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올여름엔 날씨가 유난히 변덕스러웠다. 폭우가 한바탕 휩쓸고 나니까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극한 호우 아니면 극한 폭염. 온탕 아니면 냉탕, 도 아니면 모. 세상만사가 극과 극이다.
생존의 위기를 넘어서기 바쁘게 팔자 좋은 사람들은 피서의 기술을 플렉스했다. 다들 나름대로의 피서법이 있겠지만, 무더위를 식히는 데는 역시 물보다 더한 무기가 없다. 낚시도 그중의 한 삼매경을 선사한다.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는 호수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 야광의 찌를 응시하며 시간을 낚는 재미는 꾼들만이 아는 경지다.
낚시는 연애다. 고도의 심리전이다. 물 좋은 포인트를 고르는 안목은 연애와 낚시의 출발점이다. 입맛에 맞는 미끼를 상대에 따라 적절하게 구비하는 것 역시 기본 중의 기본. 지루한 탐색전을 견뎌내고 마침내 미늘을 덥석 물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리는 미덕도 까다로운 애인의 마음을 잡아채는 일과 다르지 않다. 낚시와 연애가 똑같이 인내의 미학이요, 타이밍의 예술이라 불리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민물낚시의 채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보다도 미끼다. 물고기의 식성은 예민하고 정직하기 때문이다. 우아한 어족일수록 입맛이 까다롭다. 블루길이나 베스처럼 아무 미끼나 덥석덥석 물지는 않는다. 그래서 낚시 가게에 가면 상품으로 나온 미끼의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만큼 물고기의 식단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인스턴트나 패스트푸드로 적당히 걸려들 놈들이 아니다.
거기에 비하면 인간의 식성은 얼마나 천박하고 잡스러운가. 먹어도 먹어도 식욕을 포기하지 않는 동물은 지구상에 인간밖에 없다고 한다. 먹은 것을 후회하고 게워내고 쓸어내느라고 호들갑을 떠는 동물도 인간밖에 없다. 한물간 개그 프로에서 배꼽을 훔쳤던 뚱뚱교의 교주 출산드라의 호들갑을 떠올려 보라. “먹다 지쳐 잠이 들라, 먹다 지쳐 잠이 들라. 처음엔 비쩍 골았으나 네 나중은 심히 비대하리라.” 이런 탐욕을 간특하게 이용해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먹방들이 넘쳐난다.
예능 프로그램과 광고가 그 중심에 있다. 끊임없이 식탐을 부추기는 잡다한 군것질 거리들. 그런 급하고 강퍅한 입맛을 돋우는 데 영상 이미지가 한몫하고 있다. 알맹이 없이 겉만 번드레한 컴퓨터 그래픽. 화려한 빛깔과 음향으로 침샘을 억지로 자극하는 장식 효과. 오두방정을 떨어대는 몸동작과 요란뻑적지근하게 빠른 비트의 CM 송. 유행어를 좇기에 바쁜 품위 없는 말장난. 거기에 디지털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된 운치 없는 영상들이 식품광고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유튜브와 종편 프로그램에 넘쳐나는 먹방 콘텐츠들도 이런 세태를 주도하고 있다. 극한 폭식의 핑곗거리도 기상천외하다. 이별의 상처 때문에, 극한 다이어트의 보상으로, 관심종자의 유전자 발현으로... 슬퍼서 먹고, 헛헛해서 먹고, 부끄러워서 먹고, 눈길을 끌려고 먹고, 심심해서 먹고, 돈이 되니까 먹고... 먹는 사람들의 먹는 이유가 다 먹히는 건 아닐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