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비약적인 발전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고 있다. 놀라운 발전에 감탄만 하고 있어야 할까?
노래조차 AI가 부른다. 실제 가수와 구별해 내는 것마저 어려운 시대다. TV 프로그램 ‘싱크로유’를 보면 더욱 실감 난다. 방청객과 전문 심사단조차 가수와 AI의 목소리를 구별하지 못해 난감해한다. 이런 장면을 보면 미래가 현실로 다가왔음을 느낀다.
KBS 싱크로유의 한 장면
특히 창작의 영역에서 AI는 이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노래 한 곡을 듣거나 사진 한 장을 볼 때, 그것이 사람의 손을 거친 것인지, AI가 생성해 낸 것인지 쉽게 구별하기 어렵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미술관에 걸린 그림조차 이제는 AI가 창작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복제품과 원본의 차이를 묻는 시대에서 이제는 인공지능 창작과 인간 창작의 차이를 묻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예술 분야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은 이제 공산품, 소비재를 넘어 지적 산물에도 손을 뻗고 있다. 한 땀 한 땀 영혼을 깃들여 쓰던 논문, 보고서, 시나리오가 AI의 도움으로 만들어진다. 과거에는 창작자의 시간과 열정, 경험이 녹아든 작품이었다. 이제는 인공지능과 대화를 잘하면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오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사진 분야에서도 마찬가지. 진정한 포토그래퍼는 후보정에 의존하지 않고, 사진 촬영 자체에 그 가치를 둔다. 광고회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할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제주의 신라호텔에서 지휘자 금난새 부부와 작업하며 다채로운 자세와 표정을 이끌어내던 사진작가 박상훈의 노련함이 지금도 떠오른다. 그가 보여준 것은 단순한 촬영 이상의 것이었다. 사진 속 인물과의 교감을 통해 자연스러운 순간을 포착해 내는 솜씨는 놀라웠다.
마치 영화감독이 몽타주에 의존하는 대신 최대한 미장센을 담아내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배경과 인물을 하나의 그림처럼 조화롭게 담아내는 그의 솜씨는 일종의 영화적 연출과도 같았다.
반면 AI가 생성한 사진은 기술적으로 완벽해 보일지 몰라도, 그것이 전달하는 감정과 정서의 깊이는 다소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사진과 인간의 손길이 느껴지는 사진은 분명 다른 결을 갖고 있다.
포토그래퍼의 투혼
음악 제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통적인 곡 제작 방식에서는 작사가가 시를 쓰고, 작곡가는 오선지에 악보를 그려 넣은 후, 수많은 보컬 녹음을 거쳐 완성된다. 이렇게 반복된 과정 속에서 곡의 감정이 자연스레 덧입혀지면서 ‘살아 있는 음악’이 탄생하는 것이다. 한때는 이런 과정을 혁신하기 위해 컴퓨터에이드 뮤직(CAD Music)이 등장해 주목받았다. 지금은 이 조차도 구닥다리가 되고 있다.
음성 모사뿐만이 아니다. 유튜브에도 AI 노래 영상들은 차고 넘친다. 우리가 한때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던 곡들을 자유자재로 복제해 내고 있다. 특정 가수의 음성 톤과 스타일을 완벽히 재현해 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인공지능은 이제 음치나 박치도 ‘가수’처럼 노래하게 만든다. 청중은 가수의 목소리와 AI가 재현한 목소리를 구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실제로 최근 가수의 목소리와 AI의 목소리가 섞인 음반이 발매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하고 감상하게 되었다. 가수의 개성이나 감정을 담은 진짜 목소리와, AI가 기술적으로 복제한 목소리가 뒤섞이며 음반은 더 빠르고 손쉽게 제작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이 담아내는 감정의 깊이가 과연 AI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커져간다.
물론, 인공지능이 창작을 돕는 것은 편리하다. 한때는 나도 ‘요즘 교수들은 논문도 챗GPT의 도움을 받으며 참 편하게 사는군’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속단해서는 안될 것 같다. 젊은 교수들이 AI의 도움으로 논문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은 다행으로 여겨진다. 한편으론, 그 편리함 뒤에는 더 치열한 경쟁과 더 높은 기준이 기다리고 있음을 느낀다. 논문을 더 빨리,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학계는 그 결과물의 질과 양에 대해 더 큰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일 년에 논문 한두 편이 아니라 열 편, 스무 편씩 쏟아내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경쟁은 교수들 모두에게 더욱 가혹해질 것이다. 더 많은 양을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퇴임한 교수로서 어쩌면 쓸데없는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한 발짝 비켜선 은퇴자의 편한 참견’ 일지도 모른다.
AI가 작성한 보고서와 인간이 직접 쓴 보고서를 정말로 구별할 수 있을까? 단순한 업무 문서뿐 아니다. 우리의 진심을 담아낸 글에서조차 AI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한때는 편리한 도구로만 여겨졌던 AI가 이제는 독자적인 창작의 영역으로 들어서며, 사람의 노력과 정성을 대신하고 있다.
AI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대체해 가는 것은 이제 대세다. 우리가 노력한 결과와 인공지능이 생성한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AI가 우리의 삶을 더 편리하게 해 줄 거라는 기대는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세상이 오고 있다. 어쩐지 마음 한편을 찜찜하게 만든다.
결국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AI의 효율성이나 기술적 완벽함만이 아니다. 그 안에 인간의 고유한 감정과 노력이 담길 수 있을까? 그것을 구분해 낼 수 있는 힘을 우리가 갖추고 있을까?
AI가 만들어낸 세상에서, ‘진짜’와 ‘가짜’의 구분은 점점 희미해질지 모르지만, 인간이 직접 쓴 글, 사진작가가 현장에서 직접 찍은 사진, 작곡가와 가수가 마음을 담아 만든 노래 속에는 여전히 AI가 채울 수 없는 본질적인 무언가가 담겨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