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리 내지 않고 슬픔을 삼키며 우는 법을 배웠다.
2018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오전에 교회를 다녀오고, 엄마를 모시고 식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엔 우리가 꼭 대접하고 싶다고.
우리는 이 날 처음으로 장어를 먹으러 갔다.
늦은 저녁이었지만 엄마와 우리는 장어집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서로에게 장어를 구워주었다. 소화가 잘 안 된다며 많이 드시지 못하는 엄마는 계속해서 구워지는 장어를 사랑하는 딸과 사위에게 넘겨주셨다. 우리가 지니엄을 하면서 만난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 쿠키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야기. 그 이야기들을 다 들었던 엄마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너희들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엄마는 마지막까지 우리가 저녁을 사는 것을 걱정했지만, 그래도 이런 날 꼭 밥을 사고 싶다는 사위의 말에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난 바로 다음 주부터 엄마의 상태가 급속히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온몸에 알레르기 반응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음식을 못 드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속이 불편해서 잠시 드시지 못하는 줄 알았는데 점점 드실 수 있는 양이 줄어들기 시작해 결국엔 자극적인 음식은 전혀 드시지 못했고 미음을 한 두 숟갈만 드시기 시작했다.
급하게 아산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2018년의 마지막을 앞두고 마주한 소식은... 엄마의 폐를 제외한 온몸에 암세포가 전이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2년 전, 난소암 말기로 이제 4개월만 남았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후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하면서 엄마는 2년을 버터 내었다. 워낙 씩씩하고 밝은 엄마여서 그렇게 계속 버텨낼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결국엔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이별의 날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는 정말로.... 엄마를 보낼 준비를 해야 할 때였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31일 밤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면서 펑펑 울었다. 결국엔 엄마를 보내야 하는 상황에 다시 마주했다는 사실에 하나님을 원망했고 이 상황이 야속했다. 예배가 끝나고도 계속 눈물이 멈추지 않자 목사님과 사모님이 놀라서 다가오셨고 그저 내 눈물이 멈출 때까지 토닥거리며 곁을 지켜주셨다.
눈물을 쏟아내며 기도했다.
나는 아직 엄마를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그러나 결국에 엄마가 하나님의 곁으로 갈 수밖에 없다면... 남아있는 시간 제가 후회하지 않게 정말 엄마를 잘 보낼 수 있게 제발 도와달라고.
그리고 다짐했다.
'엄마 앞에선 많이 웃자. 엄마와의 기억에 내 눈물보다 내 웃음이 더 많게 하자.'
집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혼자 있을 때면 나는 언제나 엉엉 울었고, 눈물을 멈추고 나면 엄마를 다시 웃으며 끌어안았다.
일을 그만뒀다.
남은 시간, 엄마와 오롯이 계속 함께 있겠다. 그렇게 나의 간병생활이 시작되었다.
엄마의 몸이 붓기 시작했다. 복수가 찼고, 다리가 부었다. 아침에 일어나 미음을 겨우 조금 드시고 나면 나는 엄마의 다리를 주물렀다.
엄마의 곁에 앉아 함께 찬송가를 불렀다.
반짝이는 엄마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들었고,
결혼을 하고 힘들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를 사랑했던 이야기를 들었고,
아버지를 용서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를 낳아 행복했던 이야기를 들었고
그럼에도 하나님께 감사하다 이야기하는 엄마의 고백을 들었다.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나의 엄마라 행복했던 이야기를 했다.
내가 엄마의 딸이라 미안했던 이야기를 했다.
이때의 나는,
길을 걸어가다 울었고
운전을 하다가 멈춰 서서 핸들을 붙잡고 울었고
길에 지나가는 엄마와 딸을 보면 울었다.
이때 알았다.
슬픔을 삼킨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지금은 슬픔을 쏟아낼 수 없었다.
살아내기 위해서 나는 그저 계속 마음 깊은 곳으로 삼켜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소리 없이 우는 법을 배웠다.
2019년 2월 16일.
엄마와 함께 한 마지막 내 생일.
그때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생일 선물로 오븐 하나 사주라."
평소에 생일이면 갖고 싶은 게 없던 내가 처음으로 말했다.
"엄마가... 사주는 오븐을 가지고 싶어."
그렇게 나에게 첫 오븐이 생겼다.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첫 오븐.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를 세상에 있게 해 줘서 고마워.
그러니까.. 조금만 더.. 나랑 함께 있어줘."
엄마는 울었고,
나도 울었다.
우리는 그저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3일 뒤, 엄마는 샘물호스피스 병원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병원에 들어가기 전, 엄마는 나와 오빠들에게 영상으로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거실에서 엄마가 영상을 찍고 있는 동안 나는 방에 들어와 입을 막고 눈에서 눈물을 계속 쏟아내었다.
영상 속 엄마의 모습이 다 남겨지고,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많이 사랑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남기며.
그리고 엄마와 호스피스로 향했다.
유난히 눈이 많이 오는 날이었다.
왜 이렇게 유난히 눈이 많이 왔을까. 운전이 괜찮을까 싶었지만 우리는 호스피스로 향하는 차 안에서 바깥에 펼쳐진 설경을 바라보며 손을 계속 잡고 있었다.
"효야. 꼭 너랑 드라이브 나온 것 같다. 눈 오는 모습이 참 아름답네."
"그러게 말이야."
시간이 멈추길 바라는 것처럼 유난히 느리게 운전을 했던 그날.
이 길의 끝이 어마의 마지막 종착지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는 마음.
우리가 다시 이 길을 함께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 모든 마음이 뒤섞인 채로, 호스피스 병동의 입원수속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