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매운 것도 필요한 날
출근하자마자 본 스탭의 첫인상은 그냥 평범했다. 이 사람이 며칠 동안 나를 괴롭힐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제가 없을 동안 질문은 유현스탭님, 윤 스탭님한테 물어보면 됩니다"
꾸벅 서로 인사를 하고는 일할 준비를 하던 나는 매니저님의 말을 들으며 말을 덧붙였다.
"매뉴얼에 다 적혀있어서 아마 물어볼 건 없을 거예요"
이 말이 뭔가 걸렸던 걸까. 나중에 생각해 보면 이때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 나는 전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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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계산 교육은 끝났다고 했고, 매니저님이 없는 일주일 동안은 서가 위치만 파악할 수 있게 서가 정리만 하면 됐었다. 제일 간단한 교육이라 크게 부딪힐 일 없고, 편할 거라고 생각했던 게 화였을까
출근하자마자 마주친 신입 스탭에 꾸벅 인사를 하고는 매니저님이 적어놓고 간 메모를 확인했다.
- (월) 2층 굿즈 서가 정리 -
어질러진 것만 정리만 하면 되고, 새로 들어온 물품만 깔끔하게 하면 된다고 가볍게 말한 후 오늘 입고된 책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몇 시간 후 다 끝났다는 말이 있어야 하는데 조용한 게 뭔가 이상했다.
슬쩍 올라가 보는데 굿즈 위치와 어린이 서가 위치를 바꾸고 있었다.
너무 놀라 그 자리에 멈춰서있었더니 나를 보던 신입 스탭이 무슨 일 있냐고 물어왔다.
그걸 왜 멋대로 바꾸고 있었을까 하는 물음이 나오려 했지만, 혹시 모르는 거니깐 한번 물어봤다.
"혹시 매니저님한테 교육받을 때 여기 위치 바꾸라고 했나요?"
"아.. 안 되나요? 전에 일했던 곳이랑 위치가 달라서 옮겨야 되는 줄 알았어요"
뭐 이렇게 당당하지. 당황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분명히 위치가 바뀐 굿즈만 정리하고 새로 들어온 것만 배치하라고 했는데
이게 뭘까..?
할 일이 잔뜩 있는데 이것까지 수습하려니깐 한숨이 나왔다. 만약 자신이 착각하고 옮긴 것 같으면 미안한 기색이라도 있어야 되는데 전혀 없었다.
"어떻게.. 다시 할까요"
뭔가.. 일부러 건가 하고 의심이 드는 말투에 내가 잘못 들었나 했다.
의심할만한 것이 굳이 말하지도 않은 책들을 전부 카트에 담아버렸고 테이블에 있는 책 위치도 이상해졌다.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잠깐 생각하고 있을 때
"근데 저 퇴근시간이라 가봐도 될까요?"
이거 일부러 이런 거다라는 생각에 확신을 주는 말이었다. 몰랐어요 하고 사람 엿먹이는 짓.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싶지만 퇴근시간 인건 맞으니깐 일단 가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온갖 것을 다 꺼내놓아 가득 찬 카트에 한숨이 나왔고, 방금 출근한 유현 스탭님은 경악하며 나랑 카트에 있는 것을 번갈아보았다.
"저 오늘 맥주 한잔 하려고요"
"그.. 네.. 도와드릴까요..?"
더 묻지 않고 하는 말에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카운터에도 새로 들어온 책이 쌓여있었다. 그나마 손님이 없는 날이라 다행이었다.
조금 마음 넓게 생각하면 정말 헷갈려서 그런 거라고.. 더 생각하면 머리 아파지니깐 그냥 생각을 더 안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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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냥 신발장에 걸터 엎어져버렸다.
겨우 마감시간 전에 맞춰 엉망이 된 곳의 정리를 끝냈고, 뒤늦게 마감 준비를 시작했지만 유현 스탭님이 덕분에 퇴근시간이 늦춰지지는 않았다.
"우와.. 힘들어.."
손에는 집에 오는 길에 충동적으로 주문한 배달 음식이 들려 있지만, 일단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10분 정도 그냥 숨만 쉬고 엎어져있었나 이제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것 같았다.
천천히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나는 신발장에 있는 묵직한 봉투 안의 음식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매콤한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웠고 그 냄새에 반응했는지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평소 같으면 약한 위에 시킬 엄두도 못 내지만 오늘 같은 날에는 먹어야 됐다.
'매콤한 햄버거와 달콤한 치즈볼'
다른 매운 음식보다는 매운맛이 덜할지 모르지만, 지금 나한테는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 음식이었다.
그거에 어울리는 생맥주까지.
햄버거를 먹기 전 맥주캔을 따자마자 들리는 청아한 소리. 나는 바로 그것을 들이켰다.
크아아아 아저씨 같은 소리가 나왔지만 이렇게 해야 뭔가 더 맛있었다.
이제 퇴근하기 직전부터 계속 생각났던 도톰한 햄버거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혀가 살짝 따가울 정도의 매콤함과 그걸 중화시켜 주는 소스의 맛이 같이 들어와 발을 동동거리게 했다.
마무리로는 달콤한 치즈볼까지. 하루의 피곤함을 잠시 잊게 해주는 완벽한 조합의 음식에 크게 숨을 내뱉었다.
머리가 복잡했지만, 지금 이 순간은 잠깐 아무 생각 없이 이것을 즐기기로 했다.
하지만, 옆에 있는 일기장에는 실컷 욕을 적을 것이다.
"내일 어떻게 하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