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속 젤리 한 봉지가 남긴 것들

아빠가 만든 세계에서 내가 주인공이었던 시간

by 앤희베르
산타할아버지와 한국의 어린여자아이가 손을 잡고있는 모습 그려줘.jpg


어렸을 때, 12월 25일은 동화 속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날이었다.
말을 잘 듣는 아이들에게는 산타할아버지가 어김없이 선물을 준다고 늘 들었고,‘선물’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던 시절이었다.


나에게도 성탄절은 늘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집에서 제일 큰 아빠 양말을 몰래 꺼내 최대한 벌려놓고, 선물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 애쓰던 작은 나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 기억 속 산타할아버지는 인자하고, 포근하고, 어딘가 신비한 세계에서 살 것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종종 상상했다.
산타의 마차에 함께 올라타 하늘을 나는 장면을. 달콤하고 따뜻하고 맛있는 상상. 성탄절의 비밀을 알게 된 지금도, 그날만 되면 이유 없이 마음이 포근해지고 들뜨고 달콤해지는 건 아마 그때의 행복이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어서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 아침’은 매번 작은 기적이었다.
자기 전에 꼭 눈을 질끈 감고 빌곤 했다.


“산타할아버지, 저 엄마도 많이 도와드렸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들었어요. 착한 일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꼭 선물 주세요, 꼭이요!”


그리고 25일 아침이면 쉬는 날임에도 벌떡 일어나 거실로 달려갔다.
그날도 양말 옆에는 종합젤리 한 봉지가 놓여 있었다.

내가 기대했던 큰 장난감은 아니었지만,“선물은 분명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세상이 신기하고 행복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우리 집에서 그 작은 젤리 한 봉지는 아빠가 건넬 수 있었던 ‘최고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내 성탄절은 늘 따뜻하고 마법 같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산타에게 관심이 사라지고, 조금 더 크니 친구들과 노는 데 더 바빠졌다.
그리고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산타는 아빠였고, 아빠가 말없이 만든 그 신비한 세상은 결국 나를 위한 세상이었다는 것.


나 역시 아이가 달콤한 상상을 잃지 않도록 남편과 밤새 포장하고 트리 옆에 선물을 놓아두면서, 그제야 완전히 이해했다. 어렸을 때 내가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산타의 신비한 세계’는 사실 아빠가 나를 위해 만들어준
가장 따뜻한 세계였다는 걸.


우리가 자라면서 잃어버린 줄 알았던 ‘마법’은 사실 사라진 적이 없었다.

단지 그 역할이 부모에게서 나에게로 옮겨왔을 뿐이다.

어릴 때 나는 선물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했지만, 지금의 나는 선물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어린 나는 ‘기적’을 기다리는 사람이었고, 어른이 된 나는 누군가에게 ‘기적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한 가지를 깊이 이해하게 된다.

어릴 적 내가 꿈꾸던 환상 속 세계는 어딘가 멀리 있는 곳이 아니라, 늘 나를 중심으로 조용히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산타의 신비한 세상은 북극이 아니라 아빠의 마음 위에서 펼쳐졌고, 그 세계의 주인공은 언제나 나였다.


그렇다.
나는 아빠가 만든 기적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던 아이였다.
그리고 이제는, 누군가의 크리스마스를 따뜻하게 밝혀주는 새로운 ‘산타’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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