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반에 신규 선생님이 발령 났다. 기존에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은 전문직 시험에 합격하여 교육청으로 가셨고 그 자리에 9월 1일 자로 새로운 선생님이 오셨다. 원래 다른 지역에서 2년 근무하고, 신규 TO가 얼마 되지 않는 우리 지역으로 다시 임용고시를 치른 능력자 선생님이었다. 정식 발령일 일주일 전 인수인계를 위해 학교에 온 신규선생님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빛남"이었다. 긴 생머리의 20대 중반 신규 선생님을 보니 마냥 기분이 좋았다. 건강하고 싱그럽고 빛이 났다.
어느 날 오후 우리 학년 연구실에서 모르는 얼굴이 나오는데 새로 온 선생님이라는 확신이 섰다. 정식 발령 전 인사차 학교에 들려 비타민 음료를 사 와 연구실에 두고 나오는 길에 나와 마주쳤다. 선생님의 예의 바른 인사와 약간의 떨림에서 기분 좋은 설렘이 느껴졌다. 젊음의 에너지 자체가 좋았다.
연구실에 모여 동학년 선생님들이 각자 간단한 소개를 한 후 티타임을 가졌다. 선배 선생님들인 우리들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는 모습과 초롱초롱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요즘 MZ 세대들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있었는데 우리 신규 선생님에게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지어지고 기분이 좋았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지만 20년 차 교직 경력을 가진 옆반 교사로서 내가 가진 노하우를 모두 다 알려주고 싶었다.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모든 걸 알려주고 이끌어주고 싶은 맘이 저절로 샘솟았다.
우리 학교는 관내에서 꽤 인기 있는 학교로 1순위 지망이 아니면 들어오기 힘들다. 이 말은 신규 선생님이 발령 나기 매우 힘들다는 뜻도 된다. 9월 발령이라 운이 좋게도 우리 학교에 발령받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모습도 엄청 이쁘다. 그냥 숨만 쉬어도 이쁜 것 같다. 엄마미소가 띄어지며 바라보게 된다. 부모님은 얼마나 좋으실까라는 생각도 든다.
"학교가 너무 예뻐요. 계단 올라오면서 깜짝 놀랐어요."
"맞아요, 리모델링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시설이 엄청 좋아요. 층마다 있는 학생들 쉼터, 커피를 먹을 수 있는 수업카페 등은 우리 학교의 자랑이에요."
작은 거 하나에도 감동하고 감사하는 신규 선생님이 너무나 예쁘고 흐뭇했다. 우리 학교로 발령 받기 전 2년동안 타지역에서 근무했다는 정보는 알고 있었지만 올해 나이가 몇 살인지 궁금해지는 꼰대력이 발동되었다.
"그럼 선생님은 몇 년생이에요?"
"00년 생이예요."
"아, 네... 저는 00학번이에요."
이런 대화를 나누니 엄청 난 나이의 간극이 느껴졌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지? 나도 신규 일 때 저렇게 예쁘게 빛났을까? 신규 선생님처럼 눈빛이 초롱초롱했을까? 20년의 세월이 정말 쏜살 같이 지나갔다. 인생의 시간이 이렇게 빠를 줄이야.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렸던 것 같다. 지금은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줌마인데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까? 한편으로 마음이 쓸쓸해졌다. 분명 나에게도 젊음 그 자체로 환하게 빛났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그때 당시에는 젊고 예뻤던 걸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가수 이상은의 노래 '언젠가는'의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때 사랑을 몰랐네'라는 노랫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정작 가장 빛났던 시절에는 그걸 알지 못하지. 그걸 알면 젊음이 아니지.
"그럼 선생님 주민번호 뒷자리는 4로 시작하겠네요."
"네, 남자는 3 여자는 4로 시작해요. 주민번호 앞은 00으로 시작되어서 어디 입력할 때 오류가 난 적도 있어요."
"그렇구나! 아이들이 젊고 예쁜 선생님이 오셔서 너무 좋아하겠어요!"
신규 선생님이 전에 있었던 곳은 6학급 짜리의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고 한다. 한 반에 6~7명밖에 되지 않는 학교로 한 학년에 1반만 있는 곳이었다. 전체 교직원 모임을 해도 10명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동학년이 생긴 게 처음이라 너무 좋아요. 선생님들 다 베테랑이시고 동학년 선생님들 생겨서 너무 든든해요."
"우리도 20대 젊은 선생님과 함께 근무하게 되어 너무나 좋아요!"
어쩜, 말도 이렇게 예쁘게 하는지.. 얼굴도 예쁘고 말도 예쁘고 심성도 참으로 곱게 느껴졌다. '상견례 프리패스상'으로 어른들이 좋아하는 참한 얼굴에 가지런한 치아가 돋보이는 웃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좋아할 것 같았다. 정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알려주고 싶었지만 너무 급하게 가면 체할 수 있고 꼰대처럼 보일 수 있으니 일단 묻는 것만 친절히 답해주고자 마음을 먹었다. '선배'와 '꼰대'는 한 끗 차이라고 누군가 그랬다.
좋은 선배는 물어보면 잘 알려주는 사람이고, 꼰대는 안 물어봤는데 와서 가르쳐 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둘 다 자신의 지식과 노하우를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은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원할 때와 그러지 않을 때를 잘 구분해야 꼰대가 되지 않는다. 절대적으로 꼰대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신규 선생님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성심성의껏 잘 알려주는 좋은 선배가 되리라 마음을 굳게 먹는다.
가벼운 이야기를 하는 도중 1학기에 사서 읽고 연구실에 두었던 책이 눈에 띄었다. 제목은 '만만이 교사의 센 척하는 법'이다. '카리스마로 교실의 평화를 지키는 실천 대화 공략집'이다. 교실에서 교사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여러 노하우를 현직 교사가 읽기 쉽게 옮겨놓은 책이었는데 많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표정과 말투를 여러 사례에 접목시켜 재밌는 그림과 설명되어 술술 읽히는 그런 책이다. 이 책을 신규 선생님께 선물로 주니 엄청 좋아하였다. 나중에 정식 발령이 난 후 복도를 걷다가 교실에 있는 선생님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을 때 복도로 뛰어나오면서 나에게 '책이 너무 좋았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면서 감사의 인사도 잊지 않았다. 정말 예쁘다.
드디어 발령 당일인 9월 1일 월요일이 되었다. 1교시 전에 교감선생님께서 신규선생님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던지 옆반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전 선생님도 중간에 아이들을 떠난다고 많은 걱정을 하셨지만 열정 가득한 신규선생님을 보고 매우 안심하며 학교를 떠나셨다. 그전 선생님이 인수인계를 잘해주고 가셨지만 작은 부분에서 궁금해하는 사항이 많아 학교 한 바퀴를 돌면서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었다.
"아이들이 서로에게 ~님 하고 부르던데 이건 뭐예요?"
"우리 학교 '인성브랜드'가 경어 쓰기예요. 교사도 학생들에게, 학생들 간에 경어를 쓰면서 언어문화를 개선하는 건데 저도 경어 쓰기 노력하고 있는 중이에요."
"아, 전에 선생님이 경어 쓰기라고 써놓긴 하였는데 뭔지 잘 몰랐거든요. 인성브랜드군요. 좀 어색하지만 저도 경어 쓰기 열심히 해봐야겠어요."
"우리 학교 구조가 'ㅌ'자 모양이라 많이 헷갈리죠? 저도 아직도 헷갈릴 때가 있어요. 이쪽이 수업카페고 이쪽으로 가면 보건실이 나오는데 좀 늦게 퇴근할 때는 이쪽 문으로 나오시면 돼요."
"맞아요. 헷갈려요. 선생님, 그런데 강당은 어디에 있나요?"
"급식실이 이쪽으로 가잖아요. 급식실 바로 옆이 강당이에요. 모를 때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아이들이 더 잘 알아요."
"이곳이 희망 동인데 실과실, 스포츠실, 다목적실이 있어요. 5학년 음식 만들기는 다 끝나서 2학기에 실과실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 같고, 창체 시간에 다목적실 사용 가능해요. 스포츠실 인수인계받았나요?"
"네, 그런데 끄는 법 켜는 법만 간단하게 설명 들어서 잘 모르겠어요."
직접 기기를 작동시켜 스포츠실 사용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고 우리반에서 사용하는 교실 자동화 시스템도 말해주었다. 설명은 했으니 선택하는 것은 신규 선생님 몫이므로 더 이상 관여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어보고, 알고 싶은 것도 많은 신규 선생님이 옆반으로 오다니 나에게도 큰 행운이다. 올해 교직 생활 20년 차로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시기인데 열정 가득한 선생님의 에너지를 받아 나도 우리 반 아이들을 좀 더 밝게 대할 수 있지 않을까?
경력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잘하는 것도 아니고, 적다고 해서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 둘의 상호 간의 관계가 활발해져 동학년 선생님이라는 대등한 조건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 가끔씩 선배 교사로서 내가 아는 선에서 아낌없이 다 알려줄 것이다. 물론 신규 선생님이 원할 때만!
유퀴즈 프로그램에서 잔소리와 조언의 차이점을 초등학생에게 물어봤는데 크게 공감이 가서 엄청 웃었던 기억이 있다. '잔소리는 기분 나쁜데 조언은 더 기분 나빠요!'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조언은 독과 같으므로 이 점을 항상 명심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우리 예쁘디예쁜 신규 선생님의 교직 생활이 건강하고 밝게 빛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