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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에누 Dec 11. 2024

[생각과 망상 사이]         이토록 다른 우리들

늘 곁에 있어도 너무 먼 당신들

* 가족의 모습을 아빠의 시점에서 보면 딸과 아내는 한없이 친밀하지만 어쩔 수 없이 타인이다.
우리인 듯 우리 아닌 우리 딸과 아내는 어쩌면 '이토록 다른 우리들'일까?

그림출처: 네이버 블로그

1. 딸의 시점​

아빠가 운전을 해서 퇴근을 도와주러 오신다. 조수석에 기대 눈을 감는다. 피곤해서 더 할 말도 없다. 차 안에 흐르는 라디오에서 인순이의 <아버지>가 울려퍼진다.

가까이에 있어도 다가서지 못했던~
       그래 내가 미워 했었다

왠지 마음을 묘하게 흔들어 놓는다. 가사에는 아버지라는 단어가 한 번도 없지만,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뭔가 짙은 회한과 서글픔이 스며든다. 그 감정의 깊이, 울림... 아빠의 옆얼굴을 살짝 바라보다 입을 다문다. 이 노래, 아빠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실까?

나는 조금씩 느낀다. 그땐 잘 몰랐던 아빠의 마음을, 그리고 지금 아빠는 어떤 마음일지. 차창 너머로 비껴 지나가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괜스레 마음이 아릿해진다.

​요즘 들어 아빠랑 대화할 일이 좀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오히려 엄마랑 자주 얘기하게 된다. 아빠는 그저 멀찍이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듯하다. 그러다 가끔 나한테 시선을 주시며 장난스럽게 말을 걸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도 가볍게 웃어주지만, 뭔가 조금은 서먹한 그 느낌… 그냥 아빠와 나는 늘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1. 거실에서

​엄마와 요리하면서, 요즘 빠져 있는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 대해 수다를 떨고 있다. 아빠가 멀리서 미소 짓는 게 느껴진다. 잠시 고개를 돌려 아빠를 보니, 아빠는 눈을 깜박이며 말을 걸까 말까 망설이는 듯한 표정이다.

: (슬쩍 웃으며) “왜, 무슨 일 있어요?”
아빠: (작게 한숨을 쉬며) “아빠는 방청객인가…”

​살짝 웃어주곤 다시 엄마와 수다에 빠져든다. 하지만 아빠의 그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아, 괜히 마음이 찡해진다.

​#2. 끼어들기

​아빠가 용기 내어 우리 대화에 끼어드신다. 눈을 깜박이며 "깜박이 넣고 들어갑니다~"라고 하시는데, 순간 웃음이 터진다.

: (웃으며) “아빠, 뭐야~ 갑자기 이상하게…”
엄마: “잠깐만, 중요한 얘기 중이었어!”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나신다. 그 모습에 괜히 미안하면서도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슬며시 웃음이 난다. 어쩌면 아빠는 항상 그 거리에서 바라봐 주시던 것 같아서... 그 마음이, 내가 모른 척했지만 마음속엔 분명히 새겨져 있다.

​#3. 앨범 속 추억

밤, 잠들기 전 거실에 나가니 아빠가 어린 시절 내 사진을 들여다보고 계신다. 앨범 속 나의 얼굴을 따라 손끝으로 쓸어내리시는 모습에 가슴 한켠이 아려온다.

나: "아빠, 그때가 그리운가 봐?"

아빠는 잠시 멈칫하다 미소 지으며 끄덕이신다.

아빠: “응. 그렇지 뭐.”

우린 그 말로 충분하다. 아빠가 그려왔던 지난 시간이 오늘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싼다.

#4. 커피 타임

​오랜만에 아빠랑 단둘이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신다. 이 순간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 문득 입을 뗀다.

​나: “아빠,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 아빠, 엄마처럼 키워 보고 싶어. 묵묵히 지켜봐주는 것도 왠지 좋은 것 같아서.”

아빠: (놀란 듯 눈이 반짝이며)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고맙네. 아빠도 항상 네가 잘 알아준다고 생각했어.”

​둘이서 마주 보며 웃는다. 아빠와의 작은 거리감 속에서도 묵묵히 전해지는 따뜻한 애정이 흐르는 것 같아 마음이 포근해진다. 아빠는 그저 저만치서 바라보며 사랑을 주는 걸로도 충분히 큰 위안이 된다는 걸 알기에, 그 온기가 참 고맙다.

그림출처: 네이버 블로그

2. 아내의 시점​

남편이 퇴근하는 딸을 데리러 가겠다고 나섰다. 나는 남편이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살며시 웃었다. 예전에는 밤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기다리곤 했던 내가 이제는 딸을 기다리는 남편을 바라보게 되다니. 참 세월이 빠르기도 하다.

주방 라디오에서는 인순이의 <아버지>가 흘러나온다. 남편이 저 노래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딸에게 더 다가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마음이 혹시나 담겨 있는 건 아닐까? 남편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딸과 나누는 짧은 대화들이, 아마도 남편에게는 큰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1. 주방

딸과 요즘 다같이 빠져있는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이야기를 하며 장단을 맞추고 있다. 남편이 한 발짝 가까이 다가온 게 느껴진다. 주저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한데, 슬쩍 우리 대화에 끼어들 타이밍을 엿보는 것 같다.

​나: (살짝 미소 지으며) “왜, 당신은 그 드라마 띄엄띄엄 보고 있는 거 같아서...”
남편: (작게 한숨 쉬며 혼잣말) “난 그냥 방청객인가…”

​딸이 가볍게 웃어주지만 곧 우리 대화로 다시 돌아간다. 순간 남편의 어깨가 약간 축 처지는 걸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찡해진다. 그래도 이 모습이 우리 가족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괜히 그 순간을 소중히 느껴본다.

​#2. 끼어들기

​오늘따라 남편이 기운을 낸다. 저녁 내내 둘이 웃고 떠드는 모습이 부러웠는지 조심스레 다가오더니, “깜박이 넣고 들어갑니다~”라며 농담을 던진다. 그 순간 우리 둘 다 웃음을 터뜨린다.

​딸: (웃으며) “아빠, 갑자기 왜 이래요? 이상하게…”
나: “잠깐만, 지금 중요한 얘기 중이었어!”

​남편이 머쓱하게 물러서면서도 웃는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괜히 흐뭇해진다. 저렇게라도 한 발짝 다가서려는 남편의 모습이, 어쩌면 나만큼이나 딸을 아끼고 사랑하는 걸 표현하려는 방식일 테니 말이다.

#3. 앨범 속 사진

어느 날 밤, 책장에서 오랜만에 앨범을 꺼내어 펼쳐본다. 남편이 내 옆으로 다가와 우리 아이의 어린 시절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남편의 손길이 한때 나의 품에 안겨 잠든 아이의 얼굴을 따라 쓰다듬는 순간, 그 손끝에 머무는 애정이 묻어난다.

나: “당신도 참, 옛날이 그립지?”

남편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그저 사진 속 딸을 조용히 바라본다.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이, 오랜 세월을 지나온 두 사람의 아련한 거리를 채우고 있는 듯하다. 우리 사이에 흐르는 이 감정, 딸도 언젠가 알아줄 날이 오겠지.

#4. 커피 타임

남편과 딸이 드물게 단둘이 차를 마실 기회가 생겼다.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두 사람을 살짝 바라본다. 딸이 남편에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딸: “아빠,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우리 집처럼 아이를 키우고 싶어. 아빠랑 엄마처럼...”

남편은 놀란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며, 미소로 답한다.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오랜 시간 묵혀둔 따뜻함이 전해진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남편과 딸이 만들어낸 그 서먹하면서도 다정한 공간이, 이제는 내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서서히 다가가는 이 순간을 바라본다. 그들의 마음에 따뜻한 기억이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림출처: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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