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킹에 집중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도저히 일상으로 바로 돌아올 자신이 없었다. 장례를 마치고, 나와 커요는 지니엄 문을 일주일 동안 닫아두고 두 번째 일본여행, 교토로 떠났다. 아무도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서 언어도 다른 낯선 곳에서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 기간 동안 충분히 슬퍼하기로 했다. 감정에 어느 정도 마침표가 필요했었던 거다.
교토에서 나는 때때로 멍해졌고, 커요와 함께 웃다가 갑자기 길거리에서 울기도 했다. 그러다가 또다시 신기한 거리를 구경했고 즐겁게 웃으며 맛있는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다 눈물이 났고, 아무 말 없이 몇 시간 동안 그냥 앉아있기도 했다.
그래도 교토에 갔던 건 좋은 선택이었다.
우리가 갔던 아라시야마에는 가쓰라가와 강이 있었는데, 고요하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강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내 감정들도 그곳에 실어 보낼 수 있는 것 같았다.
영원히 그 시간 속에 머물고 싶었다.
그러나 내 마음을 모르는 시간은 야속하게도 흘러갔고 결국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날이 되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손님들을 볼 수 있을까?
마치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그렇게 맞이할 수 있을까?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내 상태를 보고 물어볼 거고,
무슨 일이 있는지 아는 사람들은 어떻게 내 앞에서 행동하는 게 좋을지 모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괜찮아?'
듣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고
'힘내.'
화가 날 것 같은 말이었다.
그런 모든...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감정선을 나는 견뎌낼 수 있을까?
난 그럴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이야기를 했다.
"나는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나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용기였다. 이게 나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마침표였다. 이 글을 본 손님들은 나에게 눈으로 인사를 했고, 나는 살짝 웃음으로 그 인사에 답했다.
그리고 일상을 다시 살아나갔다.
2019년 5월. 나는 지니엄에 합류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베이킹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no turning back
돌아갈 곳은 없다.
그 사실이 나를 집중적으로 성장시키기 시작했다.
2019년 6월. 더위를 맞아 상큼한 레몬이 끌려서 레몬커스터드를 집어넣은 오몬(오렌지레몬)을 만들었다.
2019년 8월. 아토피가 있는 아이가 우리 쿠키는 잘 먹는다는 소식을 듣고, 봉지과자 같은 짭짤한 쿠키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 치즈쿠키가 탄생했다.
2019년 10월. 초콜릿과 마시멜로가 들어간 로키로드 쿠키가 나왔다.
이때부터 베이킹 실력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쿠키를 만들기 위해 재료의 성질을 공부하고, 알맞은 레시피를 만들어가면서 오롯이 내가 백지상태에서 그려가는 나만의 쿠키들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로키로드쿠키까지 나와 쿠키 6종류가 완성되고 나니,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딱 6종류의 쿠키가 나오고 나서부터 쿠키를 사러 오는 사람들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하나씩 커피랑 곁들여 먹었던 디저트라는 인식에서 박스선물포장하는 디저트라는 인식으로 바뀌었다. 지니엄은 쿠키집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쿠키박스를 사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커피가 손님들에게 차별성을 일으키기엔 사실 쉽지 않다. 그러나 맛도 모양도 일차적으로 인식이 확실하게 구별되는 시그니처 디저트가 있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쿠키에 이끌려 새롭게 왔는데... 커피도 맛있고, 또 친절하기까지 한 부부가 있는 언덕 꼭대기에 어느 한 카페? 그렇게 우리는 쿠키맛집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었다.
그러다 2019년 12월. 이야기가 담긴 쿠키, 슈톨렌쿠키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우리 부부가 처음 슈톨렌을 먹으며 설렜던 이야기가 크리스마스의 정서와 어우러지기 시작하면서 슈톨렌 박스 구매가 일어났다.
그때 이야기의 힘은 정말 강력하다는 걸 느꼈다.
6종류의 선물포장가능한 쿠키맛집.
이야기가 더해지며 손님과 소통하는 과자.
제품과 이야기. 그리고 진정성.
그렇게 조금씩 장사에 대해서 배워갈 때쯤....
코로나가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