부 안 하면 뭐 먹고살래? 뭐 입고 살래? 무슨 일 할래?...".
운 좋게도, 나는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지만' 남동생은 학교에서별로 재능이 없었는지 흥미가 없었는지 이러한 상처로 공부를 못 했는지, '공부를 못 했습니다' ...
*오은영 박사님은 '공부 잘하는 아이' 는 원만한 교우 관계 + 성실한 수업 태도 (노력하는 아이) + 건강한 식습관 아이라고 금쪽같은 내 새끼 71회에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내 동생도 공부 잘했습니다.
내 아빠는 나와 내 동생에게 화를 내신 적이 없습니다. 아, 딱 한번 화를 내셨는데 나는 여전히 장면, 장소 및 상황을 정확히 기억합니다.
초등학교 때였습니다. 나와 내 동생은 게임기를하고 있었고 평소와 같이 우리는 싸우고 있었습니다. 서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하고 싶어서 말이지요. 아, 이 형제자매들, 함께 있을 때는 안 싸울 수 없으며, 떨어져 있을 때는 그리워하는 존재... 나는 내 동생과 얼마나 많이 싸웠는지, 그리고 종종 "사소한 일"을 때문에 말이지요. 지금 어른이 돼서야 나는 그 일들이 사소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싸우는 중에 아빠가 들어오셨고, 아빠는 너무 화가 나서 게임기를 바닥에 던졌습니다.아빠가그것을 부서질 정도로 아주 세게 던진 건 아니었지만 그 장면이나에 기억에 새겨졌다고 말하고싶습니다. 그 일은건설되고 있는 큰 아파트를 기다리며 당시 살던 작은 아파트의 우리 방에서 있었던일입니다. 결코 화를 내지 않고, 항상 평온하고, 미소 짓고, 아빠는 술 한 잔을 마실 때를 제외하고는 (그는 불어로'쾌활한 와인' 을가졌다고 말합니다.)종종 음소거 상태를 유지하는 아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화를 내셨다고 기억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는 아빠가 옳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으로싸워서는 안 되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우리에게 화를 내는 아빠를보는 것은내게 충격이었습니다. 놀라움 외에는, 나는 다른 감정을 느낀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 사소한 일에 대해 내 동생과 싸우는 죄책감 감정 정도일까?
나는 또한 엄마와 아빠가 첫 번째 월경 때 나에게 장미를 주신 것을 기억합니다. 얼마나 감동적인 부모님인지... 엄마 아빠는 나를 축하하고 나에게 빨간 장미를 주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 장면을 기억합니다. 아빠는 내가 여자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빠가 인생 처음으로 화를 내셨던 곳, 그 작은 아파트에서 생긴 일이라이기억이 떠오릅니다.
나는 또한 항상 기도하고 계셨던 엄마를 기억합니다. 엄마는 일을 안 하시고 집에 머무르는가정 주부였기 때문에 항상 집에 있었습니다. 동생과 나는 엄마가 우리와 놀기를 원했지만, 엄마는 항상 기도하시느라 바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놀았던 기억이 없습니다. 한때 우리는 담요와 이층 침대로 창고를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은 다 똑같은 거 같습니다. 우리 딸 애들도 나 어렸을 때처럼 똑같이 이 층 침대에 창고를 만듭니다...) , 그리고 우리는 엄마가 우리와 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엄마가 왔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기도서와 묵주를 놓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마음은 다른데 가 있고 몸만 우리와 함께 있었습니다.... 엄마는 우리와 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