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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우 이은주 Feb 29. 2024

녹차(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시나요?)

찻잎을 따고 덖으며 한 잔의 차에 삶을 담아 냅니다.

며칠 전에는 매화꽃이 피어 가슴 설레게 하더니 오늘 아침 산책길에는 버려진 산수유 가지를 한 더미 보았습니다.    새 봄이 온다고 가지치기를 해서 버려둔 가지에도 노랗게 꽃이 피었는데 운동시킨다고 함께 나간 강아지만 아니었다면 한아름 안고 돌아올 뻔했습니다. 벌써 봄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바쁩니다.

다실에는 며칠째 생강나무꽃이 피어서 오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 잡고 있습니다.

차를 만드는 제다인의 눈길과 손길로 12달 일 년을 들여다보면 가슴 설레는 봄부터 손등이 갈라 터질 정도로 물 일을 해야 하는 12월 동장군의 달까지 어느 하루 바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중국과 대만에서는 벌써 찻잎 소식이 들려옵니다. 녹차와 백차를 만들기 위해 다원의 사진이 올라오는가 하면 차를 만드는 사진도 다양한 SNS매체를 통해 전해져 옵니다.

중국에서는 2월 말이면 벌써 찻잎을 따기 시작합니다. 겨울을 잘 지내고 이른 봄 첫 찻잎이 올라올 때 그 여리고 여린 찻잎은 세상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난향을 가득 품고 달디단 맛을 쌉싸름한 맛 뒤에 수줍은 계집아이 발그레한 미소처럼 숨기고 뾰족이 돋아 납니다.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대만에 비해 날씨가 추워서 청명절(4월 6일) 전의 명전차는 채취가 좀 이르지만 보통은 그 이후에 첫 찻잎을 수확하게 됩니다. 저도 4월이면 수강생 몇몇을 데리고 차나무가 있는 산으로 오릅니다. 이제 막 피어나는 찻잎을 보는 순간 찻잎 따는 손길은 무아지경이 다다른다고나 할까요? 한 잎 한 잎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어쩌다 바구니에 바로 넣지 못하고 땅에 떨어뜨리기라도 할라치면 그 한 잎조차 속상하기가 그지없습니다..


찻잎을 딸 땐 조금 전에 표현한 세상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난향을 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강생들은 나무 그늘에 숨어 소풍처럼 사온 김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놀기도 하지요. 모든 채취가 끝나고 공방으로 돌아와 함께 차를 덖자고 펼친 후 덖음솥에 온도를 올립니다.  그때 까지는 찻잎이 그냥 나뭇잎처럼 보여서 그 속에 숨은 향을 크게 느끼지 못합니다.



덖음솥에 온도가 250도를 넘어서고 찻잎 한 움큼을 솥에 넣고 치지직~익는 소리가 나는 순간 어디서 이런 아름 다운 꽃 향이 날까 싶을 만큼 전해져 오는 난꽃 향기. 처음 차를 덖는 수강생들은 탄성과 탄식이 함께 나옵니다.  아름다운 난꽃 향기에 탄성이 터지고 아까 차 밭에서 놀지 말고 열심히 딸걸 하는 탄식이 터져 나오지요.  덖음에서 올라오는 난향은 겨우내 꽁꽁 언  동토에서 숨죽이며 작은 흔들림 조차도 아껴 가며 길러온

젖내 나는 엄마 가슴 섶에서 나는 분향 같습니다. 뭐라 표현할 길 없어 제가 아는 단어 중에 가장 따뜻한 단어를 붙여 봅니다. 젖내 나는 엄마 가슴에서 나는 분향 세상에서 이렇게 달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단어가 또 어디 있을까요? 차를 덖어 본 사람이라면 이 첫덖음의 향기에 반해 단 한 잎도 옆으로 흘리거니 버리지 못할 겁니다.


녹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얼마나 높은 온도에서 얼마나 잘 익혔느냐가 가장 큰 관건입니다. 이것을 살청이라고 하는 첫 과정인데 이 과정 한 번으로 그 차를 마시는 1년 내내 차맛을 결정합니다.

찻잎이 잘 익은 차는  떫은맛을 내는 탄닌성분이  부드럽고 순후 하며 입안에서 걸리는 것이 없습니다. 자칫 잘 못 익혀서 설익혔거나 혹은 너무 과하게 익힌 차는 너무 구수하거나 텁텁한 떫음으로 깔끔함이 부족합니다.


손수 채취한 찻잎을 덖어서 작고 아담한 다관에 담고 차를 우릴 때 한 잎 한 잎 얼마나 소중한지 한 모금의 차에 수 없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곤 합니다. 찻잎을 따던 손길 분주하던 시간을 추억하며 이 차 한잔을 누구와 함께 나누어 마실까? 어떤 이를 떠 올려보기도 하고 가끔은 가장 소중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저는 해마다 진주의 시루봉에 올라 찻잎을 채취합니다. 산에 오르는 시기는 보통 청명이 지나고 4월 10일

 즈음 첫 채취를 하고 연달이 시간 날 때마다 시기에 맞는 제다방법으로 차를 만듭니다.


녹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채취한 찻잎은 1시간 정도 탄평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습니다. 탄평과정이란 찻잎을 채취한 후 1시간 정도 가만히 놔두는 과정입니다. 바로 덖음솥에 올려도 상관은 없지만 찻잎이 가진 함수율을 조절하는 탄평 시간 가짐으로써 차를 좀 더 고르게 잘 익힐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앞에서도 말 했던 살청이라는 과정으로 찻잎을 익히는 것인데 이때 단 한 번의 살청과정이 그 차의 영원한 맛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산화효소 활성을 정지시키고 맛을 고정하는 단계입니다. 덖음솥의 온도는 250도~300도가 적당하며 이때 찻잎에는 80도을 웃도는 온도가 전달 되어 산화효소가 활성화 되지 않고 멈추게 됩니다.


설청이 끝나 잘 익은 찻잎은 유념이라는 과정으로 찻잎의 부피를 줄이고 찻잎에 상처를 내어 물에 우렸을때 용출이 잘 되게 하지요. 아울러 유념을 하는 손의 방향이나 방법에 따라 차의 완성된 형태가 다릅니다.



건조의 방법으로는 햇볕에 말리는 방법과 기계에 말리는 방법 덖음솥에서 온도를 낮추어 가면서 건조하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건조의 온도와 시간 건조의 환경 또한 차 맛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오늘 목련나무 한 가지를 꺾어다 물어 꽂아 두었습니다. 성급히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봄이 오기도 전에 마음은 벌써 차 밭에 가서 똑똑똑 찻잎 따는 아낙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이제 곧 산으로 갈 준비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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