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의 모습을 아빠의 시점에서 보면 딸과 아내는 한없이 친밀하지만 어쩔 수 없이 타인이다. 우리인 듯 우리 아닌 우리 딸과 아내는 어쩌면 '이토록 다른 우리들'일까?
그림출처: 네이버 블로그
1. 딸의 시점
아빠가 운전을 해서 퇴근을 도와주러 오신다. 조수석에 기대 눈을 감는다. 피곤해서 더 할 말도 없다. 차 안에 흐르는 라디오에서 인순이의 <아버지>가 울려퍼진다.
가까이에 있어도 다가서지 못했던~ 그래 내가 미워 했었다
왠지 마음을 묘하게 흔들어 놓는다. 가사에는 아버지라는 단어가 한 번도 없지만,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뭔가 짙은 회한과 서글픔이 스며든다. 그 감정의 깊이, 울림... 아빠의 옆얼굴을 살짝 바라보다 입을 다문다. 이 노래, 아빠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실까?
나는 조금씩 느낀다. 그땐 잘 몰랐던 아빠의 마음을, 그리고 지금 아빠는 어떤 마음일지. 차창 너머로 비껴 지나가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괜스레 마음이 아릿해진다.
요즘 들어 아빠랑 대화할 일이 좀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오히려 엄마랑 자주 얘기하게 된다. 아빠는 그저 멀찍이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듯하다. 그러다 가끔 나한테 시선을 주시며 장난스럽게 말을 걸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도 가볍게 웃어주지만, 뭔가 조금은 서먹한 그 느낌… 그냥 아빠와 나는 늘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1. 거실에서
엄마와 요리하면서, 요즘 빠져 있는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 대해 수다를 떨고 있다. 아빠가 멀리서 미소 짓는 게 느껴진다. 잠시 고개를 돌려 아빠를 보니, 아빠는 눈을 깜박이며 말을 걸까 말까 망설이는 듯한 표정이다.
나: (슬쩍 웃으며) “왜, 무슨 일 있어요?” 아빠: (작게 한숨을 쉬며) “아빠는 방청객인가…”
살짝 웃어주곤 다시 엄마와 수다에 빠져든다. 하지만 아빠의 그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아, 괜히 마음이 찡해진다.
#2. 끼어들기
아빠가 용기 내어 우리 대화에 끼어드신다. 눈을 깜박이며 "깜박이 넣고 들어갑니다~"라고 하시는데, 순간 웃음이 터진다.
나: (웃으며) “아빠, 뭐야~ 갑자기 이상하게…” 엄마: “잠깐만, 중요한 얘기 중이었어!”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나신다. 그 모습에 괜히 미안하면서도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슬며시 웃음이 난다. 어쩌면 아빠는 항상 그 거리에서 바라봐 주시던 것 같아서... 그 마음이, 내가 모른 척했지만 마음속엔 분명히 새겨져 있다.
#3. 앨범 속 추억
밤, 잠들기 전 거실에 나가니 아빠가 어린 시절 내 사진을 들여다보고 계신다. 앨범 속 나의 얼굴을 따라 손끝으로 쓸어내리시는 모습에 가슴 한켠이 아려온다.
나: "아빠, 그때가 그리운가 봐?"
아빠는 잠시 멈칫하다 미소 지으며 끄덕이신다.
아빠: “응. 그렇지 뭐.”
우린 그 말로 충분하다. 아빠가 그려왔던 지난 시간이 오늘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싼다.
#4. 커피 타임
오랜만에 아빠랑 단둘이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신다. 이 순간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 문득 입을 뗀다.
나: “아빠,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 아빠, 엄마처럼 키워 보고 싶어. 묵묵히 지켜봐주는 것도 왠지 좋은 것 같아서.”
아빠: (놀란 듯 눈이 반짝이며)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고맙네. 아빠도 항상 네가 잘 알아준다고 생각했어.”
둘이서 마주 보며 웃는다. 아빠와의 작은 거리감 속에서도 묵묵히 전해지는 따뜻한 애정이 흐르는 것 같아 마음이 포근해진다. 아빠는 그저 저만치서 바라보며 사랑을 주는 걸로도 충분히 큰 위안이 된다는 걸 알기에, 그 온기가 참 고맙다.
그림출처: 네이버 블로그
2. 아내의 시점
남편이 퇴근하는 딸을 데리러 가겠다고 나섰다. 나는 남편이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살며시 웃었다. 예전에는 밤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기다리곤 했던 내가 이제는 딸을 기다리는 남편을 바라보게 되다니. 참 세월이 빠르기도 하다.
주방 라디오에서는 인순이의 <아버지>가 흘러나온다. 남편이 저 노래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딸에게 더 다가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마음이 혹시나 담겨 있는 건 아닐까? 남편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딸과 나누는 짧은 대화들이, 아마도 남편에게는 큰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1. 주방
딸과 요즘 다같이 빠져있는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이야기를 하며 장단을 맞추고 있다. 남편이 한 발짝 가까이 다가온 게 느껴진다. 주저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한데, 슬쩍 우리 대화에 끼어들 타이밍을 엿보는 것 같다.
나: (살짝 미소 지으며) “왜, 당신은 그 드라마 띄엄띄엄 보고 있는 거 같아서...” 남편: (작게 한숨 쉬며 혼잣말) “난 그냥 방청객인가…”
딸이 가볍게 웃어주지만 곧 우리 대화로 다시 돌아간다. 순간 남편의 어깨가 약간 축 처지는 걸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찡해진다. 그래도 이 모습이 우리 가족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괜히 그 순간을 소중히 느껴본다.
#2. 끼어들기
오늘따라 남편이 기운을 낸다. 저녁 내내 둘이 웃고 떠드는 모습이 부러웠는지 조심스레 다가오더니, “깜박이 넣고 들어갑니다~”라며 농담을 던진다. 그 순간 우리 둘 다 웃음을 터뜨린다.
딸: (웃으며) “아빠, 갑자기 왜 이래요? 이상하게…” 나: “잠깐만, 지금 중요한 얘기 중이었어!”
남편이 머쓱하게 물러서면서도 웃는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괜히 흐뭇해진다. 저렇게라도 한 발짝 다가서려는 남편의 모습이, 어쩌면 나만큼이나 딸을 아끼고 사랑하는 걸 표현하려는 방식일 테니 말이다.
#3. 앨범 속 사진
어느 날 밤, 책장에서 오랜만에 앨범을 꺼내어 펼쳐본다. 남편이 내 옆으로 다가와 우리 아이의 어린 시절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남편의 손길이 한때 나의 품에 안겨 잠든 아이의 얼굴을 따라 쓰다듬는 순간, 그 손끝에 머무는 애정이 묻어난다.
나: “당신도 참, 옛날이 그립지?”
남편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그저 사진 속 딸을 조용히 바라본다.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이, 오랜 세월을 지나온 두 사람의 아련한 거리를 채우고 있는 듯하다. 우리 사이에 흐르는 이 감정, 딸도 언젠가 알아줄 날이 오겠지. #4. 커피 타임
남편과 딸이 드물게 단둘이 차를 마실 기회가 생겼다.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두 사람을 살짝 바라본다. 딸이 남편에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딸: “아빠,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우리 집처럼 아이를 키우고 싶어. 아빠랑 엄마처럼...”
남편은 놀란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며, 미소로 답한다.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오랜 시간 묵혀둔 따뜻함이 전해진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남편과 딸이 만들어낸 그 서먹하면서도 다정한 공간이, 이제는 내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서서히 다가가는 이 순간을 바라본다. 그들의 마음에 따뜻한 기억이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