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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꼰대!

참견과 오지랖의 미학

by 이에누 Dec 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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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길을 걷다가 눈에 띈 장면 하나.

60대로 보이는 남자가 한 젊은이를 보고 말을 건다. 이마에 살짝 흘러내린 땀을 닦던 젊은이가 눈에 딱 들어온 이유는? 헐렁한 바지를 무심하게 끌고 다니는 모습에 못 견딜 정도로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남자: "저기, 젊은이. 바지 좀 올려 입어야지. 그럼 무릎 다 나간다니까!"
젊은이: "네...? 아, 네."

이런 상황, 한 번쯤 겪어보거나 목격한 적 있지 않은가? 어쩌면 장년에 접어든 당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오지랖’이라는 단어가 조금씩 몸에 배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까? 아니면, 우리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남의 일에 더 깊게 관여하려는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림출처: YTN그림출처: YTN

오지랖...
한마디로 말하면, 남의 일에 끼어들거나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참견이다. 참견, 개입, 끼어들기, 관심… 어떤 단어로 포장하든 그 본질은 같다. 그리고 이 오지랖이라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넓어지는 듯하다. 왜일까? 나이가 들수록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심이 커지는 걸까? 아니면, 그냥 여기저기 참견하는 습관이 생기는 것일까?

그런데, 젊은 사람들에게는 이 오지랖이 때로는 충돌의 원인이 된다. ‘꼰대’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쓸데없이 남의 일에 나서서 지적하거나 가르치려 하는 모습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불쾌감을 줄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관종’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면 왜 이렇게 참견하고 싶어지는 것일까?

1. 경험에서 오는 참견

60대 초반의 어르신도 오지라퍼다. 시장에서 장을 보던 중, 한 젊은 여성이 고등어를 고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참을 수 없었다.

오지라퍼: "그거 말이야, 그렇게 고르면 안 돼. 아가씨, 이 고등어는 꼬리 쪽이 더 반짝거려야 신선한 거야."
젊은 여성: "아, 네… 감사합니다…"

자신이 베푼 조언에 뿌듯했지만, 상대방은 정말 그럴까? 이런 경우, 경험에서 오는 조언이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 방식이 문제가 된다. 본인은 좋은 의도로 말한 것일지라도, 듣는 쪽에서는 ‘내 일에 왜 참견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2.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로

사실 오지랖은  ‘좋은 의도’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가진 경험을 통해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다. 문제는 그  ‘도움’이 상대방에게 불필요할 때다.

길을 묻는 외국인에게 길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은 고맙게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 외국인이 이미 구글 맵을 켜고 길을 찾고 있다면, 오히려 "이 사람 왜 이래?"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오지라퍼: "자, 자. 이쪽으로 가면 더 빨라. 내가 여기서 30년을 살았거든."
외국인: "아, 괜찮아요. 구글 맵으로 가고 있어요."
오지라퍼: "그래도 이게 더 나아!"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조언은,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오히려 불편함을 줄 수 있다. 여기서 참견과 오지랖의 경계가 중요한 이유가 나온다.

3. 꼰대와 관종의 습성

오지랖은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러워진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경험의 축적 때문이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상대에게 뭔가를 전해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방식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다. 특히, 요즘 젊은 세대는 남의 간섭에 민감하다.

젊은 세대에게는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이 중요한 가치다. 그렇기에 지나친 참견이나 조언은 '꼰대'로 인식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꼰대라는 인식은 의도와는 상관없이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젊은 사람: "왜 제 일에 그렇게 참견하세요?"
오지라퍼: "아니, 난 그저 도움이 되려는 건데…"
젊은 사람: "필요 없어요, 제 방식이 있으니까."

그림출처: SBS그림출처: SBS

오지랖, 왜 넓어질까? ​

다시 정리해 보자.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이런 '참견'이 많아지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첫째, 경험 때문이다. 인생을 오래 살다 보면 자연스레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남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특히 누군가가 실수할 가능성이 보일 때,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이 자연스레 튀어나온다.

오지라퍼: "나도 젊었을 때는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알거든, 그렇게 하다가는 분명 후회하게 될 거야."

둘째, 책임감과 배려심도 한몫한다. 가족을 부양하고, 직장에서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책임’이라는 무게를 안고 살아온 사람들은 누군가 잘못된 길을 갈 때 그냥 두지 못한다. 그들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고 싶어서 나서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당사자 입장에서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말이다.

젊은이들의 반응: "꼰대인가요, 아니면 조언인가요?"

하지만 이런 참견은 세대 간의 갈등을 일으키기 쉽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내 일에 신경 쓰지 말라'는 마음이 크다. 요즘에는 정보가 너무나 쉽게 공유되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이미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고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조언이 다가오면 오히려 불쾌해지기 마련이다.

젊은이: "아, 또 꼰대짓 하시네. 그냥 놔두면 안 돼요? 저도 제 방식이 있는 거거든요."

이렇게 오지랖이 꼰대짓으로 치부되면 오히려 의도와 다르게 관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조언을 한 사람이 의도한 바는 '도움'이었겠지만, 듣는 쪽에서는 그것이 간섭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셋째, 유교와 장유유서, 존댓말 문화에도 핑계를 대본다. 세상 어느 나라 사람들이나 나이는 저절로 들지만, 나이 많은 사람이 저절로 윗사람이 되는 서열 문화는 동양,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가 독창적이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는 “다나까” 어법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말이 짧으면' 곧장 불경으로 치부된다. 최소한의 존경을 표하는 화법인 것이다.

학교에서는 학년이, 군대에서는 계급이, 그리고 직장에서는 호봉제가 그걸 더 공고히 한다. 단 며칠 더 일찍 태어났어도 형님 언니는 존대의 대상이 된다. 말 배우기 시작해 세상 무서울 게 없는 미운 네 살도 동네 놀이터 다섯 살 형 누나 앞에선 “너 몇 살이야?” 쭈구리 신세가 된다.

거꾸로, 윗사람은 자연스레 상급자 내지는 지시자가 된다. 이들은 때론 뭐라도 가르쳐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가진다. 이렇게 어린 사람, 아랫사람에 대해 모범을 보여야 하는 책임감을 가진 우리나라 형 누나 언니 오빠 선배 상사 어르신은 어찌 보면 고달플 때도 있다. 이들에게 오지랖은 권리이자 의무이다.

모든 오지랖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이런 참견이 진심 어린 배려로 느껴질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거나, 길을 잃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순수한 호의에서 비롯된다.




이런 경험은 오랜 직장생활을 한 객지 부산에서도 있었다. 범일동에서 약속장소인 빈대떡 가게를 찾다가 때마침 근처에 계셨던 장년여성께 길을 여쭤봤다. 큰길을 쭉 가다가 횡단보도를 건너 우회전해서 100미터쯤 가라고 하셨던 모양이다.

덕분에 목적지는 쉽게 찾았다. 가게 앞에서 문득 눈을 돌려 길 건너편을 바라보니 친절한 아주머니는 아직도 나를 향하여 손을 흔들며 웃고 계셨다. 누가 이런 미소천사를 두고 참견러라거나 오지라퍼라는 별명을 붙일 수 있을까 싶었다.

오지랖은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공동체의 일원을 챙기는 모습은 모두에게 이득이 될 수도 있다.

오지라퍼: "그냥 서로 도우면서 사는 거지. 이거 오지랖이라고 해도 괜찮아."

하지만 이 경계를 잘 지키지 못하면, 오지랖은 불필요한 간섭으로 변질되고, 결국 꼰대나 관종으로 오해받기 쉽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필요한 순간에만 참견하는 것이다.

적당한 오지랖의 미학 ​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오지랖은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하지만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좋은 의도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해야 건강한 오지랖이 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상대방의 필요를 존중하고, 도움을 요청할 때만 다가가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조언이라도 상대가 원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오지라퍼: "혹시 내가 너무 참견했나? 다음엔 물어보고 도와줘야겠다."
젊은 사람: "그럼 훨씬 감사할 것 같아요."

오지랖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넓어진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부정적으로 작용할지는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Q&A]


Q. 어떤 생각에서 글을 쓰게 되었나요?

A. 사실 이 글의 씨앗은 우연히 본 거리의 한 장면에서 시작됐어요. 60대쯤 되어 보이는 남성이 젊은이에게 바지를 올려 입으라는 조언을 건네는 모습이었죠. 젊은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그 모습을 보며 ‘아, 이게 바로 오지랖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런 모습이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 역시도 어느 순간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된 건 아닐까? 이건 단순히 한 개인의 습관이 아니라, 나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경향이 아닐까? 이 주제라면 재미있게 풀어볼 수 있겠다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Q. 글의 전체적인 구성은 어떻게 잡았나요?

A. 처음에는 막연하게 "꼰대가 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냥 현상을 나열하는 식으로 쓰면 딱딱하고 재미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경험에서 오는 참견’,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 ‘꼰대와 관종의 경계’ 등으로 구성을 나눴죠.

① 실제 사례(바지 올려 입으라는 조언) → ② 오지랖의 정의와 특징 → ③ 나이가 들수록 왜 참견하게 되는가? → ④ 세대 간 갈등과 꼰대 인식 → ⑤ 어떻게 하면 건강한 오지랖이 될 수 있을까?

이렇게 흐름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독자들도 ‘아, 나도 이런 경험 있었지’ 하며 공감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Q. 글을 쓰면서 가장 고민했던 점은 무엇인가요?

A. 가장 고민했던 건 ‘꼰대’라는 단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점이었어요. ‘꼰대’라는 말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보니, 자칫하면 글이 특정 세대를 비판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고 너무 변호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 젊은 독자들이 공감하기 어려울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죠.

예를 들어, 오지랖이 때로는 필요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불필요한 간섭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마지막 부분에서는 "적당한 오지랖의 미학"을 이야기하며 마무리했는데, 이걸 통해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떤 태도가 필요한가’를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Q. 글을 재미있게 하기 위해 애쓴 부분이 있다면?

A. 너무 무거운 이야기로 흐르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가벼운 톤을 유지했어요. 특히 실제 대화체를 넣어서 생동감을 살리고, 과장된 표현을 섞어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을 사용했어요.

예를 들어,

• “이마에 살짝 흘러내린 땀을 닦던 젊은이가 눈에 딱 들어온 이유는?” → 꼭 탐정이 단서를 발견한 것처럼 묘사해서 코믹한 느낌을 줬죠.
• "길을 묻는 외국인에게 길을 알려주지만, 정작 그 외국인은 구글 맵을 보고 있는 상황" → 이런 사례는 누구나 한 번쯤 본 적 있을 법해서 웃음을 유발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 "나이 들면 뭐, 그냥 서로 도우면서 사는 거지. 이거 오지랖이라고 해도 괜찮아." → 오지랖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심리를 대변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마무리했어요.

Q. 묘사에 가장 세심하게 공들인 부분은 어디인가요?

A. "꼰대와 관종의 경계" 부분이에요. 요즘 젊은 세대는 자기만의 방식과 자율성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선의를 가진 조언도 ‘꼰대질’로 느껴질 때가 많아요. 이걸 단순히 "요즘 애들은 민감해"라고 넘겨버리면 글이 너무 일방적으로 흐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실제 대화 예시를 넣었죠.

• "왜 제 일에 그렇게 참견하세요?"
• "아니, 난 그저 도움이 되려는 건데..."
• "필요 없어요, 제 방식이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감정이 충돌하는 순간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면, 독자들이 더 몰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Q. 글을 쓰면서 새롭게 알게 된 점이 있나요?

A. 네, 글을 쓰면서 깨달은 점이 하나 있어요. 나이가 들수록 참견하게 되는 이유가 단순한 "꼰대 기질" 때문만은 아니라는 거예요.

• 경험에서 오는 자신감 –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 책임감과 배려심 – "이 사람 잘못된 선택을 하면 안 되는데"라는 걱정이 앞선다.
• 사회적 역할 변화 – 나이가 들면 본능적으로 '지도자' 역할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오지랖이 넓어지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Q. 마지막으로, 이 글을 어떻게 읽어주길 바라나요?

A. 이 글이 꼭 "꼰대 되지 마라"는 교훈적인 메시지로 읽히기보다는, ‘나도 모르게 이런 모습이 있었네’ 하고 가볍게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누구나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오지랖이 넓어질 수 있어요. 문제는 그걸 어떻게 조절하느냐죠. 그래서 독자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참견이 필요할 때와 아닐 때를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마지막 문장처럼, "적당한 오지랖의 미학"을 실천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이 글을 쓰면서 저도 제 모습을 많이 돌아보게 되었어요. 앞으로는 조언을 하기 전에 "이 사람이 정말 이 조언을 원할까?" 한 번 더 생각해보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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