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도 짧았던 1년 1개월의 난임 치료 기간에 대한 회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 「꽃」중에서
어쩌면 '정의(Definition)'에서부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난임검사(피, 소변, 나팔관 조영술)를 받고, 내 난소나이를 확인하기 전까지,
단 한번도 내가 난임일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
가임기가 지나기 전에 남편이랑 맘 잡고 때 되면 낳을 수 있겠거니, 하는 천진한 생각 뿐이었다.
결혼식을 올리던 해에 산부인과에서 받았던 미혼여성 검사 결과 때만 해도,
나는 20대였고 난소나이검사(AMH) 상 이상 소견이 없었으니
30대가 되어서도 고정값으로 이어지리란 무사안일한 착각에 빠져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간염, Tdap 등 접종을 맞아놓은 정도로만 대응했을 따름이다.
왜? 피임을 안 했는데도 아이가 안 생기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은
혹시?! 라는 의문이 되어 나를 난임병원으로 이끌었고, N97.9이라는 질병 코드를 획득했다.
이는 '상세 불명의 여성 난임' 이라는 코드이다.
그게 벌써 2022년 10월 말이라는 과거가 되었다.
처음 나팔관 조영술을 받을 때가 생각난다. 진짜 아팠었는데... 또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다.
생리통의 2~3배가 넘는 뻐근함과 조영제가 몸 안으로 흐르는 낯선 감각까지.
건강검진을 받아도 유방 X-ray 촬영 외에는 아파 본 적이 없었는데...
난임 치료는 첨부터 아픈 것들 투성이었다.
내 몸이 아프거나, 혹은 지갑이 아프거나.
남편까지 난임비뇨의학과 검사를 받게 한 후에야, 비로소 정부 지원용 난임진단서가 완성된다.
첫 검사를 받고 약 2개월이 지나서,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던 나는 휴직 카드를 꺼냈다.
남편이야 인공수정, 시험관 신선배아 당일에 잠깐 와서 정자 채취만 하고 가면 된다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사전 경과 관찰까지 포함하면 3~5회 정도는 내원이 필요하니까.
주말부부 생활을 이대로 이어갔다간 2세 계획은 커녕, 죽을 때까지 돈만 벌다가 승천할 거 같았다.
회사에 계속 다니면 급여는 보장해주겠지만, 가족까지 케어해주지 않는다.
내가 잠깐 쉰다고 한들, 조직은 다른 바퀴를 굴려서라도 계속 돌아가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
인공수정 2번, 시험관 신선배아 2번, 자궁경 1번, 동결배아 2번 끝에 가까스로 임신할 수 있었다.
노력도 했지만,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잔여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될 대로 되라' 라는 심정으로 부담을 내려놓은 게 어쩌면 도움됐을까?
1년이 조금 넘게 다니다 보니, 주치의 전담 간호사 선생님도 자주 다니는 이의 얼굴을 인지하게 됐다.
처음엔 다음 스케줄, 먹는 약 확인 정도의 딱딱한 대화만 했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일선 현장에서 바삐 움직이며 난임자를 위해 노력하는 의료인의 모습이 보였다.
프로페셔널로서 신경써줘서 늘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조금씩 스몰 토크도 섞곤 했다.
초음파 촬영 방사선사, 주사실 간호사 등 모두 지난한 치료과정을 버틸 수 있게 도와준 감사한 분들이다.
무엇보다도 변함없이 애정을 쏟아준 남편과,
나를 비난하지 않고 보듬어 준 친정 엄마, 우리 가족으로부터 따뜻한 애정을 느꼈다.
찾아보면 정말 감사한 일 투성이다.
난임병원은 언제 졸업하는가?
자연임신과 성격이 다르기에,
임신확인을 받았다고 해서 바로 분만병원으로 전원하기엔 위험 부담이 크다.
탯줄이 연결되고 영양공급이 잘 되고 있는 지,
태아의 발달 상 이상소견이 없을 때 졸업 및 분만병원 전원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그 시기가 통상 임신 8~9주 사이라고 들었고, 나의 경우에는 10주차에 난임센터 마지막 진료를 보았다.
시험관 아기의 경우, 배아 이식 전 5일부터 임신 일정 주수까지 황체호르몬제 등을 꾸준히 투여한다.
자연임신과 달리, 프로게스테론 등 자가 생성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엔 질정 3정에 일부 먹는 약이 처방되었으나,
사람에 따라, 병원에 따라 피하주사 또는 근육주사를 맞아야 하는 경우들이 있다.
다시 생각해보건대, 동결 1차 때 맞았던 프롤루텍스 주사(일명 돌주사)는 정말 아팠던 기억이 난다.
2022년 10월 말부터, 2023년 11월 말까지,
내원한 횟수는 44회, 자부담으로 3,447,240원을 냈고, 정부지원 2,984,580원을 적용받았다.
아이를 잘 분만할 때까지, 계속 크고 작은 이슈들이 발생하겠지만 부디 잘 버텨낼 수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모든 난임자 여러분들에게 힘과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방법과 희망이 있는 한 끝까지 포기하지 마시라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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