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엄마 아빠를 모른답니다.
대박.. 엘리베이터가 기다리고 있네요.
오늘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요.
아뿔싸. 1층에서 103호 할아버지를 만났어요.
저만 보면 얼굴을 만지고 뽀뽀를 하려고 들어서 정말 미칠 것만 같아요.
싫다고 얘기해도 도통 알아듣지를 못하세요.
겨우 품에서 빠져나왔어요.
오늘은 대로변으로 통해있는 쪽문 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가로수 아래쪽으로 풀이 무성하네요. 습하고 더운 기운이 훅하고 밀려와요.
요 며칠 장맛비 때문에 산책을 못했었는데 오랜만에 흙냄새가 정말 좋네요.
우람한 느티나무들이 드넓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숲은, 알맞은 냉기와 보송보송한 흙이 가득하고 군데군데 잔디 사이사이로 달걀꽃과 토끼풀이 가득 피어 있어요.
오늘은 참새들이 유난히 많이 날아오르네요.
그래도 저는 저 숲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곳의 음습하고 무거운 공기도 싫고요, 지난번에 발바닥 사이에 솔방울 깨진 것이 끼어서 혼난 적이 있은 후론 자발적으로 들어간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왼쪽 모퉁이에 있는 중국집 주차장에 차들이 많네요.
도로변에 차를 대놓고 수다를 떠는 학원차 기사 아저씨들은 빨리 지나치는 게 상책이에요,
담배 냄새가 아주 독하거든요.
중국집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 도서관 쪽으로 가고 있는데 공원 쪽에서 마주 보고 오는 친구가 보이네요.
가끔 만나는 친구 골든 레트리버예요.
저는 못 본 척하고 가로수 아래에서 제 볼일도 보고 냄새도 맡으면서 무시했어요.
어느새 그 친구가 가까이 와서는 저에게 오고 싶어 안달이 났네요. 끙끙거리면서 몸을 자꾸 제 쪽으로 당기려 안간힘을 쓰지만 오늘도 실패했어요. 줄에 붙들려서 더는 가까이 올 수가 없었거든요.
저는 서둘러서 도로 쪽으로 최대한 몸을 붙이고 앞으로 빨리 걸음을 옮겼어요.
가족들은 절보고 쫄보라고 놀리지만 그렇지 않아요.
저는 평화주의자거든요.
8동 놀이터 옆 정원에 검은색 고양이가 벽을 등진채 엉덩이를 바닥에 잔뜩 붙이고는 미동도 없이 저를 응시하고 있네요. 눈을 마주치진 않았지만 그와 나 사이의 긴장감으로 주변 공기가 쨍쨍했어요.
겨우 지나왔나 싶었는데 오른쪽 철쭉 군락 속에 한 마리, 두 마리, 또 한 마리 검은 고양이 천지네요.
무슨 일이래요? 아마도 새로운 가족이 탄생했나 봐요.
며칠 전에 제 생일이었어요.
저를 너무나 사랑하는 형아는 수제 파이와 쿠키를 사 와서 8살 생일 초와 함께 엄마랑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어요. 바쁘신 아빠랑 공부하느라 늦게 오는 누나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서운하진 않아요. 이해하니까요.
형아는 저에게 고깔모자를 씌워주고 싶었나 본데 제가 원체 입는 거에 까탈스러워서 포기했대요.
저는 엄마 아빠를 모른답니다.
푸들 순종이 아니고 믹스 같다고 가족들은 얘기하는데 글쎄요, 모르겠어요.
슬픈 일이지만 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답니다.
저두 형아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가끔 제가 제일 싫어하는 코에다 입바람 부는 장난을 칠 때는 앙 물어주고 싶어요. 그래도 저는 형아랑 뽀뽀하면서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저는 엄마가 참 좋아요. 엄마는 언제나 제 편이거든요.
엄마랑 저는 일어나자마자 물 한 컵을 마시고는 사과 한쪽을 나눠 먹으면서 하루를 시작하지요.
베란다 암체어에 앉아 활기찬 거리를 내려다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이 시간이 엄마랑 저는 아주 행복하답니다.
저는 항상 엄마를 졸졸 따라다녀요.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이기도 하지만 부지런히 움직이면 항상 먹을게 생기거든요.
식구들은 아무거나 주지 말라고 하는데 엄마는 살짝살짝 나누어 주세요.
저는 괜찮은데 가족들은 왜 가리는지 모르겠어요. 미스터리예요.
항상 졸졸 따라다니는 저를 보고 엄마는 졸 2라고 놀리세요.
졸 1은 누구일까요? 알아맞혀 보세요.
아빠는 사실 저랑 한 가족이 되는 것을 극구 반대하셨었어요. 옛날 분이라 강아지는 밖에서 키워야 한다는 고루한 생각을 가지고 계셨거든요.
누나와 엄마가 일단 저질러서 우리는 가족이 될 수 있었답니다.
한데, 지금은 어떨까요?
아빠는 저한테 푹 빠져서 헤어 나오질 못하시지요.
아빠가 귀가하셨을 때 저만큼 아빠한테 애교와 사랑을 보내긴 쉽지 않거든요.
암튼, 단지 내 공원으로 들어갔어요.
놀이터에서 남자아이와 엄마가 모래 놀이를 하고 있네요.
얼마 전에 아빠와 놀이터에서 놀 때, 아빠가 약간 취하셔가지고 미끄럼틀에서 저를 놓치는 바람에 혼자 내려왔잖아요. 얼마나 놀랐는지 지금도 가슴이 벌렁거려요.
저는 스릴을 즐기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공원을 한 바퀴 돌고 테니스코트 쪽을 지나는데 마르티스가 쨍쨍거립니다. 쟤는 왜 매일 히스테릭한 걸까요?
릴랙스... 릴랙스...
제법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콧등을 스치네요.
이제 집에 갈까?
엄마를 올려다봅니다.
산책, 즐거웠니 벤츠? 엄마가 물어보시네요.
네, 엄마. 무척 즐거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