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뜨거운 아침 햇살이 유리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오전 11시쯤이면 어김없이 자동 유리문 버튼을 누르고 들어왔다.
한 발자국 들어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계산대를 지나 제일 안쪽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소주와 맥주, 막걸리가 진열된 냉장고 앞에 섰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소주가 있는 냉장고 문을 열고, 참이슬플래시포켓 200ml 한 병을 꺼내 들고 계산대로 와서 참이슬플래시포켓을 먼저 내밀고, 포스에서 바코드를 입력하는 동안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과 백 원짜리 동전 세 개를 주섬주섬 꺼내서 내 손바닥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는 참이슬플래시포켓을 오른손으로 집어 챙겨 들고 왔던 길로 사라졌다.
정확히 삼십 분 후에 그는 다시 왔다. 그는 아까와 똑같은 루틴으로 참이슬플래시포켓 한 병을 또다시 챙겨 들고 사라졌다. 12시 55분 그는 또 왔다. 그리곤 두 번의 데자뷔처럼 한 뼘의 오차도 없이 왔던 길로 다시 돌아나갔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루틴이었다. 그는 그만의 루틴을 벗어나거나 허문 적이 없었다. 일 년 가까이 그를 지켜본 바로는 까치가 까마귀울음을 울지 않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키는 중키보다 훌쩍 커서 백팔십은 넘어 보였고, 호리호리하고 날씬했으며, 풍성하고 검은 머리와 보기 좋게 그을린 다크 초콜릿 빛깔의 피부는 건강해 보였다. 원래 그런 색인지 일부러 햇볕에 태운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피부가 어린아이처럼 매끄러워 보였다. 그는 특별히 진실해 보일만한 짓을 하거나 하지 않았는데도 묘하게도 무척이나 진실해 보이는 타입이었다. 주로 블랙과 그레이톤의 고급스러워 보이는 세련된 아웃도어에 요즘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헤드셋을 쓰고, 검은 선글라스를 끼거나 부드럽고 선해 보이는 눈빛을 지닌 눈망울에 쓸쓸함을 잔뜩 머금은 채로 오전 11시 무렵 자동 유리문 버튼을 누르고 들어왔다.
그는 소주가 진열된 냉장고 앞에 서서 매일 아침 눈을 뜨듯 매우 익숙한 손짓으로 유리문을 오른쪽으로 밀어서 열고, 맨 위칸에 세 병 남아있는 참이슬프레쉬포켓 200ml 중에 첫 번째 병을 왼손으로 집어 들고, 오른손으로 유리문을 왼쪽으로 밀어 닫았다.
온몸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진한 그레이 티셔츠 목 주변에서부터 등 허리께가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에게서 바다 냄새가 났다. 냄새는 희미했다.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을 리 없고, 바다를 보고 왔다고 해도 거리상 냄새가 남아있을 리 없으니, 아마도 한강에 바다 냄새를 섞어서 가져왔나 싶다.
그는 매번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 같은데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모든 것들을 디테일하게 살펴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딱히 명료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그를 둘러싼 짙은 회색의 그 무엇이 그를 조금은 이지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오늘은 별나게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시지를 만지작거리더니 무심히 던져 놓았다.
항상 지폐 한 장과 동전 세 개로 거스름돈을 내 줄 필요가 없었는데, 지폐 두 장을 내민 그에게 동전을 내어 주느라 그의 손바닥에 내 손끝이 살짝 닿았는데, 나는 트와일라잇의 로버트 패틴슨의 손 끝처럼 몹시 차가울 줄 알았지만, 그의 손끝엔 온기가 서려 있었다. 그가 나를 보고 뭐라 말을 하고는 활짝 웃어 보였는데, 예상하지 못한 그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나도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아마도 뭐 나쁜 말은 아닐 듯싶어서였다. 매끄럽고 하얀 치아가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에서 유독 강렬한 인상을 풍겼다.
그는 이후로도 한동안 하루 두세 번 위태로운 방문을 유지했다.
매일 같은 양을 마신다는 것 자체로 절대적 중독이라 평가하지는 않는다지만, 그에게선 그 술 없이는 안된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 시간이 되면 꼭 그 술을 마셔야 편하다란 심리적 의존형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두 번 세 번 그 이상 반복되는 의존은 위험해 보였다. 들리는 말로는 몸이 아프다고는 했는데, 삶에 대한 의욕이 약해졌고, 스스로를 돌볼 동기를 거의 잃은 상태이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삼십 대 후반에서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이 딱히 하는 일도 없어 보였다. 이대로는 망가져도 상관없다는 자기 파괴적인 감정이 그를 무기력에 절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는 유리문 밖에 있었다.
그는 화단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담뱃불을 댕기고 우두커니 선 채 반을 피웠다. 그의 얼굴 주변으로 담배 연기가 날렸다. 그는 담뱃불이 완전히 꺼지고 검은 자국만 남을 때까지, 가늘고 긴 손가락에 묻은 재를 털고 기다렸다. 그는 자기 손가락 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몹시 피곤한 표정이었다. 그는 담배꽁초를 오른손 검지로 튕겨낸 후 천천히 움직였다.
자동 유리문 버튼을 누르고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언제나처럼 그는 맨 안쪽 주류 냉장고 앞에 섰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드디어 그가 계산대 앞에 섰다.
약간은 어색한 머뭇거림의 수 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내게 그가 내민 건, 파울라너 바이스비어 독일 맥주 캔이었고, 다음날은 스팀보루 임페리얼 스타우트 독일 맥주 캔이었다. 그의 눈빛은 일말의 조급한 불안감이나 상실감도 없어 보였고, 오히려 얼마간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존재하는 평온함이 엿보였다.
그가 왔던 길로 돌아서 나간 후, 8월의 뜨거운 아침 햇살이 유리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