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울지마 아가야.
난 한 번도 이 길을 제대로 올라와 본 기억이 없다.
오늘도 어김없이 헤매고 있다. 이곳은 언제 와도 낯설기만 하다.
평일이라서 예상보다 한가롭다. 입구를 들어서자 정월의 찬 공기가 군데군데 팬 아스팔트 위를 한 바퀴 휘돌아 사라진다. 양 옆으로 어수선하게 늘어선 잡다한 가게들은 낮은 지붕이 땅으로 내려앉아 맞닿아 있다. 표석과 비석을 만드는 곳엔 다듬어지지 않은 검은 돌과 화강암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런 비슷한 곳들을 서너 군데 지나다 보면, 이번에는 조악한 조화들을 파는 곳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합판으로 엉성하게 짜 넣은 선반에는 얼마 안 되는 소주며, 동태포며, 향 등이 구색을 맞추어 자리 잡고, 먼지로 코팅된 유리문을 조명삼아 화려한 색상의 조화들이 플라스틱 양동이에 담겨있다. 이곳의 가게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없이 닮아있다. 변함없이.
명절이나 한식날은 대목이다. 집집마다 햇빛을 잡는다고 삐뚜름한 파라솔을 내다 놓고 양동이에 얼음물을 채우고 막걸리며 소주를 담가 놓는다. 개중에는 발 빠르게 어묵꼬치를 우려내기도 하고, 빈대떡을 부치기도 한다. 고소한 냄새에 이끌리긴 하지만 단 한 번도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 날에는 저마다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로 가득 차서 ㅇㅇ공원묘지는 울부짖는다.
늘어선 상가들을 지난 길 끝에 작은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풍만하게 흐르는 물줄기를 단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는 냇가를 건너려면 아주 짧고 작은 다리를 건너야 했다. 샛길 옆으로 작은 무덤들이 형체 없이 누워있다. 낯선 주검들과 함께하며 한 참을 오르다 보면 위로 계속 이어진 길과 왼쪽으로 낮은 골이 갈라진다. 나는 왼쪽으로 가야 한다.
길도 없이 잡목들과 가시풀과 낭떠러지 같은 곳에서 누군가의 흔적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한다. 그래서 길을 잃고 올라가지도, 그렇다고 내려가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한참을 해야 했다.
그렇게 엄마는 번번이 나를 힘들게 했다.
찾을 수가 없다.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올 때마다 헤매던 끝에 묘소 양쪽으로 제법 큰 향나무를 심었었는데 찾을 수가 없다. 또 그랬다.
엄마에 대한 기억을 할 수가 없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한 점을 응시한 채, 애써 끌어내어보려 하지만 기억이 도통 나질 않는다. 서너 개의 작은 편린들만이 기억을 잡고 늘어질 뿐이다. 비정상적이다. 몹시 이상하다.
엄마가 쓰러지셨다. 중학교 삼 학년.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온 신경이 곤두서 있던 시기다.
엄마가 또 쓰러지셨다. 가까운 병원에서는 담석증이라고 했었다. 큰 병원으로 옮겼을 때는 이미 간암 말기라고 했다. 병원에서는 집으로 모셔가기를 권했다. 엄마의 배는 갈수록 커져 갔다. 팔다리는 빼빼 마르는데, 얼굴과 발가락 손가락은 빼빼 말라가는데, 엄마의 배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엄마가 누워있는 이불 위로, 등 뒤로 비닐이 깔렸다. 엄마의 등은 욕창이 생겨 고름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엄마는 결국 다시 병원으로 가셨다.
아버지는 삶에 너무나 지쳐 있었고, 우리들의 희망 큰 언니는 너무 멀리 있었고, 오빠는 방황하고 있었고, 우리들은 너무나 어렸다. 그랬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결국 눈도 못 감고 돌아가셨다.
어린 막내는 겨울산 위에서 울부짖었고, 땅은 얼어붙어 흙을 파내는 곡괭이는 자꾸 헛발질을 해댔다.
엄마의 묘 자리는 병풍처럼 둘러쳐진 봉우리들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다. 정상 조금 못 미친 가운데쯤에서 앞산의 다른 무덤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사무실에서는 명당자리라고 했었다. 아카시아가 무덤을 휘감았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뿌리를 자른 단면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지지고 나서야 겨우 전쟁을 끝낼 수가 있었다.
병실의 벽이며, 천장은 온통 하얀 색깔이다. 엄마가 누워계신 침대 시트도 빳빳하게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하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얀 세상 안의 엄마는 더더욱 작아 보였다. 볼에 엷은 홍조를 띠고 소녀처럼 웃으셨다.
나는, 파랑새가 될 거야. 그래서 너희들 잘 사는 모습을 다 볼 거야. 그러니 울지 마. 아가야.
가까스로 엄마를 찾았다. 엄마를 베고 누워 아래로 보이는 낯선 이들의 무덤을 내려다보았다. 사무실에서는 공원묘지를 납골당으로 바꿀 모양이다. 조만간 여기도 많이 바뀌겠지.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엄마---하고 불러본다.
순간, 그새 많이 자란 향나무 가지 속에서 재빨리 날아올랐다.
새다. 새다.
파랑새다.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