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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관 아기 시술로 임신하기

5일 동결배아 이식과 착상

by 단신부인

어느 순간부터 자연히 기대와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에, 그래! 될 대로 되라! 라는 마음가짐으로 선회했다.

2세에 대한 바람 이전에, 한 명의 사람으로서 나 자신을 최우선으로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오래 붙잡고 있자니 그냥 할 수 있는 최선까지만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깨끗이 포기하기로 한 셈이다.

이번 이식까지만 일단 해 보고, 정히 안되면 12월에 짧게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와야지! 라는 생각까지 했다.


2023년 9월 기준, 수중에 있는 동결배아는 5개, 난임휴직 종료까지 남은 기간은 약 3개월.

더는 휴직급여까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복직 시점이 가까워졌다.

자궁내시경으로 8월 한 달을 보냈고, 드디어 월초에 홍양이 비쳤다.

이번에도 자연주기가 아닌, 인공주기로 약을 먹어가며 진행하기로 했다.

배아가 여러 개에다, 만 나이가 지나 5일 배양 기준, 한 번에 2개까지 이식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조금이라도 확률이 높아질까 싶어 2개를 넣어볼까고 의사를 타진했는데,

주치의 판단은 쌍둥이를 원하는 게 아니라면 최상급 배아 1개만 넣어보자고 역제안을 했다.

첫 임신에 다태아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듯 해서 전문가 판단에 따르기로 했다.


동결 1차 때는 이식 날짜 잡기까지 3번 정도 경과보고 내원을 했는데,

이번에는 배란이 안되서 한 번 더 가야 했다.

3번째 경과 관찰 당시, 난포 터뜨리는 근육 주사제의 일종인 IVF-C 10,000IU를 투여받았고,

약 2일이 지나 예견된 배란통이 시작되었다.

일전에 경험해 본 적 있는 아픔이라 어찌 견디면 되는지 몸이 이미 알고 있었다.

이후, 4번째 초음파를 찍었더니 역시나 난포 크기가 줄어들어있었다. 배란이 완료된 것이다.


초음파 사진을 확인한 주치의와 드디어 이식 날짜를 잡았다.

결전의 날은 5일 뒤, 정확한 시간은 전날 전화로 알려주기로 했다.

당일 시술자 상황이 어찌 될 지 모르는 상황이라 이전에도 전날 통지받은 바 있다.

크리논겔 질정, 유트로게스탄 질정, 소론도정, 아스트릭스정, 지스로맥스 정을 처방받았다.

이 부분은 전액 건강보험 비급여라 약값만 54,580원을 지출해야만 했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다.

저출생이라며, 2022년 기준 합계출산율 0.78명이라며, 임신에 필요한 약재가 비보험이라니!

더구나 임신, 출산 관련은 상해나 질병이 아니라며 사보험(실비보험 등)에서도 보장하지 않는다.

단체보험 등에서 관련 특약에 가입돼 있지 않으면 말이다.

한, 두 푼 들어가는 일이 아닌데도 통탄할 일이다.


대망의 이식 날, 수면마취가 없어서 보호자 대동 없이 혼자 왔다.

본관에서 채혈한 후에 난임센터로 오라고 해서 피 뽑고 씩씩하게 수술실에 들어갔다.

여러 번 방문했던 곳이라 이젠 낯설지 않다.

사전 과제로 남은 약 종류와 수량을 기재해왔고, 약케이스를 챙겨왔으며 물 500ml를 가져왔다.

이 날은 배초음파를 보기에, 난소가 잘 보이려면 방광이 어느 정도 차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 넘어가는 걸 꾸역꾸역 삼켰다.

구태여 집에서 마시고 오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기에 수술실 입장 직전에 다 마셨다.


정맥주사 바늘을 꼽고 여러 차례 촬영을 거듭했다.

질초음파와 달리, 배초음파가 안 힘들 줄 알았는데, 꾹 눌러서 보니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어려울 정도다.

평소 요실금이 없는 것에 지극히 감사를 느껴야 했으니-

배뇨욕구를 견디기 힘들다고 얘기하면, 종이컵을 주면서 절반 정도만 비우라고 안내받는다.

중간에 끊고 나오니 찝찝할 수밖에 없지만 별 수 있는가.

이식 전까지 한 번 더 참아야 하니 말이다.


솔직히 이 날은 정맥주사가 더 아팠다.

나보다 간호사 선생님이 긴장한 탓에 왼팔 혈관을 못 찾아서 몇 번이나 갈고리 같은 주사침을 찔러대다가

결국엔 다른 분으로 교체하고 오른팔에 수액을 맞아야만 했다.

피멍이 2주를 갔다. 선생님 미워요.

20230927_135313.jpg 5일 배양 감자배아

눈사람 배아를 홍양으로 떠나보내고, 오늘은 감자를 만났다. 이식 직전에 주는 사진이다.

부디, 사람되어 다시 만나기를 바랐다.

5일 배양한 포배기 배아는 이식 당일 또는 다음날부터 착상을 시작한다고 알려져있다.

큰 부담은 내려놓은 지 오래.

될 대로 되라지- 하는 생각이었고, 친정 엄마도 네가 건강하면 됐다- 란 마인드셔서 맘이 편했다.


사실, 추석 연휴를 앞둔 시점에 남편과 함께 남해 여행 갈 생각으로 부풀어 있었다.

안정은 개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실컷 걸어다녔다. 무리하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남편은 무리한다 싶으면 날 자제시키려 했으나, 웃으면서 씩씩하게 다니는 나를 말리진 않았다.

종종 아랫배가 콕콕- 하는 느낌이 들었으나 임신 징후라는 생각은 못하고 별 생각 없이 보냈다.

약 10일쯤 뒤 1차 피검사하러 난임센터에 방문하기로 예약을 잡았다.


이식 날부터 피검사까지 임신테스트기를 해보는 매일 해보는 사람도 있는데,

지난 번엔 1차 때부터 택도 없는 HCG 수치로 종결했기도 하고,

수중에 남은 것도 몇 개 없고해서 혹시나하는 마음에 피검사 전날 남편 출근시키고 나서 혼자만 보기로 했다.

원래 기상 직후 첫 소변의 중간쯤부터 받는 게 좀 더 정확하다지만... 깜빡 잊고 있다가 늦게나마 보았다.

KakaoTalk_20231006_112144842.jpg 임신테스트기
어?! 2줄이야?


매직아이를 하지 않고도 선명하게 보이는 2줄

최근 논란이 많았던 가짜 임테기는 아닐까고 아주 살짝 의심해봤다.

이것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었다.

피검사 당일, 오전에는 첫 소변을 받아 검사를 진행했다.

이번에는 얼리체크로 했고, 전날보다 선명해진 두 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임신 여부를 확실히 판단하기 위해선 화학적 증거와 병리학적 증거 2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피검사에서 검출할 수 있는 HCG 수치(사람 융모성 성선자극호르몬)는 이 중 화학적 증거에 해당한다.


주치의가 물었다, "테스트기 해보셨어요?"

"선생님, 저 두 줄 떴어요."

소변검사에서 2줄이면 hcg 수치가 최소 40 이상 된다는 뜻이라고 들었다.

첫 피검사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100 이상이거나 혹은 2차, 3차 검사에서 더블링이 잘 돼야 한다.

당일 통지받은 수치는 363. 운 좋게도 안정권이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4일 뒤 2차 피검사. 더블링이 되거나 수치가 안정권으로 올라 있어야 한다.

오후 늦게서야 피검사를 마치고 익일 오전에 전화로 결과를 통지받았다.

"피검사 수치 3,779입니다. 10일 뒤 산전초음파 보러 오세요"

솔직히 1,000 정도만 넘어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예상 이상이라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10일 뒤, 산전초음파를 보러 갔다.

화학적 증거를 확인했으니, 이번에는 병리학적 증거를 살펴볼 차례다.

KakaoTalk_20231020_142426037.jpg

자궁(포궁) 깊숙히 자리잡은 땅콩 모양의 아기집과 작은 심장이 뾸뾸거리는 작은 태아를 보았다.

크기는 0.2~3mm 정도로 아주 작은 상태다.

살아보겠다고 그 작은 심장이 명멸하는 것이 무척이나 대단해보였다. 이게 생명의 신비인가.

화학적 증거, 병리학적 증거 모두 임신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소중한 아기가 복중에 자리잡았다.

끝이라는 생각은 금물, 아직 절차가 더 남았다.

안정적으로 난임센터를 졸업하는 일, 그리고 무사히 산전 검사들을 통과해서 분만까지 성공하는 일.


#임신 #시험관아기 #난임 #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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